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공은 둥글다
[수요칼럼] 공은 둥글다
  • 승인 2023.03.14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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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광 대구경북소비자연맹 정책실장·경제학 박사
스포츠에서 한일전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극적인 장면의 연출로 인해 온 국민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지게 하는 매력이 있다. 1982년 잠실야구장에서 열렸던 제27회 세계선수권 대회 우승팀을 가리는 한일전 8회 말 2:1로 뒤진 상황 1, 3루 찬스에서 벤치의 사인을 잘못 읽은 김재박 선수는 그 유명한 개구리처럼 폴짝 뛰면서 번트에 성공했다. 이어 한대화 선수의 역전 3점 홈런으로 일본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회에서, 그리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한일전에서 8회 말 이승엽 선수가 쏘아 올린 역전 홈런포는 아직도 전 국민의 가슴 속에 큰 감동으로 남아 있다.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대회를 준비하면서 한국팀에게 어떤 매직이 일어날까 하는 큰 기대를 가져었다. 그러나 일본 도쿄돔에서 열리고 있는 WBC 본선 1라운드에서는 한 수 아래로 평가받던 호주팀에 7:8로 패한 것을 두고 어느 해설위원은 '참사', '화난다'라고 표현했다. 또한 10일 벌어진 한일전에서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만장일치로 MVP를 차지한 오타니 쇼헤이, 다르빗슈 유, 사사키 로키 등이 이끄는 일본팀에 4대 13으로 패배했다. 한국팀은 선수들의 경기력뿐만 아니라 경기를 대하는 태도 면에서도 상대팀에 완패한 경기라는 평가다.

이번 대회를 통해 꼽십어야 할 점이 있다. 먼저 WBC 출전 선수 선발과 관련해 소신 발언을 한 추신수 선수에 대한 야구계의 반응이다. 추 선수는 "언제까지 김광현, 양현종인가"라며 대표팀의 세대교체를 주장했다. 그는 부산고 졸업 후 메이저리그로 직행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국내 야구 인맥이 약한 편이다. 그러나 고참 선수라면 이런저런 인연으로 인해 야구계에서 쓴소리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추 선수의 역할은 어린 선수와 함께 뛰면서 메이저리그에서 경험한 노하우어를 전수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야구계의 미래를 보고 한 추 선수 개인의 발언을 두고 정색하면서 비판하는 것은 야구계의 편협한 마음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프로야구 전체를 놓고 평가한다면 한국은 호주보다 수준이 높은 반면 일본에 비해서는 선수층이 엷고 기량 차이가 난다. 그러나 국가대표팀은 문제가 달라진다. 국가대표팀은 한 팀만 구성하므로 선수층이 엷다고 큰 문제가 되지 않으며, 또한 단기 승부의 경우 의외의 변수가 작용할 수 있다. 1982년, 2006년, 그리고 2008년에 한국이 일본을 상대로 극적인 역전승을 해도 한국이 일본에 비해 야구 수준이 더 높다고 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호주의 야구 수준이 한국에 비해 낮다고 해도 국가대표팀 간의 단기 승부는 당일 선수들의 컨디션이 변수로 작용하므로 한국이 손쉽게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공은 둥글다'는 말이 있다. 스포츠에서 강팀은 항상 이기고 약팀이 항상 진다면 흥미로운 경기가 될 수 없다. 강팀이 질 수도 있고, 약팀이 이길 수도 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스포츠 정신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한일전을 염두에 두고 호주팀을 손쉽게 이길 것으로 생각하고 경기에 임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반면 호주팀의 입장에서 넘사벽(?)인 한국팀을 상대로 설렁설렁하다 '소 뒤걸음치다 쥐잡듯이' 승리를 낚아챈 경기는 분명 아닐 것이다.

사실 프로야구 출범 이전에는 고교야구가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고교야구가 인기를 얻은 가장 큰 이유는 도시대항전 성격 때문이 아닐까. 대구뿐만 아니라 서울, 인천, 대전, 군산, 광주, 부산 등의 도시를 대표하는 그 지역 명문고가 전국 대회에 출전하면 고교 대항이지만, 도시 간 경쟁의 성격이 강했다. 이처럼 도시를 배경으로 기업과 결합하여 1982년에 출범한 프로야구는 오늘날 큰 발전을 하였으며, 지역의 팬들에게 큰 즐거움과 희망을 주고 있다.

대구를 기반으로 한 삼성라이온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이만수 선수가 현역시절 40세까지 뛰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했을 때만 해도 가능할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지금은 선수들이 철저한 자기관리 통해 40세가 넘는 선수도 있고, 그런 선수가 그라운드에서 뛰는 모습이 오히려 싱그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개별 구단에서 뛰는 모습을 보면서 팬들이 느끼는 즐거움과 국가대표팀으로 출전하여 우승도 하고, 검증된 경기력을 기반으로 메이저리그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국가주의에 빠져 국가대표팀의 승리를 지상과제로 삼는다면 '영끌'로 선수를 선발해야 할 것이다. 한국팀이 이번 대회에서 호주와 일본에 충격적인 패배를 했다고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젊은 선수들이 경기에 임하는 자세라던가, 유명 선수들과의 경기를 통해 우물안 개구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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