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인문학] 구루를 찾아서, 원효를 찾아서
[치유의 인문학] 구루를 찾아서, 원효를 찾아서
  • 승인 2023.02.09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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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삼 대구한의대 교수
원효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당신이 책에서 본 원효의 얼굴에서 원효의 모든 걸 읽어냈다면 당신은 분명 원효를 만난분입니다. 원효는 당신이 읽은 <대승기신론> 심생멸문에도 있고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기단석 위에도 있습니다. 어디 그 곳 뿐이겠습니까? 분황사 앞 저잣거리 술집에서도 막걸리 한잔이면 그분을 만날 수 있고 심지어 경산 자인의 밤나무골에서도 그분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원효를 알아보지는 못할 겁니다. 그분은 눈을 떠서 볼 수 있는 분이 아니고 눈을 감아야만 비로써 만날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원효를 그리기 위해 원효가 다녔던 모든 곳을 다녀보았다. 모든 곳에 원효의 흔적은 있었지만 원효를 만날 수는 없었다. 어느 스님께서 “눈을 감아야 만날 수 있는 분입니다!” 화두처럼 던진 그 한마디에 길 위의 여정을 접고 그분의 문자향을 찾았다.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일갈한 <대승기신론> 아뢰야식을 통해 원효의 일심을 엿보았고 수행자의 본분인 육바라밀을 통해 자리이타의 화쟁을 읽었다. 원효의 위작이라고 하는 <금강삼매경론> 아미타불 신앙에서 ‘대승’을 받아들인 원효의 큰 뜻을 이해할 수 있었고 승과 속이 둘이 아니고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다고 소리치며 달려간 원효의 모습에서 유마거사의 얼굴이 보였다. 자신을 둘러싼 페르소나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할’

원효는 유마거사를 만난 적이 없다. 디오게네스도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그의 묵흔과 후대 명사들의 평가에서 유마거사와 디오게네스를 동시에 느끼는 건 우연이 아니다. ‘일체 무애인은 한길로 생사를 벗어난다’ 저잣거리로 뛰어나가기 전 읽었던 화엄경의 한 구절이다. ‘무애’ 걸림이 없다는 뜻이다. 원효의 핵심사상중 마지막을 장식했던 단어다. 걸림이 없는 사람의 얼굴은 어떤 얼굴일까? 그는 왜 대중 속으로 들어갔을까? 십우도의 마지막 단계가 ‘반본환원’이다. 결국은 혼자가 아닌 대중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깨달은 자의 미션이었을 것이다. 원효는 그 가르침을 실천했을 뿐이다. 흐렸던 원효의 얼굴이 선명해지는 순간이다. 1년의 화두가 이제야 조금 풀렸다.

저잣거리에서 배고프고 가난한 백성들에게 손도 잡아주고 노래도 불러주었던 원효의 얼굴은 어떠했을까? 엄숙하고 장엄했을까? 천만에 편안하고 미소 가득한 얼굴로 “걱정하지 마세요! 모든 게 크게 편안해 질 겁니다!”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난 그 소리가 그리웠을 뿐이고 그 소리를 그렸을 뿐이다. 마음이 길을 잃을 때가 있다. 마음이 위로를 원할 때가 있다. 주저앉지 말고 추앙했던 인물의 행적을 찾아보라. 그분들의 걸음걸음에서 고즈넉한 소리가 들린다면 귀 기울여 들어보라. 그 소리는 그동안 당신이 그토록 듣고 싶었던 바람의 소리며 위로의 소리고 치유의 소리다. 원효는 필자가 그토록 찾은 구루였다. 원효는 필자의 마음 한켠에 굳건히 자리한 휴식이었다. 1년을 그렇게 찾은 원효를 그림으로 그렸다. 그림 속의 원효는 성사의 모습과 거사의 모습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통해 내 미래의 모습을 읽었다.

그래 맞다. 30~40십대 치열한 삶의 순간에 내가 추앙했던 인물은 이순신이었다. 이순신의 행록과 일기를 읽으며 매 순간 나를 돌아보았던 기억이 새롭다. 그 시절 이순신은 나에게 지혜와 정의, 용기와 절제를 가르쳐 준 유일한 스승이었다. 흔들릴 때 마다 읽었던 <난중일기>는 역류하는 울돌목의 파도였고 순류였다. 돌아보라 매 순간 우리네 인생이 한결같은 순류였을 때가 얼마였던가? 매순간 순류와 역류가 만나는 지점에 우리가 있었고 내가 있었다. 그게 인생이 아니냐고 이순신은 늘 되물었다. 이순신을 추앙하고 원효를 추앙하며 그들의 문자향과 행록들을 살피면서 스승과의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위로받을 수 있었다. 방황하던 40대 나의 스승은 이순신이었다. 스티브잡스가 단 반나절만이라도 소크라테스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자신이 가진 재산을 절반을 기꺼이 내놓을 수 있다는 공언이 결코 헛된말이 아니었음을 분명 느낄 것이다. 치유의 시간, 위로의 시간은 추앙하는 스승과 깊은 대화를 나눌 때 비로써 받는 보석 같은 선물이었다. 구루를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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