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바닥 거울
[좋은 시를 찾아서] 바닥 거울
  • 승인 2023.02.14 21:4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수자 시인

가스불에 얹어둔 스테인리스 냄비

머릿속 새떼 는 사이 새카맣게 탔다

누가 바닥 검은 거울을 놓아둔 것이냐

나락으로 떨어졌던 한 때가

바닥에서 여과 없이 잔인하게 보였다

손 안에 철 수세미 움켜쥐고

젖 먹던 힘 다해 박박 문지른다

꽁꽁 언 바닥에 주저 앉아있던 만다라가

밀어 올려 차오르는 달에는

오래된 계수나무가 칡넝쿨의 손을 잡았다

꿈틀거리는 이른 봄의 부력에

꿇었던 무릎 일으켜 세우는가

태풍 지나간 바닥 끝자락에서

◇심수자= 2014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형상시학회, 대구시인협회, 모던포엠작가회 회원, 대구예술가곡회 회원. 시집: ‘술뿔’‘구름의 서체’‘가시나무 뗏목’‘종이학 날다’가 있음.

<해설> 한 시인에게 있어 일상이 다 시가 된다는 것은, 시처럼 살겠다는 진지한 암시이다. 쓸거리가 없어서 시를 못 쓸 일은 없어질 테니, 또한 사는 일에 있어 사소한 모든 일들에 의미 있음을 알게 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기도 하다. 그깟 냄비하나 태운 게 무슨 대수겠는가? 하지만 시인은 바닥이 말씀이고 경정인 것을, 태운 냄비를 철수세미로 닦는 행위를 통해 만다라가 멀지 않는 현실임을 알게 되고, 흐린 어제가 어떻게 맑아지는지. 또한 냄비와 연못을 동일화하는 과정으로 그려내는 점은 상당히 발전적인 선禪적 안목에 다름 아니다.

-박윤배(시인)-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