[박승온의 민화이야기] 태어나 죽음을 준비할 때까지…병풍과 함께 한 선조들
[박승온의 민화이야기] 태어나 죽음을 준비할 때까지…병풍과 함께 한 선조들
  • 윤덕우
  • 승인 2023.02.0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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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조선, 병풍의 나라 2’를 보다
한나라 시대 제소병풍 발명
바람 막고 공간 꾸미는 용도
고대 초기 1개 판 통병풍부터
2개 이상 판 이은 연병풍 지나
접을 수 있는 날개식 형태 창안
편리한 보관과 연결 표구 특징
전시장 입구 미디어 병풍 눈길
디지털 방식 보편화되면 좋을 듯
2023년 새로운 봄의 시작에 독자들께 소개하고 싶은 전시가 있어 부리나케 서울까지 달려갔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는 5년 전 열렸던 기획전이 후속편으로 돌아왔다. 조선 시대부터 근대기까지 제작된 우리 옛 병풍들을 소개하는 ‘조선, 병풍의 나라 2’이다.

이제 일상에서 병풍을 사용하는 문화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창고 깊숙이 먼지를 둘러쓰고 있다가 간혹 제사가 있을 때나 그 모습을 드러내 안타깝기도 하지만, 20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병풍은 한국인의 삶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생활 가구였다.

우리 조상님들의 삶은 병풍에 둘러싸인 삶을 살았다. 남녀가 부부의 연을 맺을 때는 모란 병풍을 치고 백년해로를 맹세했고, 신방을 차린 뒤에는 안방의 화조 병풍 아래에서 신혼의 밤을 보내고 그 병풍 안에서 아기를 낳았다. 그 아기의 첫 돌잔치도 병풍 앞에서 했고,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는 흰 병풍을 둘러치고 그 뒤에서 정든 세상과 이별을 했다. 이렇듯 병풍은 우리 삶의 일부였나 보다. 오죽하면 영화나 드라마에도 “병풍 뒤에서 향 냄새 맡고 싶냐는 등...”의 무시무시한 대사에도 병풍이 등장하지 않은가.

‘병풍’에 대한 어원을 살펴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여러 의미가 담겨 있다. 바닥 위에 판을 세우거나 의자나 침대 등 가구 주변을 두르기 위해 여러 장의 판을 이어 붙인 것을 ‘병(屛)’ 또는 ‘장(障)’이라 하는데 둘 다 ‘앞을 가리다’,‘나무를 둘러친 숲’이라는 뜻이 들어 있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병풍(屛風)’은 집안에 장식을 겸하여 바람(風)을 막기(屛) 위해 둘러치는 물건을 일컫는다. 이러한 해석을 종합하면 병풍의 기능은 무엇을 가리거나 막는 것이 일차적인 용도이고, 그 위에 그림이나 글씨, 수(繡)를 곁들였기 때문에 벽면이나 공간을 꾸미는 장식용으로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병풍은 동아시아 사회에서 매우 오래전부터 사용되었다.

병풍의 기원은 중국의 한대(漢代) 초기에 제소병풍(提素屛風) 이라는 것이 있었다 하는데 이는 오늘날의 병풍 형식과는 구조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아악 3호분 벽화에 묘주(墓主)상의 배경으로 나타나며, 이후 신라, 고려시대에 지속적으로 사용되다가 조선시대 후기에 가장 유행했다. 초기 병풍의 형태는 간편하게 접어서 손쉽게 보관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니고, 펼쳐진 넓은 판을 그대로 이용하는 일종의 통 병풍이었다. 이런 고대의 초기 병풍은 동판(銅版), 또는 목판(木板)의 단순 구조로 꾸며져 있었기 때문에 경병풍(硬屛風)이라 부른다. 경병풍에서 발전한 양식을 연병풍(軟屛風)이라 부르는데 이것은 현재와 같이 나무로 틀의 골격을 만들고, 여기에 종이 또는 비단을 씌워준 것이다.

이 연병풍의 형식이 어느 시기에 만들어 졌는지는 확실하지는 않으나 초기의 연병풍은 기둥살의 상 하단과 중간에 적당한 크기의 구멍을 뚫어주고, 여기에 가죽이나 노끈으로 양쪽을 함께 묶어서 연결시켜 주었다.

이와 같이 끈으로 묶어준 형식에서 좀 더 발전한 것이 나비형 장식으로 연결시켜 준 병풍이다. 연병풍은 위와 같은 여러 발전과정을 거쳐 오늘날과 같은 종이 날개식 병풍으로 완성되었다.

우리나라는 이 날개식 병풍을 창안함으로써 병풍의 발전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종이 날개식 병풍은 첫째, 전후를 마음대로 꺾어 접을 수 있는 편리가 있고, 둘째, 연폭의 연결 표구가 가능하며, 셋째, 연결부가 치밀 견고해서 방풍(防風)의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등의 여러 가지 특징이 있다. 그래서 지금 존재하는 병풍들은 대부분 날개식 병풍인 연병풍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

병풍은 수요자와 용도에 따라 크기나 그림의 주제가 다양하며, 화풍과 그림솜씨 등에도 차이가 있었다. 조선왕실에서는 가례, 상례, 흉례 등의 의례와 각종 진찬, 진연 등을 기록하기 위해 병풍을 만들었고, 왕실의 권위와 번영, 장수를 상징하고 실내를 장식하기 위해 주로 사용되었다.

표면상 서화에 속하지만 그 기능은 방풍과 그림치장은 물론 공간 차단의 효과라는 여러 가지 기능이 있어 단순한 감상용의 족자나 액자 따위보다도 공간에 대해서 보다 많은 실용과 가치를 지닌 가구의 하나로서 일반의 환영을 받았다.

특히 조선조 후기와 말기에서 꽃피운 민화 계통의 병풍 그림의 대개가 감상화적인 면보다는 실용화적 입장에서 제작된 사실을 통해서 보더라도 이점은 명백해 진다.

이번 전시에서는 공간을 가리는 가구로서의 병풍이 아니라 병풍안의 그림에 집중이 되었다. 거의 대부분의 병풍이 편평하게 펼쳐져, 화폭을 지그재그로 접을 때 생기는 공간감이나 입체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림이 관람객 눈높이에 오도록, 높낮이를 맞추어 설치한 것도 눈에 띈다. 회화 작품으로서 전시보다는 그 안의 그림에 초점을 맞춘 전시라는 것, 코앞에서 그림속의 디테일이나 흐릿한 붓 자국까지 맨눈으로 관찰할 수 있다는 즐거움, 그리고 자료 수집을 위해 사진을 마음껏 찍을 수 있는 점도 매우 좋았다.
 

일월오봉도병풍
일월오봉도 8폭 병풍 19세기말 견본채색 전체 226.5 × 489cm,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필자 촬영.

 
일월오봉도병풍
임인진연도 10폭 병풍 20세기 초 중 일부 견본채색 전체 198.5 × 612.5cm, 국립국악원 소장, 필자 촬영

이 그림은 대부분의 독자들이 알고 있고. 사극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병풍일 것이다. ‘일월오봉도’는 조선시대 국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그림으로 다섯 개의 산봉우리와 붉은 해, 하얀 달 굽이쳐 흐르는 물결과 붉은 소나무로 구성된 그림이다. 전각 안에 세워진 병풍은 입체적인 막(幕)을 형성해 하나의 공간 구조물로서 기능함과 동시에 전각의 용도에 맞게 그 안에서 생활하는 구성원들을 위한 특별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임금의 어좌(御座) 뒤에 항상 놓였던 일월오봉병(日月五峯屛)이 통치자의 장소를 명확히 하고 권위를 상징하는 기능을 한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번에 전시되었던 임인진연도 10폭 병풍에도 임금이 그 연회에 참석하였다는 인증 샷으로 왕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에는 민간에서 유행했던 특이한 병풍을 소개해 본다.
 

백수도
백수도 10폭 병풍 19세기 지본채색, 전체 184 × 349cm, 가나문화제단 소장 필자 촬영.

10폭 병풍에 86쌍의 여러 가지 동물들을 그려 넣은 그림으로서 마치 동물도감을 보는듯한 느낌이었다.

실제 존재하는 동물들과 상상의 동물들, 그리고 화면의 상단에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동물들과 화면하단부의 땅에 기어 다니는 동물들로 구성된 점, 그 옛날 우리나라 땅에서는 볼 수 없는 이색적인 동물들도 소개한다는 점이 특이하고, 다양한 포즈로 신비로운 동물 세계를 보여준다. 병풍의 용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종의 화본의 기능을 한 듯 보였는데...병풍 그림 중에 가장 특이하게 보였다.

이 병풍은 1980년대 초에 잠시 전시가 되었다가 이번에 아주 귀하게 대중들 에게 선보여 졌고, 궁중이나, 민간 집에서 펼치기에는 다소 애매한 용도인 것 도 같고,,, 하여간 필자는 이 병풍의 동물들을 거의 다 촬영한 것 같다.
 

조선병풍의나라2-이이남전지1
이이남 작 8폭 화조도 병풍 HD비디오, LEDTV, 혼합재료.

전시장 입구에 전시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만나는 것은 전통 화조도를 풀어 헤친 현대 작가 이이남의 미디어 병풍이 눈길을 끌었다.

이제 현대적인 병풍은 디지털화되어 이렇게도 될 수 있겠다 싶고, 병풍의 현대화에 더 이상 창고에 갇히지도 않겠다 싶어 반갑기도 했다.

꽃과 새, 나뭇가지가 화면 사이사이로 움직이며 한순간 사라지기도 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사이, 관람객은 잠시 텅 빈 병풍을 마주하게 된다. 병풍은 병풍인데 그림이 없어지니 영 처음 보는 물건 같기도 하다. 그 낯선 느낌이 이 전시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가만히 귀띔해준다. “속편 주인공은, 그림이래.” 서울에서 하는 전시라... 선뜻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예약을 해야만 구경을 할 수 있으니 더 일정을 잡기도 쉽지 않다. 그래도 그림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열일을 제치고 한번은 봐야 할 전시인 것 같다. 옛날 화가들의 예술성을 가까이서 느끼고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으니 말이다.

박승온ㆍ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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