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멋으로 읽는 세상] 쇠고기가 만든 역사와 질서, 우금령·육식금지령…‘먹고 싶다’는 역설적 욕구
[맛과 멋으로 읽는 세상] 쇠고기가 만든 역사와 질서, 우금령·육식금지령…‘먹고 싶다’는 역설적 욕구
  • 윤덕우
  • 승인 2023.02.19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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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부터 육식 허용했지만
농경사회 필수 노동력 인식
500년간 우금령 22회 발령
태종, 죽은 소만 매매 허락
세종, 도살현장 신고자 포상
백성들 도축 가능 상황 조성

한우
농가에서 사육 중인 한우. 예나 지금이나 대한민국 국민돌의 최고 먹거리다.

“살기 위해 먹는가? 먹기 위해 사는가?”

이 질문의 답을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 해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류의 역사는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시간들이었다. 특히, 사냥과 채집으로 식량을 구했던 초기 인류에게 먹거리가 풍족했을 리가 없다. 지금처럼 삼시 세끼가 당연히 주어지지 않았고 먹거리가 부족해지면 약탈과 정복을 통해 생존하려 했다.

농경의 시작과 정착이 보편화되면서 쌀이나 밀 등 농작물들이 주식(主食)이 되었다. 특히 쌀은 현재 세계인구의 약 60%가 주식(主食)인 만큼 인류의 먹거리다. 우리나라도 ‘밥심’의 민족이라 불릴 만큼 오랜 세월 동안 주식이 쌀이었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의 주식(主食)이 바뀌고 있다. 쌀이 육류나 빵에 밀려 연간 쌀 소비량은 계속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올해는 1인당 육류 소비량이 1인당 쌀 소비량을 넘어서는 원년이 될 것이라는 전국한우협회의 전망은 꽤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우리 민족은 유난히 고기를 좋아하는 민족이다. 특히 쇠고기에 대한 사랑은 유별나다. 그러나 쇠고기는 아무나 먹을 수 없었다. 삼국시대부터 물자 운반과 농사에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소를 잡아먹는 것은 금기였으므로 쇠고기는 소가 죽어야만 먹을 수 있었다. 불교의 나라였던 고려에서도 공식적으로 육식을 금했으나 쇠고기에 대한 사랑은 막을 수가 없었다. 고려 중기 문관인 이규보는 불교 교리를 지키려고 쇠고기 먹는 것을 끊으려고 했지만 “눈으로 보고서는 안 먹을 수가 없었다.”고 고백할 만큼 쇠고기는 ‘금지된 욕망’이었다.

조선왕조의 개국은 공식적인 육식의 허용을 의미했다. ‘이밥에 고깃국’이라는 말이 탄생하였는데 ‘이밥’은 토지개혁을 한 이성계가 준 밥이고, ‘고깃국’은 육식을 허용한 이성계가 준 고깃국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농업 국가였던 조선은 농업생산력의 핵심인 소를 지켜야만 했다.

1대 태조 때부터 23대 순조 때까지 우금령(牛禁令)이 22회 발령되었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은 역설적으로 쇠고기에 대한 우리 민족의 사랑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게 한다. 조선 태조는 몰래 소를 도축한 자들을 태형에 처해 도성 밖으로 쫓아냈고 태종은 저절로 죽은 소에 대해서만 매매를 허락했다. 세종은 죽은 소의 매매까지 금지하고 도살 현장을 신고한 사람에게 보상금을 주기도 하였다. 또한 조선 왕실은 쇠고기를 금지시키기 위해 다른 고기들을 장려했지만 효과가 크지는 않았다. 세종이 신하들에게 돼지고기를 먹자고 제안을 했으니 신하들은 거절했다고 하니 말이다.

조선 후기 유만공의 시 ‘세시풍요’에는 이런 시구가 있다. “가게에 풍성한 음식 흐뭇하게 바라보니 도처에 다리 부러진 소 많기도 하구나.” 우금령에도 불구하고 다리가 부러진 소는 도축할 수 있었다. 그래서 멀쩡한 소를 잡고서는 다리 부러진 소를 잡았다고 허위신고를 하여 가게마다 팔고 있는쇠고기가 많음을 풍자한 글이다. 결국 우금령은 조선시대 사람들의 쇠고기에 대한 욕망을 막지 못한 것 같다.

 

日, 675년~1875년까지 금기
병 치료 핑계, 환약 제조·섭취
힌두교도 “인도 소 아니니까”
해외여행 때 먹는다는 설도
2차 세계대전 후 美 수요 폭발
허파·내장 등 부속물 먹기 시작

쇠고기는 일본에서도 오랜 기간 동안 금단의 식품이었다. 675년 덴무 일왕이 육식금지령을 선포한 이후 1875년 금지령이 해제될 때까지 일본인들은 1,200여년간 육식을 금기시했다. 일본인이 키가 작은 이유가 이 때문이라는 가설이 있는데 메이지시대부터 고기를 먹기 시작하자 일본인들의 키가 급격히 커졌다는 말들이 꽤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육식이 금지된 1,200년 동안 일본에서도 병을 치료한다는 핑계로 소고기를 먹었다고 한다. 특히 쇠고기에 각종 양념을 한 후 동그랗게 빚어서 환약으로 만들어 우육환이나 간우환이라는 약으로 처방하여 먹었다고 하는데 얼마나 쇠고기가 먹고 싶었으면 저랬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쇠고기는 유럽의 역사와 질서에도 상당히 영향을 끼쳤다. 그 흔적을 영어 단어에서 찾을 수 있는데 영어로 암소는 Cow, 수소는 Ox이다. 그러나 쇠고기는 Beef로 표현되는데 어원이 라틴어 bos가 프랑스어(boef, buef)를 거쳐 영어로 들어오면서 Beef가 되었다고 한다. 즉 소는 영어가 어원이고 쇠고기는 불어가 어원이 된 셈이다.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먼저, 12세기 프랑스가 영국을 다스린 노르만 정복 시절, 피지배 민족인 영국인은 소를 키웠고, 쇠고기는 지배민족인 프랑스 귀족이 먹어서 그렇다는 이야기와 영국의 귀족들이 프랑스 지배층의 어휘를 즐겨 사용하면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지배층은 쇠고기를 먹었고 피지배층은 소를 키웠다는 점이다.
 

뭉티기
양념장에 찍어 먹는 뭉티기. '뭉텅이','뭉치'의 경상도 사투리다. 우둔(허벅지살)로 경상도 사람들이 즐겨 먹는다. 서울서는 육사시미, 전라도에서는 생고기로 불린다.

쇠고기 이야기를 하면 빠질 수 없다는 나라가 인도이다. 쇠고기를 먹지 않는 국가로 알려졌지만 인도는 쇠고기 수출 세계 1위 국가이다. 한국인들은 일반적으로 ‘인도인들은 힌두교를 믿기 때문에 쇠고기를 먹지 않는다’라는 편견을 갖고 있다. 하지만 북인도 이슬람 거주 지역 등 일부 지역에서는 쇠고기가 판매되고 있으며 힌두교도들 중에도 뒷골목에서 쇠고기를 사서 먹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힌두교도들도 해외여행에선 쇠고기를 먹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이유는 거룩한 ‘인도 소’를 죽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10억명의 힌두교도와 2억명에 가까운 이슬람교도들이 공존하고 아리안족, 드라비다족, 몽골계 민족 등 다양한 민족들이 어울려 사는 인도에서 쇠고기가 만든 질서는 인도의 깊은 역사만큼이나 짙게 나타난다.

한국인의 주식(主食)이 쌀에서 고기로 바꾼 일등 공신(?)을 뽑자면 미국산 쇠고기는 빠질 수 없다. 2021년 미국산 쇠고기 소비량은 한우를 추월한 바 있고, 쇠고기 수입육 시장에서 6년 연속 국내 수입육 시장 1위를 차지했다는 점과 미국 쇠고기의 최대 수출시장 중 하나가 우리나라인 점을 볼 때, 우리 민족의 쇠고기 사랑은 세계 최고 수준인 듯하다. 그러나 미국도 이에 못지않다. 미국에서 ‘쇠고기’는 한국의 ‘쌀’에 해당하는 음식이다. 그래서 쇠고기를 원재료로 하는 요리가 많이 발달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직후에 미국의 쇠고기 수요량이 너무 많아 쇠고기 부족으로 곤란을 겪기도 하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사회심리학의 창설자’인 쿠르트 레빈(Kurt Lewin)의 ‘장(field)’ 이론이 탄생하는데 일조한다.

나치가 권력을 잡은 후, 독일을 떠나 미국에 정착한 레빈은 미국 정부로부터 쇠고기 부족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그 당시 미국 주부들은 소의 고기 부분만을 선호하고 소의 간, 허파, 내장 등은 먹지 않아 쇠고기 부족난이 더욱 심각해졌는데 주부들의 태도를 바꾸어 소의 부속물을 사 먹게 하는 것이 레빈의 임무였다. 아무리 설득하고 노력했지만 주부들은 그들이 속해 있는 준거집단(다른 주부들)의 규범(소의 내장 등은 가난한 사람들이나 먹는다는 인식)때문에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이 때 레빈은 반대하는 주부들을 찬성하는 주부들과 함께 토론회에 참석케 하고 자유롭게 의사를 개진할 수 있는 토론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 결과 반대만 하던 주부들이 태도를 바꾸게 된 것이다. 레빈은 개인이 개인을 설득하는 것은 어려우나 집단의 힘이 영향을 미치면 자신이 처한 삶의 공간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개인과 조직을 변화시키는 집단역학의 힘을 발견한 것이다.

지금까지 쇠고기가 만든 역사와 질서를 살펴보면, 쇠고기는 민주주의의 발전과정과 비슷한 면도 있다. 소수의 지배층만이 먹을 수 있었던 쇠고기를 이제는 일반 서민들도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쇠고기는 비싸다. 자주 먹으려면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경제 성장은 사회적 동원을 가져오고 사회적 동원은 더 개방된 정치제도의 참여를 요구하므로 경제 성장과 자유 민주주의는 상관관계가 높다는 주장들은 상당부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얼마 전 한우 가격이 최고가를 찍은 적이 있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코로나지원금으로 인한 한우소비 증가였다고 한다. 평소 “돈 벌어서 소고기 사묵자”라고 말하는 ‘농담’이 쇠고기를 사랑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진심’인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 국민들이여! 2023년에는 돈 많이 벌어서 쇠고기 많이 사묵자!
 

 
이상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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