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극일(克日)의 길
[대구논단] 극일(克日)의 길
  • 승인 2023.03.0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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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환 전 경산시교육장
유럽은 대항해시대 이후 세계 도처에서 경쟁적으로 식민지를 만들었다. 영국은 2차세계대전 후 식민지 인도에서 철수할 때 면제품을 짜던 기계를 다 부수고, 거기에서 일하던 수십만 명의 인도사람의 양 손목을 다 잘랐다. 본국의 면제품 수출 전선에 장애를 줄 요인을 사전에 제거한 것이다.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는 아프리카 콩고에 엄청난 패악을 끼쳤다. 식민지 콩고는 국토의 절반이 고무나무였다. 고무나무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국왕은 고무 수탈을 위해 콩고 원주민을 감금하고, 손목을 자르고, 강제 노동을 거부하는 마을의 전 주민을 몰살시켰다. 벨기에 식민지 시작 전에 2천만 명이었던 콩고 인구가 식민지가 끝날 때 850만 명으로 줄었다.

일본은 그렇지는 않았다. 일본은 우리의 농토와 쌀을 빼앗고, 전쟁물자로 밥그릇까지 거두어가고, 위안부 동원과 징용을 시행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초등학교를 만들어 한글과 글자를 가르쳤고, 저수지와 상하수도, 철도와 도로(신작로)를 놓고 병원, 발전소, 공장을 지었다. 조선 말 150년 동안 인구는 거의 늘어 나지 않았으나, 1910년 국권 피탈 35년 후 인구는 두 배로 증가하였다. 패전 후 일본이 본국으로 돌아갈 때 미군을 통해서 23억 달러를 남한에 인계해 주었고, 동국제강, OB맥주, 화신백화점, 동양시멘트 등 수십 개의 대기업을 남겨 놓고 갔다.

조선은 왕족과 양반의 나라였다. 그들은 국민의 70%를 상놈과 종놈으로 만들어 지배하고 착취하였다. 조선 역사상 노비를 가장 많이 늘렸던(전체 인구의 40%) 왕은 세종대왕(노비종모법 시행)이며, 퇴계 선생은 300여 명의 노비를 거느렸다. 조선은 백성을 위한 나라가 아니라 양반을 위한 나라였다. 그러나 20세기 초부터는 차츰 양반 상놈의 경계선이 무너져 갔다.

그렇다고 일본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다. 팩트가 그렇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삼일절 기념사에 대해 이론이 많다.

이제까지 대통령들은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에 향해 거칠게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보수, 진보 대통령을 막론하고 국민의 반일 감정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 보이지 않는 약속이었다. 우리 국민은 일본에 대해 일종의 트라우마가 있는지 스포츠 경기에서도 무조건 일본을 이겨야 하고, 일본은 나쁜 X이고, 길이길이 원수를 갚아야 하는 그런 나라였다. 이런 국민의 정서를 자극하여 정치적으로 이득을 보려고 하는 세력은 기회만 생기면 국익은 생각하지 않고, 국민감정에 불을 붙이고 확대 재생산하였다.

지난번 삼일절 기념사 논쟁을 보자.

대통령은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했다.’ ‘일본은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 경제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라는 미래지향적인 기념사를 했다. 이에 야당은 ‘이완용이와 다를 바 없는 발언이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친일파적 생각이다.’라고 반론을 폈다. 그러나 민주당 출신 대통령들의 기념사도 도긴개긴이었다. ‘우리는 19세기에 우리 조상들이 범했던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당시 우리가 일본과 똑같이 개국하고 근대화를 했던들 우리는 일제 침략을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김대중)’ ‘한일 두 나라는 동북아의 미래를 함께 열어가야 할 공동운명체이다. 서로 협력해서 평화 정착과 공동번영의 길로 나아가지 않고서는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보장할 수 없다(노무현)’.

민주당 출신 대통령들의 기념사는 윤 대통령의 기념사와 무엇이 다른가? 친일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가? 이 논쟁은 강제 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 외교 사상 최대의 참사이다,’ ‘삼전도 굴욕과 다를 바 없다,’ 그러다 ‘계유늑약’ 까지, 비약하고 있다.

이제 우리도 선진국이다. 구매력 기준 1인당 GNP는 이미 일본을 넘어섰다. 반도체 등 IT산업이나 조선, 석유화학 등의 제조업 분야에서 일본을 압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 사정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반일로 정치적 이득을 챙기려는 세력은 반일을 즐기고 있다. 우리는 포항제철이 일본 최강기업 ‘신일본제철’을 넘어선 일, 삼성이 벤치마킹하던 ‘소니’를 이긴 사례를 거울삼아 극일의 길로 가야 한다. 과거 일본의 가해 역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과거에 매몰되어 국익을 그르치는 일은 더욱 안된다.

조선 성종(成宗) 때 ‘신숙주(申叔舟)의 운명이 가까웠다’는 말을 들은 왕은 승지를 보냈다 “나에게 남길 마지막 유언이 있는지” 물었다. 신숙주는 “일본과 등지지 마십시오. (失和)”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일본과 사이가 좋지 않게 지내지 말고 이용하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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