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비 그치고 하늘 한쪽 환해질 때
빛은 위쪽으로부터 온다
땅에서 빛이 솟아나는 걸 본적 없고
처음 내 사랑도 하늘로부터 온 것 같고
빨간 어린해가 머리위에서 폴짝 뛰어내리는 순간
우린 어른이 되었을까
사랑스럽고 따뜻한 해가 점점 뜨거워져 손도 댈 수 없는
아! 그 해가 영원히 하늘에 있을 거라는 생각
점점 더 멀어지는 빛을 잡으려는,
꼬리를 물고 무작위로 나타나는 생각에 잡혀
밤의 여정 길다 어쩌면
첫사랑도 잊고, 첫사랑이 다녀간 길도 잊고
해가 뜨든, 비가 오다 말든, 그냥
오래 잠들고 싶은데
◇정유정= 199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보석을 사면 캄캄해진다’ ‘아무 도 오지 않았다’ ‘셀라비, 셀라비’ 출간. 2021년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해설> 산중에서 해가 저무는 시간은 빠르다. 해가 다 진 것 같았는데, 잠깐 주위가 밝아지는 순간이 있다. 그 짧은 순간에 낮의 시간을 살아낸 자연도 인간도 짧지만 행복감에 젖는다. 돌아가야 할 어머니의 품속을 떠올리기도 한다. 시인은 그런 빛이 감도는 하늘을 본 것이다. 지는 해를 본 것이다. 어리기만 하던 자신이 어느새 어른이 되어있음을 함께 본 것이다. 다가오는 시간은 어둠의 시간, 시인은 산중에 홀로 뚝 떨어져 있는 고독을 발견하게 되고, 고통에 가까운 불면을 어떻게든 받아 안아 첫사랑이라도 품은 양, 깊은 잠 속으로 데리고 들고 싶은 거다.
-박윤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