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신라, 윤상렬 개인전 ‘A little’… “휴머니즘이 바탕돼야 모두에게 편안한 화면 구축”
갤러리 신라, 윤상렬 개인전 ‘A little’… “휴머니즘이 바탕돼야 모두에게 편안한 화면 구축”
  • 황인옥
  • 승인 2023.03.0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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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까지
‘침묵’ 연작 작품 30여점 소개
샤프펜슬·선으로 감정 녹여내
작업은 10호 이내 정방형 선호
시기별 변화 속 ‘독자성’은 일관
윗대 어른·형제·부인 모두 ‘화가’
“잘 팔리기 보다 좋은 작품 염원”
윤상렬작-침묵
윤상렬 작 ‘침묵’ 연작

영화에서 유혈이 낭자한 잔인한 장면보다 식칼을 들고 누군가를 노려보는 장면에서 모골이 더 송연해지는 법이다. 폭풍의 중심에 들었을 때보다 폭풍 전야가 더 불안한 것과 같은 이치다. 두려움의 근원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불확실성’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건 전과 후의 공포에 대한 밀도의 무게를 똑 같이 배치할 수 있다면 그는 유능한 감독임에 틀림없다.

윤상렬 작가의 작품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잘 만든 영화를 떠올렸다. 작업의 준비과정부터 작품으로 완결된 화면까지, 어느 하나 의미 없이 진행되는 것이 없었으며 작업의 전 과정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전해졌다. 하지만 자막이 올라가면 밀려오는 감동에 꼼짝 할 수 없게 만드는 영화처럼, 완결된 그의 화면에선 묵직한 감동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윤상렬 개인전 ‘A little’이 갤러리 신라 대구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의 최근작인 ‘침묵(Silence)’ 연작의 연장선상인 작품 30여점을 소개하고 있다. 작업은 ‘겹’의 연속이다. 종이에 샤프펜슬로 가로나 세로 선을 수없이 그어 화면을 선으로 겹겹이 채우고, 그 위에 디지털로 선을 프린팅 종이를 일정한 간격을 두고 겹친 후, 유리 대신 얇은 색으로 마감된 투명한 아크릴판을 액자 틀에 끼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화면에 그은 선들의 겹과 아날로그 화면과 디지털 화면 그리고 아크릴판을 중첩한 겹이 끝을 알 수 없는 공간감과 깊이감으로 이끈다.

“겹쳐진 화면들에서 강하게 밀도감이 드러납니다. 자세히 보면 겹쳐진 선들이 드러나기도 하고 뒤로 밀리기도 하며 다양한 감정선이 오고 갑니다. 마치 살아있는 화면 같고, 회화보다 더 화화적인 경험을 하게 되죠.”

‘예민함’은 예술가의 전매특허다. 그 예민함에서 시대를 초월하는 위대한 예술이 탄생한다. 그렇더라도 윤상렬의 예민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작업의 재료를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작업 방식에 이르는 형식적인 측면과 개념을 전개해가는 내용적인 측면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대충 하는 법이 없다. 비록 느리더라도 스스로 완벽하다고 인정할 만큼 필요충분조건이 충족되어야만 비로소 작업을 진행한다. 이는 작업을 철저하게 작가 자신과 동일시하는 태도와 맞물려 있다.

“제 작업은 제가 살아온 삶의 여정이나 경험들에 대한 이야기를 핵심으로 하고 있어 다분히 개념적입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느꼈던 감정이나 관념들을 하나의 선에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죠.”

윤상렬 작 '침묵' 연작. 갤러리 신라 대구 제공
윤상렬 작 '침묵' 연작. 갤러리 신라 대구 제공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줄 때 설득력을 획득하려면 진실해야 한다. 미화하면 거짓이 난무하게 되고, 언젠가는 들키게 된다. 그 역시 자신의 이야기를 수사처럼 서술하는 것을 경계한다. “진실만큼 큰 힘을 갖는 것도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일말의 거짓조차 배제하려 애쓴다.

“남의 말이나 책에서 본 것을 섞으면 결국 질서가 없어지게 됩니다. 모든 예술이 힘을 가지려면 결국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겠죠.”

어떤 작가든 작업의 재료인 물성에 진심인 것은 인지상정이다. 비가시적인 내적 상태를 가시적으로 표현하는 매개로 물성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그가 재료에 들이는 공은 유난하다. 섬세하다 못해 깐깐하기까지 하다. 작업의 힘은 “작가가 얼마나 작업에 진실을 쏟아냈는가?”에 달렸다는 신념 아래 최대한 진실을 함축할 수 있는 물성을 찾으려 애쓴다. 그중 대표적인 물성이 샤프펜슬이다.

샤프펜슬은 그에게 필기구로서가 아닌 조형 도구다. 물감 대신 샤프펜슬로 수직이나 수평의 선을 반복적으로 그으며 탄탄한 화면을 구성해간다. 샤프펜슬의 굵기나 흑연의 농담으로 다양한 감정선들을 쌓아가는 작업 특성상 샤프펜슬은 그의 예술세계를 표현하는 핵심 매체로 기능한다. “저는 항상 제가 어렸을 때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았으며, 어떤 실패를 했는지를 기억하고 정리하는 습성이 있었어요. 그 정리된 자료들이 샤프펜슬에 응축합니다.”

샤프펜슬과 선(線)이라는 단조로운 패턴으로 변화무쌍한 감정들을 녹여내고, 다양한 감정들을 충돌시키고 마침내 침묵의 감동으로 승화해 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역량을 발휘한다면, 하나의 경지를 경험하게 된다. 그는 샤프심의 굵기와 흑연의 무수한 차이에 주목하며 자신만의 경지를 추구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샤프펜슬이란 샤프심을 샅샅이 뒤지고, 그 중에서 자신의 작가정신에 부합하는 7~80여개의 샤프펜슬을 채택하며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해간다.

“샤프심을 확대하면 입체적인 곡선입니다. 저는 샤프심에서 그보다 더 완벽한 조각은 없음을 발견하고 샤프심을 미술의 핵심 매체로 채택했어요.”

진실된 작업을 향한 그의 깐깐한 면모는 작품의 규격을 결정짓는데 까지 확장된다. 그의 작품들에는 다양한 규격들이 존재한다. 시중에 유통되는 규격과 동일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자신의 작업의 형식과 내용에 일치하는 자신만의 규격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제가 직접 작품에 맞는 규격을 찾아내고, 제작을 맡겨 틀을 만듭니다.”

작업의 규격은 10호 이내의 정방형을 선호한다. 70여 종류의 규격을 실험하다 10호 이내의 정방형을 자신만의 규격으로 결정했다. “작품의 크기보다 밀도가 더 중요하다고 본” 선택이었다. “큰 작품으로 승부하지 않아도 충분히 밀도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제 모토인데, 정방형의 10호 이하의 규격은 거기에 부합합니다.”

그의 내면에 기록된 감정들 중에서 작업의 동력이 되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그의 두려움은 근원적인 감정차원과 개인적인 감정차원의 총합으로 엮인다. 그는 인간이 가진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이라는 7가지 감정의 근원에 두려움이 있다고 인식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누구나 두려움에 노출됩니다. 감정에 휘둘리는 이상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죠.”

개인적 차원의 두려움은 그의 가족사로부터 기인한다. 그의 부모는 물론이고 아버지의 형제와 그 부인들까지 모두 화가로 평생을 살아왔다. 그가 언급하기를 꺼리지만, 그들 중에는 한국 화단의 걸출한 화가도 있다. 그는 늘 윗대 집안 어른들이자 선배 작가들인 가족들에게 누가 되지 않는 작가로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았다. “작품이 잘 팔리는 작가보다 좋은 작품을 보여주는 작가이기를 늘 염원하며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집안 어른들이 제게 주신 가르침이었죠. 그런 가르침에 못 미치는 작가로 살아가게 될까봐 그게 늘 두려웠어요.”

작가로서 그의 염원은 악을 쓰지 않아도 작업이 자연스럽게 굴러가는 작가로 사는 것이다. 그의 바람은 일견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작업이 시스템화 됐기 때문이다. 규격과 농도가 제각각인 샤프펜슬로 그은 선들을 조합하기만 하면 작업은 무한확장이 가능하다. 작업의 재료와 조건과 규칙이 정리되어 있어 가능한 시스템이다. 여기에 때때로 변화하는 자신의 감정상태만 달리하면 언제든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아도 작업은 양태는 무한정 달라진다.

그가 ”직선이라는 단조로운 조형요소로 나올 수 있는 게 많지 않을 것 같다고 예단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단언했다. 내면의 시각적인 표현인 만큼 진실한 마음으로 집중만하면 늘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다는 의미였다. ”저의 내면을 반영하기 때문에 작업은 즉흥적으로 진행됩니다. 하지만 샤프펜슬과 선이라는 조합만 있으면 작업은 얼마든지 배양이 가능하게 됩니다.”

그가 작업 전반에 걸쳐 추구했던 가치는 독자성이다. 어디서 본 것, 누군가의 방식을 떠올리는 작업은 그가 가장 경계하는 지점이다. 그는 스스로 찾고, 스스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대학 다닐 때부터 자신만의 것을 고집하는 성향은 두드러졌다. “작업이 곧 나여야 했어요. 제 성격과 제 캐릭터에 맞는 것을 찾고 만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어요.”

작업은 시기별로 변화를 거듭했다. 어린 시절 기억과 사회적 경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건과 현상, 관념을 총체적이고 축적된 기표들로 표현한 자연스러운 긁적거림의 흔적인 ‘먼지 드로잉(Dust drawing)’, 집중적으로 붙여 형상화된 ‘다중 징표(Optical evidence)’, 그리고 반복적 긋기로 쌓여진 겹 ‘침묵 (Silence)’ 등으로 진화해 왔다.

작업의 외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추구하는 것은 있다. 작업의 출발에 작가 자신을 놓은 것이다. 과거의 경험이나 기억, 또는 감정들이 환원되어 현재의 자신과 조우하며 양산된 자신의 감정들을 작업의 근간으로 한다. 자신으로부터 출발한 감정들은 화면에서 깊은 침묵으로 치환된다. 이때 그가 역점을 두는 것은 모두에게 편안한 화면을 구축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불편한 화면은 작가 자신도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는 편안한 화면의 단초로 휴머니즘을 언급했다. “가장 중요한 거는 휴머니즘”이라고 했다. “저는 내면에 휴머니즘이 없으면 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휴머니즘이 바탕이 깔려 있는 상태에서 출발해야 저의 기억과 그것이 만나 밀도있는 화면으로 연결된다고 믿거든요. 저의 휴머니즘은 저의 부모님과 윗대 어르신들로부터 자연스럽게 물려받은 정서인 것 같아요.” 전시는 12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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