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은행
[대구논단]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은행
  • 승인 2023.02.2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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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복 영진전문대학교 명예교수, 지방자치연구소장
갓 20대 때의 일이다.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희미하지만 시내 중심가에 있던 J은행에서 주는 광고지를 받았다. 10만 원을 은행에 맡기면 10년 후에 100만 원을 준다고 했다. 당시 100만 원은 큰돈이었다. 알뜰하게 모은 돈을 정기예금에 가입하고 은행이 약속한 광고지와 1장짜리 예금증서를 책 속 깊이 보관해 오면서 늘 흐뭇한 기분이었다.

30대 초반, 10년 만기가 되어 은행에 갔을 때 아주 황당한 일을 당했다. 20만 원도 채 안 되는 돈만 주는 것이 아닌가. 은행이 약속한 광고지를 내보이면서 만기가 되면 100만 원을 준다고 했는데 이게 뭐냐고 항의했더니 은행 이자는 물가 변동 등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은행원의 태연한 대답에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완전 사기를 당한 기분이었다. 예금할 때 그런 말도 없었고 광고지에도 그런 내용이 없었던 것 같다. 이런 일로 은행과는 거리를 뒀는데 봉급이 은행 계좌로 들어오고부터는 부득이하게 은행거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초등학교 때, 은행은 여신과 수신을 담당하는 금융기관이라고 배웠다. 어린 나이에 은행은 국가기관이란 생각을 했다. 지금은 어느 누구도 은행과 거래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시스템이 사람과 은행을 엮고 있다. 은행은 좋은 직장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무엇보다 억대 연봉을 받는 직업군에 속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노력하는 만큼 대가를 받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좋은 제도처럼 보이나 모순덩어리가 곳곳에 있다. 국가의 개입 없이는 배분 상의 문제가 늘 말썽이다.

최근 은행이 ‘돈 장사 이자 장사’를 한다면서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다. 은행의 기본 틀인 수신과 여신업무가 혼돈 속에 빠져들었다. 예금이자는 적게 주고 대출이자를 크게 올려 천문학적 수익을 지향함으로써 국민생활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은행은 주식회사다. 기업체서 수익을 많이 올려 직원들 봉급 많이 주고 성과급을 지급하는 것이 무슨 문제냐고 말할 수 있지만 은행은 당당하게 그런 말을 못하는 처지에 있다. 5개 시중 은행이 거의 담합형식으로 대출금리를 엄청 올렸지만 당사자들은 어디에 하소할 데도 없고 속만 태운다. 은행을 금권을 쥔 권력기관으로 인식하는 오랜 관습이 그 원인이다. 정부 역시 은행의 일에 개입치 않음으로써 과점 형태의 은행들이 정부기관과 같은 냄새를 풍기면서 독주할 수 있었다.

은행 대출의 급진적인 인상으로 많은 국민들이 애태우고 있지만 정말 딱한 것은 은행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영끌족들이다. 아파트 값이 한창 오를 때인 2021년 연2.52%였던 금리가 지난해 12월에는 6.04%까지 급등했다. 집은 있지만 봉급의 50% 이상을 대출 빚 갚아야 하는 하우스푸어(house poor) 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보다 못한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의 돈 잔치’를 지적하며 국민들의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은행은 공공재적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수익을 어려운 국민,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에게 상생 금융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게 배려하라, 향후 금융시장 불안정성에 대비해 충당금을 튼튼하게 쌓는 데에 쓰는 것이 적합하다”고 강조했다. 비판 여론이 고조되자 은행들은 배당 확대, 자사주 소각 등 주주 환원을 늘리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국민들에게 직접 와 닫지 않는 방안일 뿐이다.

은행을 금융기관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정부기관은 아니다. 국가의 인·허가를 받아 사실상 과점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인식하여 경제시스템에서 은행의 기본 역할을 착실히 해 나가야 한다. 대출 이자에만 집착하지 말고 성장성·수익성 있는 기업에 운영자금을 빌려주고 그 과실을 예금자와 공유하는 일이 은행의 본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5대 은행의 과점을 해소하기 위해 은행 간 경쟁을 유도하고 금융과 IT간 영업장벽을 낮추어 유효경쟁을 촉진하는 방안 등이 검토될 수 있다는 말도 있지만 무엇보다 은행들의 자발적 개혁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은행이 첫째로 해야 할 일은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서 대출 이자를 최대한 낮추는 일이다.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형식적으로 금리를 낮추는 것 같은 모양새는 피해야 한다. 영끌족, 집값 전세 앙등으로 대출을 받은 서민과 자영업자들의 빚 고통을 덜어주는 일이 시급하다. 좋든 싫든 국민들은 은행과 불가근 불가원의 관계에 있다. 5개 은행의 변화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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