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염전, 소금창고 한쪽 구석에 디지털 피아노가 버려져 있다 다리가 없다
나무판자 틈새로 들락거리던 해풍에 헐거워진 불구의 몸이 입 꾹 다문 채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
모닥불 타다 만 흔적인 듯 검게 그은 바닥에 찢어진
비닐쪼가리와 페트병, 지푸라기가 함부로 나뒹굴고 있다
해 저물고, 소금창고는 배고픈 짐승처럼 저 혼자 텅 비어서 캄캄한데
저 오래 버려진
갯벌 구멍 숭숭 뚫린 것들끼리 상처 핥아주며
온기 나누는 밤이야 오지 않는 협궤열차를 기다리며,
너무 외롭고 막막해져서 서둘러 한 몸이 되어 엉켜 버릴
달빛커튼 아래
사는 게 빈 소금부대 같아서 참 치욕 같아서
또 어느 늙은 염부가
지겹고도 지겨운 수차를 돌리는지 쓰디 쓰려서
저절로 음악이 되는
몸, 폐허
◇강해림= 1991년 ‘민족과 문학’, ‘현대시’로 등단. 대구문학상. 2021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 나눔 도서’ 선정. 시집 ‘구름 사원’, ‘환한 폐가’, ‘그냥 한번 불러보는’, ‘슬픈 연대’가 있음.
<해설>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의 그림을 보는 듯, 폐허가 된 소금창고 안의 디지털 피아노가 주는 이미지는 놀라움 그 자체다. 시인이 그려놓는 소금창고는 “배고픈 짐승처럼 저 혼자 텅 비어서 캄캄”하다. 저 오래 버려진 것들의 거처가 구멍 숭숭 뚫린 것들에게 한 몸이 되어 엉킬 밤의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시인의 놀라운 상상들이 서로 관계 맺기를 하는 거기는, 사는 게 빈 소금부대 같은 사람들에겐 협궤열차를 기다려도 좋을, 쓰려도 좋을 그런 장소가 틀림없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