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예일 첫 싱글앨범 발매
황예일 첫 싱글앨범 발매
  • 황인옥
  • 승인 2023.02.16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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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대 후반에 첫 앨범 “인생은 지금부터”
축산학 전공에 축산업·포도농사
끼 많아 레크레이션·통기타 병행
‘하해히호후’ 건강 웃음법 전수
이혼 후 절망 종교·노래로 극복
경산시 대추 홍보 명예대사 활동
“가수는 음반을 내야 인정 받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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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싱글 앨범 ‘인생은 지금부터’를 발매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지역에서 활동 중인 가수 황예일.

“지난날을 생각하면 아쉬움만 가득하네/(중략)/하지만 인생은 지금부터 즐겁게 살아보자/멋지게 살아보자.” 경쾌한 리듬과 귀에 쏙쏙 들어오는 단순한 멜로디의 세미 트롯이 황예일의 허스키하면서도 구성진 목소리에 실리자 본능적으로 어깨가 들썩였다. 자신의 쉽지 않았던 인생여정을 경쾌한 리듬으로 담담하게 노래하는 모습에서 비워내고 내려놓은 중년 남성의 여유와 담백함이 묻어났다. 그는 최근에 ‘인생은 지금부터’라는 곡으로 첫 싱글앨범을 발매하고 활동을 재개했다.

황예일이라는 이름은 낯이 설다. 첫 앨범 발매이고 처음 듣는 이름이라 신인인가 싶지만, 그는 대구경북에서 레크레이션 강사와 통기타 가수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다. 최근에 황무지에서 황예일로 개명하고, 통기타 가수 경력 30여년 만인 오십대 후반에 첫 앨범을 발매했다. 이름을 개명하면서까지 첫 앨범에 진심을 쏟는 이유는 있다. 그가 녹록치 않았던 지난 날의 인생여정을 언급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7년 전 별거를 거쳐 협의이혼을 했어요.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지만 아내의 완강한 태도에 그저 기다리기만 하다 최근에 와서 다시 아내와 소통을 시작하면서 조금씩 마음을 안정을 찾았어요. 생에 대한 열망이 다시 차올랐죠.”

앨범 발매에는 두 가지 이유가 숨겨져 있다. 첫째는 지역에서 남의 곡으로 통기타 가수로 활동했지만 가수로 인정받지 못한 아쉬움이 작용했다. 자신의 곡으로 무대에 설 때 진정한 가수로 인정받는 문화를 인정한 것이다. “화가는 그림을 출품해야 화가로 인정받고, 가수는 음반을 내야 가수로 인정받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면서 늦은 나이지만 인생 첫 앨범을 내게 됐어요.”

자신만의 곡을 갖고 싶은 욕망 못지않게 인생 2막을 희망차게 열고 싶다는 열망도 첫 앨범 발매의 이유가 됐다. 이혼의 상처에서 조금씩 빠져나오고 있고, 삶에 대한 새로운 열정도 샘솟으면서 비록 무명 가수지만 당당한 가수로 살아보고 싶어졌다.

그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가수 이전에 그의 본업은 축산업이다. 축산업에 종사했던 부친의 대를 잇기 위해 축산학과에 진학했고, 졸업 후 소 키우는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축산업에 종사하면서도 넘치는 끼는 어쩔 수 없어 레크레이션 강사와 통기타 가수 활동을 병행했다. 주택개발지로 편입되기 전인 2년 전까지만 해도 경산에서 포도농사 짓는 농부의 삶도 살았다. 그는 현재 경산시 대추 홍보 명예 대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노래에 대한 열정은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됐다. 요들송의 매력에 빠져 혼자 독학으로 기타와 요들송을 공부했고, 대학 진학해서는 통기타 동아리에 들며 좋아하는 음악에 심취했다. 레크레이션 강사라는 직업은 신혼 때 찾아온 병마가 준 선물이었다. 당시 그는 차가운 바닥에서 잠을 잔 이후 안면 근육 마비인 와사풍이 찾아와 투병했다.

그 때 우연히 TV에서 본 황수관 박사의 ‘신바람 웃음건강법’을 보고 황 박사가 제안한 웃음건강법을 실행했고, 4주만 에 근육 마비 병증이 사라졌다. 자신의 경험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웃음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레크레이션 강사로 나섰다. “사람들에게 ‘하해히호후’라는 건강한 웃음법을 전수하고 있어요.”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고비는 중년이 넘어 찾아온 이혼이었다. 이혼 초기에는 아내를 원망하며 힘든 날을 보냈다. “이혼의 원인이 저였는데 당시 저는 그것을 인정하지 못했어요.” 막상 이혼을 하고보니 그는 모든 삶이 정지되는 것 같은 절망에 사로잡혔다. 그는 “삶을 포기할 생각까지 했다”며 힘겨웠던 지난날을 회상했다.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종교와 노래였다.

“종교에 의지하며 저 자신을 성찰했고, 잘못을 깨닫게 됐어요. 소만 키우며 무기력하게 살던 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노래였어요. 버스킹을 하면서 안정을 되찾아갔죠.”

신곡 ‘인생은 지금부터’는 그의 후배인 신폴이 작사하고 작곡한 곡이다. 리듬은 경쾌하지만 노랫말은 인생의 쓴맛과 단맛이 동시에 녹아있다. 그는 이 곡을 자신의 인생을 들려주듯 담담하면서도 깊이 있는 목소리를 노래한다. 그가 “지인들로부터 노래가 깊어졌다는 평을 듣는다”고 했다. 이혼을 겪으며 좌절하고 성장하며 얻은 깊이였다.

“이혼 전의 제 노래는 기쁨을 표현하는 곡들이 대부분이었어요. 레크레이션 강사라는 직업도 그런 노래를 선호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죠. 하지만 이제는 슬픔이나 아픔 등의 다양한 감정들을 소화할 수 있게 됐어요. 늦었지만 아내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인생의 아름다움을 깨달은 뒤 얻은 선물이겠죠.”

그가 신곡 발매와 함께 활동에 대한 기대감을 표했다. 다양한 무대에서 노래하고, 우사 콘서트도 재개하고 싶어했다. 그는 코로나 19 이전에만 해도 자신의 포도밭에서 포도밭콘서트로 진행했고, 축사에서 소들과 함께하는 우사콘서트도 열었다. “우사콘서트는 소들의 행복을 위한 콘서트입니다. 잠시 머물다 가는 소들이지만 제 노래를 들으며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진행했어요.”

그의 열정은 청년의 그것이었다. 여전히 꿈을 잃지 않고 꿈에 대한 열망을 키워간다. 공무원 연수원 등에서 진행하던 레크레이션 강연도 재개하고, 연극이나 독립영화에서 배우로 활동하고 싶어 했다. 코로나 19로 레크레이션 끊겼던 강연을 재개해 다시 사람들에게 웃음 치료의 탁월한 효과를 전파하고 싶어했고, 뮤지컬이나 독립영화에서 단역이라도 맡아 연기에 대한 꿈도 펼치고 싶어했다.

“제가 나이를 먹고 보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실감나는 것 같아요. 저는 여전히 새로운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최선을 다할 각오가 되어 있으니까요. 앞으로도 저의 꿈은 계속 될 것입니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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