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엄마가 심심해라고 말할 때
[달구벌아침] 엄마가 심심해라고 말할 때
  • 승인 2023.02.12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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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심심해"
오랜만에 전화를 건 내게 다짜고짜 엄마가 툭 던진 말이다.
"또 시작이다. 또 시작이야."
풍경도 한곳에 머물지 않는다. 꽃처럼 사람도 피고 진다. 영원한 건 없다는 걸 알지만 그런데도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목마처럼 엄마는 영원히 살 것만 같다고 한다. 남아있는 시간 동안 어떻게 하루를 버텨야 할지 막막하다고도 했다.
통화를 할 때도 밥을 먹으면서도 바람이라도 쏘이게 해 준다며 함께 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도 나와 눈길이 서로 닿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하소연을 한다.
"심심해. 심심해. 심심하다고!"
십팔 개월에 접어든 손자는 잠자는 시간을 빼고 하루 종일 놀아줘도 심심한 듯 놀아달라는 표정을 짓는다. 장난감을 계속 바꿔가며 놀아준다거나 동화책을 읽어주어도 두어 줄 겨우 읽기도 전 무릎을 박차고 나가 다른 책을 가지고 오기 일쑤다. 몸을 잠시도 가만히 두지 않는다. 아이가 깨어있는 동안, 딸내미는 늘 긴장의 연속이다. 내가 저를 키우고 놀아줄 때처럼.
'장난을 심하게 치는 아이들이 있다. 상대방이 기분 나빠해도 신경 쓰지 않고 더 심한 장난을 치거나 짓궂은 행동을 한다.' 아동심리 전문의 천영희의 '내 아이의 말 습관'에 나오는 문장이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장난과 놀이를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부모님이나 어른들은 아이라면 장난을 칠 수도 있고 심지어는 쳐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그만큼 아이들에겐 너그러운 편이다. 하지만 장난과 놀이는 엄연히 다르다고 한다. 짓궂고 지나친 장난은 말썽과 사고로 이어지기 쉬워 반드시 막고 금해야 한다고 주의를 준다.
책에 의하면 장난은 자신과 놀아달라는 말과 동시에 놀이가 필요하다는 신호라고 한다. 놀이야말로 아이들에겐 몸과 맘을 건강하게 자라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며 충족시켜 주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라는 것이다. 놀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으면 아이는 장난을 침으로써 욕구를 충족하려 든다. 그러니 아이가 장난이 심할 땐 왜 그런 장난을 하면 안 되는지 설명하고 장난 대신 할 수 있는 놀이를 제안하라고 말하고 있다. 아이에게도 '다음엔 장난치지 말고 나랑 놀아줘'라는 말을 하라고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뭐 하며 놀지'가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에 비해 정작 부모님들은 '오늘은 뭐하고 놀아줄까'를 고민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던 책의 문장을 기억하며 엄마를 떠 올렸다. 아이와 어떻게 놀아줄지를 고민해야 하는 어른처럼 이젠 어른이 된 내가 아이처럼 심심하다고 말하는 엄마를 위해 어떻게 놀아줄지를 고민해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심심하다는 엄마의 말을 놀아달라는 신호로 알아들어야 할 때가 아닐까? 돌아보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엄마도 나도 가는 덴 순서가 없으니 오늘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생각하고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엄마의 삶이 편안해지고 단순해진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심심한 엄마의 삶에 심심한 위로를 담아 생기를 불어넣어 주고 싶어 엄마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엄마, '버킷리스트'라는 걸 한 번 작성해 보는 건 어때?"
"백 년을 산다고 치면 이제 겨우 남은 날은 이십 년도 채 안 남은 셈이야. 그러니 정말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먹고 싶은 것만 먹고 가고 싶은 곳만 가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그렇게 하나씩 해 본 후 지워나가다 보면 심심할 틈이 아마 없을걸."
엄마의 심장에 불을 지폈다. 함께 놀아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언제든 심심하면 말해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모든 것들을 엄마가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일이다. 왜냐면 엄마는 아직 건강하니까.
얼마 전, 향년 94세로 생을 마감하고 시처럼 떠난 '칠곡 할매시인' 박금분 할매의 '가는 꿈"이라는 시가 문득 생각난다.
"인지 아무거또 업따/ 묵고 시픈 거또 업따/ 하고 시픈 거도 업다/ 갈 때대가 곱게 잘/ 가는 게 꿈이다"
삶을 마무리하는 87세에 한글을 깨쳐 시를 쓰고 영화에도 출연해 감동과 공감을 선사 해주고 간 시다.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곱게 영면에 들었다는 기사를 읽으며 엄마의 '버킷리스트' 위에도 순풍이 불어오길 바라는 바람을 달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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