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 느릿하게 쌓이는 골목에 손수레 그림자 따라 걷는 저 남자
겨울비 오던 날 동네 술집에서 본 적 있지
화투패처럼 모인 사람들 틈에서 슬그머니 사라지던 저 남자를 알고 있지
아이를 몇 번인가 지운 마누라는 지난겨울
저 혼자 핏덩이 따라 떠났다는 푸념을
습관처럼 울먹이던 저 사내에게 들었지
아직 몇 개의 위험한 겨울이 버티는 골목
광대뼈 지루하게 자리 잡은 사내의 싱거운 웃음에
슬픔의 방패 같은 딸아이 와락 안기어 올까
목말 타는 저 해맑은 웃음이 꽃보다 아름다운 건
냉랭하던 골목이 순식간에 따스해지는
거기. 아픔이 몽땅 빠져나간 뒤야 마주할
아주 작은 외딴섬, 나 슬그머니 놓아둔다
◇우영규= 1984년 ‘대한매일일보’ 신춘문예입상. 1989년 ‘시맥문학’ 천료. 1985년 문화공보부(재)해외문학상수상. 시집 ‘틈새로 부는 바람’. ‘인애’. ‘여왕개미와 도동댁’. ‘꼰대’.평론집 ‘시문학과 언어’. 산문집 ‘싱커페이션’ 등 간행
<해설> 봄은 오고 있다. 저절로 봄이 오는 것 같지만 봄다운 봄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봄은 어느새 성큼 곁에 와 있을 것이다. 시인은 그런 봄의 전령사다. 도시라는 공간에는 화려한 불빛과 자본의 환락이 넘실대지만 그 이면의 그늘은 더 깊게 마련이어서 우리를 아프게 한다. 초라한 한 사람의 어둡고 지루한 광대뼈에 맑은 웃음이 걸리게 할 수 있는 시는 쓰기도 만나기 쉽지 않다. 해서 시인은 수레를 끌고 가는 사내에게 아늑한 외딴섬 하나를 내어주고 싶은 거다. 그게 조금 더 희망의 무게를 지닌 고철덩어리 같은 마음일 수도….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