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동품 가득한 토속음식점에 갔다
마당가에 놓인 소쿠리 비에 젖고 있었다
처마 밑 동개-동개 쌓은 장작
다 젖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내 마음을 호박넝쿨이 둥글게 말아 올렸다
반쯤 젖은 장작 어깨 위로 둥근 호박잎
쫘-악 몸 펼쳐 젖고 있었다
대신 젖는다는 것은
대신 아파한다는 것이다
아픔도 그리움의 모자를 쓰고 익으면
몸 속 깊은 향이 배여난다며
전골찌개 뚜껑 들썩이며 익어가고 있었다
◇김호진= 대구 출생. 영남대학교 약학대학 졸업 1994년 ‘심상’ 신인상 등단. 건강문예지 ‘초두루미’ 편집주간 역임. 제16회 일연문학상 수상. 현재 대구시인협회 회장. 시집 ‘생강나무’‘아흐레는 지나서 와야겠다’가 있음.
<해설> 풍경을 눈으로 추적하다가 시인은 “대신 젖는다는 것은/ 대신 아파한다는 것이다” 라는 직관에 이르러 다시 끓는 전골찌개의 후각으로 마무리되는 시인의 시는 장작을 덮어주는 호박잎처럼 따뜻하다. 아마도 불을 지피지 않아도 그냥 둔 장작만으로도 이미 시인은 넉넉한 어떤 경지에 이르러 있는 듯, 예 선비들이나 갖추었음직한 심성을 잘 드러낸, 시인의 시는 품격을 갖춘 한편의 시로 읽힌다. 넉넉함의 배경에는 너른 잎을 출렁거리며 끌고 가는 넝쿨이 있다는 것을 결코 그는 간과하지 않는다. 사람이 사는 일 또한 덮어주고 가려주는 관심과 관계 속에서 유토피아적인 풍경이 태어난다고 시인은 넌지시 말하고 있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