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그분을 기리며
[문화칼럼] 그분을 기리며
  • 승인 2023.03.15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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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칼럼리스트
지난 주 초 이건산업 대표이사 박영주 회장께서 세상을 떠났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나는 평소 그분을 존경해 왔다. 예술의전당 후원회 부회장과 한국메세나협의회 회장으로서 예술에 대한 기업의 후원을 품격 있게 만들었고 특히 이건 음악회를 통하여 기업의 사회 환원의 가치를 꾸준히 구현해 왔을 뿐만 아니라 한국음악계의 다양성 면에서도 큰 업적을 쌓았다. 그분의 조용하면서도 진정성 있는 예술사랑에 예술계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표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흔히들 말하는 '지원하되 간섭은 말라'는 가치가 가장 잘 실현되었던 기관이 한국메세나협의회 라고 생각한다. 약 30년 가까운 시간에 걸쳐서 이곳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그 어떤 추문(?)도,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나는 듣지 못했다. 사람심리가 그런 것 같다. 도움을 베풀면 생색을 내고, 누가 그걸 알아봐 주길 바라는 마음은 인지상정이라고 본다. 그런데 조금만 참으면 더 큰 보상(?)이 따르는 것은 뻔한 일인데도 그게 잘 되지 않는 것 또한 충분히 이해할 일이다. 그러나 메세나 활동을 이 땅에 정착시킨 분들은 이런 면에서 속인의 한계를 벗어났었던 것 같다.

많은 훌륭한 기업인이 이런 메세나에 기꺼이 앞장 서 주셨지만 그 가운데 박영주회장의 예술계에 대한 따뜻한 응원역시 다른 분에 뒤지지 않았다. 특히 '이건음악회'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보다 직접적인 기업의 사회 환원에 나섰다. 회사가 아주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 음악회는 매년 거르지 않았다는 대목에서 참 감사한 마음이 컸다. 당장 지출해야하는 예산도 그렇지만 회사 구성원들의 공감을 받기도 만만찮았을 것이라는 짐작이 어렵지 않다. 특히 이건음악회가 한국 음악계에 던진 의미역시 결코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

만돌린 연주자 '아비 아비탈,' 모스크바 스레텐스키 수도원 합창단, 기타리스트 밀로쉬 카라다글리치, 베를린 필하모닉 이건앙상블. 이상은 내가 수성아트피아에서 일할 당시 아트피아를 매년 찾아온 이건음악회 라인업이다. 이 공연들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쉬 듣기 힘든 공연들이 많았다. 특히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들이 이건음악회의 가치에 공감해서 스스로 이건앙상블이라는 이름으로 내한 공연을 가진 것은 참으로 인상 깊다.

해외에서 들어오는 중요한 공연은 대다수 기획사 상품이다. 그런데 기획사 입장에서는 수익을 남겨야 하니 흥행카드 중심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 최정상급의 오케스트라와 스타 지휘자 거기에 인기 절정의 한국인 협연자라면 흥행 보증수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청료가 워낙에 비싸 기획사는 수익을 남기기가 힘들다고 한다. 실상이 이러하니 주류(?)의 흐름에서 벗어나 있는 좋은 공연을 한국에 유치하기는 쉽지 않다. 가끔씩 일부 기획사에서 손실을 무릅쓰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무래도 제한적인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이런 클래식 시장에서 이건음악회의 존재감은 매우 소중하고 두드러진다.

이건음악회를 통하여 우리는 생소하지만 보기 힘든 귀한 공연들을 많이 즐길 수 있었다. 때로는 떠오르는 한국인 연주자를 초청하여 성장의 디딤돌이 되기도 했다. 이건음악회가 이런 가치를 지켜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모 대학교수께서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안다. 이분의 노력도 참 고마운 일이지만 이것을 받아들이고 지지했던 고 박영주 회장의 신념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왕에 쓰는 돈, 조그만 더 투자하면 확실한 흥행카드를 통하여 더 많이 홍보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든 길을 기꺼이 선택한 이분들 덕분에 우리는 참으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 박영주 회장께서는 가고 없지만 그분의 가치는 계속 살아남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사족, 그리고 이런 다양성의 가치에 대한 천착을 말할 때 LG아트센터의 공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수준 높은 다양성의 대명사 콤파스(ComPAS)라는 이름의 자체 기획공연이 한국에서 자리 잡기까지는 보통 뚝심으로 된 게 아니다. 특히 더 바람직한 것은, 전 세계 곳곳의 이런 공연들을 LG아트센터 기획팀에서 직접 찾아내고 또 직관을 통하여 최종 초청을 결정하는 직원들의 안목. 그리고 이를 구현시킬 수 있는 예산 지원과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런 공연에 뒤지지 않는 작품을 우리의 젊은 아티스트와 함께 만들어 나가고 있다. 사원으로 입사해 이런 기획의 중심에서 뛰던 이가 마곡동에 새로이 둥지를 튼 동 극장의 대표로 등극했다. 이분의 능력이 출중했겠지만 사람을 알아봐주고 또 높이 받들어주는 회사의 행보역시 부러운 일이다.

요즘 연세로 봐서 더 오래 사셔야 하는데, 연유를 알 수는 없지만 참 아까운 분이 좀 일찍 세상을 떠나신 것 같다. 고 박영주 회장님의 영면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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