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줌인아웃]거기서 네가 왜 나와?
[백정우의 줌인아웃]거기서 네가 왜 나와?
  • 백정우
  • 승인 2023.02.16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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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우의줌인아웃존윅3
영화 ‘존윅3’스틸컷

지난 1월 북 앤 시네마콘서트 뒤풀이 자리. 젊은 친구가 질문을 던졌다. “‘존 윅’에서 키아누 리브스가 마시는 술이 버번 블랑톤인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저 술을 가져다 놓을 생각을 했을까요. 주인공이 어떤 술을 마시게 할지, 감독이 결정하나요?” 알고 보니 그는 범어동에서 위스키 바를 운영하는 어엿한 청년사장이었다. 누구나 자기 일과 관련한 장면이 나오면 한 번 더 눈이 가는 법.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 속 소품을 정하는 건 미술감독의 영역이다. 물론 감독의 성향에 따라 시시콜콜한 것까지 직접 결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미술팀에게 맡기고 세부적으로 소품담당자가 따로 있다. 그러니까 시나리오에 ‘술을 마신다’라고만 적혀있을 때 미술감독은 영화 전체의 분위기와 쇼트의 앞뒤 맥락을 따져가면서, 배우 캐릭터와 상황에 부합하도록 어떤 술을 세팅할지 결정한다는 얘기다. 예컨대 ‘올드보이’에서 이우진이 오대수에게 보낸 그림은 시나리오 상에 ‘광대의 그림’이라고만 쓰여 있었다. 미술감독은 이 대목을 조롱의 의미로 읽어 앵소르의 그림을 찾았고 박찬욱 감독의 선택에 따라 오대수 방에 걸리게 된다.

이처럼 극 전체의 톤을 좌우하는 게 미술감독의 역할이고, 정교한 계획과 상당한 눈썰미와 극 전체를 꿰뚫어보는 눈이 있을 때 가능하다. 그래서 영화의 미술감독, 또는 프로덕션디자이너는 감독과 짝으로 움직인다. 봉준호와 박찬욱 영화의 디자인을 책임지는 류성희 미술감독이 대표적 인물이다

영화에 놓이는 소품은 큰 의미를 가질 때도 있고 아무 의미 없이 등장하기도 한다. 노골적인 상품노출은 과도한 PPL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어 조심하는 편이지만, PPL과 전혀 상관없는 제품이 예상치 않게 관객에 눈에 띄어 대박이 나기도 한다.

작년 여름, 문경에서 열린 마을영화관 건립을 위한 청년협동조합 특강. 강의가 끝나고 터미널까지 배웅하던 담당자가 내게 물었다. “혹시 ‘기생충’에 나온 문경 오미자음료 아세요? 그거 대박 났어요. 어떻게 그게 거기에 들어갔을까요?” 집에 오자마자 ‘기생충’을 다시 돌려보았다. 가정부를 내쫓기 위해 복숭아가루를 이정은 목덜미에 뿌린 박소담이 냉장고를 열고 음료를 꺼내는 장면이었다. 문경에서 재배한 오미자로 제조한 이 음료는 협찬과 무관했음에도(제조사조차 자사 제품이 채택된 사실을 몰랐을 정도로), 그러나 3초의 짧은 쇼트 덕분에 1000%라는 믿기 힘든 매출신장을 이뤄냈다.

한국영화의 괄목할만한 성장에는 미술감독의 역량도 한 몫 했다. 순수미술과 달리 영화미술은 학연, 혈연, 지연 같은 복잡한 관계에서 자유롭다. 고유의 독창성과 아이디어만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분야이다. 2000년대 이후 자유롭게 창의를 펼치려는 걸출한 감독의 등장이 미술감독의 포지션을 새롭게 견인했다는 얘기다.

그러고 보면 ‘기생충’의 오미자 음료는 그냥 들어간 게 아니었다. 이를테면 잘나가는 IT기업의 젊은 CEO와 매력적인 아내, 멋진 저택, 세련되고 심플한 라이프스타일, 와인과 냉장고, 냉장고에는 이온음료와 탄산수. 그리고 건강한 우리음료도 하나 쯤...블라블라.

백정우ㆍ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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