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불타는 봄
[달구벌아침] 불타는 봄
  • 승인 2023.03.12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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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붉은 신호등 앞에 정차한 승용차의 반쯤 내려진 유리창 사이로 연기가 새어 나온다. 연이어 타다만 담배꽁초가 휘, 튕겨 나와 바닥으로 떨어진다. 바로 뒤에 선 내 차 안으로 담배 연기가 스멀스멀 기어든다. 매캐하다고 느끼는 순간 녹색 신호등이 켜진다. ‘저걸 찍어야 했었는데….’ 차는 떠나고 증거는 소멸한다. 찰나의 불꽃처럼, 한순간에 벌어진 연기煙氣의 연기演技가 이어진다.

전국 곳곳에서 쓰레기 소각을 하다 번진 불씨로 크고 잦은 산불이 발생한다는 뉴스가 연일 쏟아진다. 산불재난 국가 위기 경보 ‘경계 단계’ 발령이 내려진 가운데 앞산에서 일주일 만에 또 불이 났다.

연기가 일대를 뒤덮은 가운데 헬기가 현장으로 진입하고 산등성이 위로 시뻘건 불길이 타올랐다. 아파트와 주택이 밀집해 있는 곳이라 화재 발생 직후에만 사백여건에 달하는 신고가 접수되었다고 한다. 민가로 불이 번지진 않아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앞산순환도로는 순환되지 않았고 극심한 차량 정체를 빚었다며 인접해 사는 지인들의 소식에 카톡, 카톡 하루 종일 휴대전화에 불이 났다.

속담에 ‘열 포졸이 도둑 하나 못 잡는다’는 말이 있다. 자연발화든 실화든 방화범을 쉬이 잡을 수 있을까? ‘산불 조심’이란 플래카드 아래 눈 부라리며 지키고 앉은 사람이 백이라도 홧김에 불이나 질러버리겠다며 작정하고 덤비는 사람을 무슨 수로 잡을 수 있단 말인가.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만큼은 제대로 고쳐야 하는 것처럼, 때로는 한 명의 똑똑한 사람이 열 도둑을 막아 낼 순 있다. ‘자나 깨나 불조심, 꺼진 불도 다시 보자’고 외칠 수밖에.

도시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쓰레기로 인한 환경오염이 심각해지고 있다. 봄이면 뉴스와 신문을 통해 황사와 미세먼지 주위경보가 연일 쏟아진다. 미세먼지 발생량 감축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자동차 배기가스와 석탄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추측이 난무한다. 한 번 피운 연기를 막을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미세먼지 발생의 원인을 되짚어보고 줄여나가는 예방만이 최선이라 여겨진다.

특히 불법 쓰레기 소각을 신고하는 능동적인 실천만이 우리나라의 미세먼지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사는 앞집과 옆집, 주변 이웃들 대부분이 노부부 둘만 남아 사는 집이 적지 않다. 식구가 단출하니 쓰레기양도 적다. 종량제봉투 하나를 채우는 일이 만만치만은 않을 것이다. 주택에 산다는 이유로 가득 채워진 봉투를 문밖에 내다 놓는 시간과 요일을 기다려야 하는 일이란 몇 살 더 젊다는 나 역시, 여간 신경 쓰이고 힘에 부치는 일이 아니었다. 마당 한 귀퉁이 차지하고 앉아 태우는 방법이 더 손쉬운 일일 수 있을 거라 이해하고 눈감았다. 그러는 사이 태우는 일이 습관이 된 듯 보였다. 더 이상 눈감을 수 없었다. 온 동네가 불타기 전에 눈을 떠야 했다. 참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네요.”

신고를 받고 집을 방문한 시청 환경과 직원이 툭, 던진 말이다. 탄내는 나는데 건너 마당 구석까지 여기선 보이지 않으니 다음에 또 연기가 나거든 곧장 전화하던지 동영상을 찍어 달라는 말을 남기고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얼마나 빨리 달려와야 볼 수 있었을까. 신출귀몰한 그를…. 스스로 자백하기 전엔 잡을 수 없다. 잡히지도 않는다. 잡으려 하면 할수록 모래알처럼 손가락사이로 빠져나간다. 불꽃 흐드러질 때 잠깐 연기에 취해 어칠비칠, 그때뿐이다.

재라는 흔적만 남긴 채 사라지고 만다. 가장 가까운 1열에서 지켜보던 빨랫줄에 널린 옷가지들과 머리카락 새새, 주변의 감나무와 공기 속에 숨어들어 꼬리를 감준 채 발뺌이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딱 잡아뗀다. 먼지와 바람, 쥐도 새도 모르게 담장을 넘어가던 소문처럼.

그 일이 있고 난 뒤 한 참 지나서였다. 이번엔 연기의 움직임이 보이는 낌새를 알아차리자마자 문밖에서 그의 동태를 지켜보기로 했다. 건조주의보가 내려진 늦은 저녁이었다. 그날따라 연기의 냄새가 다른 날에 비해 묵직하고 짙었다. 직원의 말처럼 동영상을 찍어 보냈다. 하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다만 문자가 와 있었다.

“신청 받고 퇴근길에 들렀습니다. 그전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엔 쓰레기를 태운 것이 아니라 오래된 보일러 연통에서 나는 것이었어요. 세 들어 사는 처지라 마음대로 바꿀 수 없어 양해를 바란다며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꽃차례에 따라 화단의 꽃들이 불타는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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