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온의 민화이야기] 민화를 알아보자, 상징 몰라도 재밌는 ‘생활그림’…조형·회화적 연구 더 필요
[박승온의 민화이야기] 민화를 알아보자, 상징 몰라도 재밌는 ‘생활그림’…조형·회화적 연구 더 필요
  • 윤덕우
  • 승인 2023.02.22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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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백성이 향유했던 ‘속화’ 뒤이어
19세기 말 신분제 폐지와 함께 민화 출현
20세기 초 전업작가 등장 미술시장 형성
日 평론가 야나기, 무명작가 책거리 보고
“민중에 의한 그림” 칭하며 민화 명칭 사용
민속문화 중요성 깨달은 연구가 조자용
1960~70년대 호작도 등 수백여점 발굴
요즘 흔히들 연예인들은 부캐(부 캐릭터의 약자)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부캐가 무슨 뜻인지 찾아보니 몇 년 전 TV 방송국 예능 프로에서 한 연예인이 다양한 직업과 캐릭터를 가지고 변신하는데서 비롯된 신조어라고 한다. 처음 등장할 때는 낯설기도 하고 이상했는데, 어느덧 일반인들도 요즘은 부케를 가지고 활동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고 당연한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본의 아니게 필자도 부캐를 가지고 있다. 원래 주 캐릭터는 민화(民畵)와 전혀 상관이 없이 밥벌이를 하는데.. 요즘은 필자의 본캐를 아는 사람들에게 민화작가라고 부캐를 소개하면 당연히 납득이 되는 분위기가 되었다. 그러면서 민화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도 받게 되는데. “궁금한 게 있는데 민화작가시면... 민화가 뭐에요?”라고 많이 물어 본다. 늘 받는 질문인데도 민화와 관련된 민화이야기를 쓰면서, 한 번도 민화가 무엇인지. 어떤 그림을 일컫는지 다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많은 대중들이 알고 있는 민화가 왜 민화로 불렸는지 소개해 보려고 한다.

대중들에게 민화에 대한 인식은 대부분 TV 드라마를 통해 각인되어 있다.

특히, 조선시대 사극을 주제로 한다면 주인공의 배경 화면에 화려하게 등장하는 그림, 일월오봉도, 모란도 병풍, 화조도 등등 일 것이다.

이런 그림들은 채색이 화려하고, 구도가 안정적이며, 무엇보다도 그림의 완성도가 수준급이다. 이런 그림들은 조선시대 그림 그리는 일을 관장하는 관청인 도화서 화원들의 작품이고, 엄밀히 따지면 이런 그림들은 궁중채색화, 궁중장식화이다. 옛날 조선시대에는 이런 그림들을 민화라고 일컫지는 않았다. 그러면 궁중장식화와 반대되는 그림을 뭐라고 불렀을까? 문헌상에 존재하는 것은 속화(俗畵)라고 해서 궁중이 아닌 일반인들의 향유하는 그림을 총칭했다. 독자들이 아는 김홍도나 신윤복이 그린 그림도 이 속화(俗畵)혹은 풍속화(風俗畵)에 속하는 것이다.

이후 그 속화(俗畵)는 19세기말 우리나라의 시대적 변화와 정치, 사회, 문화가 급변하면서 현재 대중들이 알고 있는 민화가 출현하기 시작했다.

특히, 조선말기 신분제의 와해에 따른 양반층의 사회적 몰락, 경제적 위상의 부상한 새로운 계급을 출현, 도화서의 해체에 따른 전업화가의 등장으로 미술시장이 재편, 확대 되면서 ‘민(民)’의 개념이 시대적으로 대두된 20세기 초에 대량으로 제작, 소비된 그림을 일컬어 민화라고 할 수 있다.
 

까치호라이-계관미술
<계관미술> 1976년 겨울 창간호에 소개된 '사설미술관순례1- 에밀레미술관'은 까치호랑이로시작한다.

민화라는 명칭을 처음 공식화 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인 미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 3. 21 ~ 1961. 5. 3)가 1929년 일본의 오오쓰에(大律繪)라는 민속학적 회화에 대해 민화라 호칭한 것에 기인되면서 시작되었다. 민화가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야나기 무네요시가 조선의 여러 곳을 여행하고 수집한 생활그림들에 대해 그 미적 가치와 특질을 논하면서 신비스럽고 아름다움을 지닌 ‘불가사의한 조선의 민화’라는 글을 1959년 8월 <민예(民藝)>지에 발표함으로서 시작되었다.
 

책거리-일본민예관
<책거리>2폭, 작가미상 19세기, 지본채색, 각 64×31.9cm, 52.8x28cm, 일본민예관 소장.

야나기 무네요시는 한국의 전통 미술 및 공예품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이에 대한 평론 및 수집을 하였다. 한국의 미를 설명하면서 한국 민족의 특성을 심도 있게 분석하였다.

그러던 중 조선시대 무명작가의 책거리 그림을 접하면서 장식적인 문양과 상식적인 원근법이 뒤집어져 있는 비합리적인 그림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으며 이 그림을 누가 그렸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면서 조선의 백성(民)이 그린 그림이니 “민화란 민중의,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그림”이라고 민화를 정의하면서 조선의 민화 컬렉터가 되었다. 이 덕분으로 1984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보관문화훈장을 받았으며 야네기 무네요시에 대한 평가도 긍정과 부정사이 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민화라는 명칭을 일본인이 정했다는 사실과 민화와 궁중장식화의 범주가 혼란스러워 최근까지도 “민화(民畵)라는 명칭을 쓰지 말자. 민족화라고 하자. 겨레그림이라고하자. 한얼화라고 하자.”는 등의 다양한 논의가 있었고, 지금까지도 명칭에 대한 논의는 현재 진행 중이다.

자 그러면 여러분들이 아는 민화는 어디서부터일까? 이제 민화라는 명칭과 현재 민화의 붐이 일어난 그 시초를 알아보자.
 

조자용-계관미술
범어사 돌도깨비와 조자용 사진출처: <비나이다비나이다>(조자용지음,삼신학회프레스 1996)

1926년 황해도 황주 태생인 고(故)조자용 박사는 1947년 미국 밴더빌트 대학에서는 토목공학을 공부하고, 하버드 대학원에서 현대 구조공학을 공부했다. 해방 후 첫 미국유학생 일원이었던 조 박사는 1954년 6.25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대한민국으로 돌아와서는 미국에서 배운 지식을 대한민국 재건하는데 보탰다. 동산병원, 대구 계명대, 경북대, 원주 감리병원, 부산 침례병원, 광주 장로교병원, 을지로 메디컬센터, 서울YMCA 등 대한민국의 수많은 건물을 역작으로 남겼다.

그는 미국유학생활 중 참가했던 인디언 캠프를 통해 민속 문화에 대한 고민을 하고 그동안 가슴 속에서만 꿈틀대고 있었는데, 그 시절 ‘잘살기 운동’을 표방한 ‘새마을 사업’으로 우리의 민속 문화를 천시하고 말살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민속 문화의 모태인 삼신사상, 도깨비, 장수바위, 그리고 민화 등에 관심을 갖고 그 근원을 깊이 연구하기 시작했다.
 

호돌이
1988년 서울 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

1960~70년대 아무도 우리 민화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 조 박사는 민화의 중요성과 가치를 깨닫고 전국을 다니며 자료를 발굴, 수집했다. 그 과정에서 유명한 까치와 호랑이(호작도)를 비롯한 수백여점의 귀중한 민화들을 발굴했다. 바로 이 호작도의 호랑이를 모태로 해서 88 서울올림픽의 마스코트인 호돌이가 탄생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왕 도깨비를 모태로 한 2002 한일월드컵의 붉은악마 형상도 마찬가지다.

조자용 박사 덕분에 우리는 지금의 민화에 대한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민화를 뜻 그림, 이야기 그림으로 보는 동시에 순수한 그림 회화(繪畵)로 보기도 한다. 그러니 민화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술인 동시에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는 상징체이기도 하다. 이부분에 대해서는 필자도 공감하고 있다.

아마도 민화를 그렸던 당시 사람들은 분명 민화를 오늘날과 같은 차원에서 하나의 미술 작품, 회화로서의 미학적인 기준에 의해 판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상생활에서의 실제적인 필요에 따라 그려진 생활화를 반복해서 그리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개성적이고 해학적이며 불가사의한 조형의 힘이 스스로 배어 나왔을 것이다. 더불어 민중의 집단적 소망, 이상을 담아 그리는 것이 유일한 목적인 민화인지라 그 기법은 되풀이 되고, 불가피하게 상투적 양식을 보이지만 그 안에서도 저마다 그린 이의 개성과 솜씨에 따른 묘한 편차를 발생시키면서 이질성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또한 민화의 맛이라고 할 수 있다.

민화란 특정한 이야기를 도상화(圖像化)시킨, 읽는 그림이다. 민화에 그려진 무수한 도상들은 저마다 의미를 지닌 상징체계들이라 그 의미를 알지 못하면 본래 그 그림에 대한 온전한 감상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도상을 알지 못해도 그림 자체를 즐기는 데는 큰 어려움은 없다. 이미 민화는 회화로서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고, 누구에 의해 그려졌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민화 자체로서의 조형성, 회화적 묘미와 특질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민화는 도상이기 이전에 이미 그것 자체로 충분한 회화, 그것도 탁월하고 유례를 찾기 힘든, 특별한 요소들을 지닌 회화임을 거듭 상기해 보아야 한다. 한국인 특유의 창조력과 상상력의 저장소, 회화적 매력을 거느리고 있는 민화, 그것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해보려는 노력으로 민화를 민화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박승온ㆍ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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