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나의 숲을 찾아서
[문화칼럼] 나의 숲을 찾아서
  • 승인 2023.03.01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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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칼럼니스트
만약 미국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2년여의 숲속 생활을 하지 않고, 하버드 출신답게 경제적·사회적으로 안정되고 출세 지향적인 삶을 살았다면 오늘 날 그는 우리에게 어떤 인물로 남았을까? 아마 지금처럼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또 좋은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살아생전에도 자신의 철학인 자연을 사랑하고 초월주의자의 삶을 실천하는 것으로 유명했다지만, 오히려 세상을 떠난 후 근래에 와서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그의 체험을 기록한 책 ‘월든; 숲속의 생활’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평화를 선물하고 있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헨리 소로는 명문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주로 측량일, 목수 등 몸을 움직이는 일로 생계를 꾸려갔다. 그리고 여러 잡지, 신문에 글도 기고하며 지내다 나이 스물여덟 되던 해 고향 메사추세츠 주 콩코드 인근의 월든 호숫가 외딴 숲속에 4평 남짓한 오두막을 직접 짓고 두해가 넘는 시간동안 홀로 생활한다. 그가 미래가 창창한 청춘의 시절에 스스로 자발적 빈곤과 고립된 시간을 가진 것은 인간의 삶을 공정하고 현명한 눈으로 관찰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저 방해 받지 않는 곳에서 개인적인 일을 하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19세기 중반의 미국 사회를 ‘참으로 많은 사람이 절망의 인생을 묵묵히 살아간다.’고 표현했다. 조금 더 넓은 집에서 많은 살림살이를 갖추고 기름진 음식을 배불리 먹기 위해 삶을 돌아볼 새도 없이 일만하는 사람을 불쌍히 여겼다. 그리고 재산을 쌓아 놓고도 그것을 어떻게 써야할지 몰라 쩔쩔매는 사람들에게 결국 황금은 족쇄일 따름이라고 생각했다. 작가는 이런 것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하며 노동과 휴식 그리고 명상과 독서를 가까이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의 표현처럼 이시절의 이야기를 ‘자기의 삶에 관해서도 소박하고 진실한 글’로 남겼다.

‘소로’는 숲속의 조그만 오두막집에서 최소한의 의식주로 지냈지만 그곳의 자연과 온갖 생물들을 깊이 응시하며 영혼의 교감을 하는 가운데 오히려 그 누구보다도 풍요로운 자족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월든’이라는 책은 이런 미시적인 것들에 대한 섬세하고 담백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몸소 실천하고 또한 우리에게 가르쳐 준 덕분에 우리는 자신의 삶을 한번 쯤 돌아보게 된다. 팬데믹 등 세상에 어수선한 일들이 많아질수록 그의 책은 더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리라 생각한다.

헨리 소로우가 그랬던 것과 일맥상통한 길을 걸어간 이가 있다. 2013년 거장 ‘유리 시모노프’가 이끄는 모스코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우리에게는 정명훈이 2위를 한 1974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의 우승자로 유명한 피아니스트 ‘안드레이 가브릴로프’가 내한했다. 당시 나는 마침 비자문제로 일시 귀국한 딸과 함께 거금(?)을 들여 공연을 보러갔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에 차이코프스키 ‘비창’이었으니 러시아 아티스트들에 의한 최상의 공연이었다.

이런 음악적 감동 외에도 나의 눈길을 끄는 대목이 이었다. 다름 아닌 가브릴로프의 삶이었다. 그는 소련 체제 비판에 따른 5년간의 가택연금기간 동안, 절망하지 않고 엄청난 공부를 하며 그 시간을 이겨내었다. 그 후 복귀하여 최정상의 무대에서 연주를 이어가던 중 이번에는 스스로 무려 8년간이나 무대를 떠났다 한다. 다름 아닌 종교, 철학 등 인문학 공부를 위해서였다.

내가 수성아트피아에서 일할 때 쇼팽콩쿠르 우승자 ‘라파우 블레하츠’와 대구 출신의 정상의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의 듀오콘서트를 유치한 적이 있었다. 블레하츠는 쇼팽콩쿠르 우승 후 10년 이상 최고의 무대에서 활약하다 그 역시 어느 날 스스로 1년 간 연주 생활을 접었다. 다름 아닌 철학박사 공부를 마무리하기 위함 이었다. 직접 만나본 그는 정말 겸손하고 조용했으며, 수줍은 미소의 전형적인 외유내강 형 젊은이 이었다. 김봄소리와 블레하츠와의 아름다운 우정이야기는 한편의 동화 같다. 이는 블레하츠의 따뜻하고 겸손한 마음이 있었기에 이루어 졌으며, 그것이 이어져 최근까지 두 사람이 함께하는 음악은 계속되고 있다.

이들 세 사람이 보여준 행보는 참으로 울림이 크다. 숲으로 들어가지 않았어도, 그렇게 긴 시간동안 무대를 떠나 인문학 공부를 하지 않았어도 그리고 철학박사 학위가 없더라도 누가 감히 그들에게 뭐라 하겠는가! 스스로를 속이지 않기 위한,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그리하여 자족할 수 있는 삶을 찾기 위한 그들의 결단 앞에 우리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사람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부끄럽지 않은지 몸소 실천 한 그들은 진정 우리가 우러러 봐야 할 사람들이다. 나를 더 성숙시켜 줄 숲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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