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줌인아웃] 햄버거라도 주든지
[백정우의 줌인아웃] 햄버거라도 주든지
  • 백정우
  • 승인 2023.03.16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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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우의줌인아웃-더메뉴1
영화 ‘더 메뉴’ 스틸컷.

한눈에 봐도 고급스런 인테리어의 파인 다이닝. 알아들을 소리, 못 알아먹을 소리가 뒤섞인 셰프·서버의 설명이 식사시간 내내 귀를 괴롭힌다. 근사한 곳에서의 맛있는 식사를 기대한 나의 2시간이 셰프의 자부심 가득한 설명 속으로 사라진다. 반쯤 동조하고 더러는 의아해하며 식사를 마치고 나왔을 때, 종종 조건반사처럼 터져 나오는 말. “김치에 라면 하나 끓여먹었으면 좋겠어”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에 예약을 성공시켰다면 어떤 기분일까. 꿈에 그리던 그곳에서 신처럼 추앙받는 요리사 줄리언 슬로윅의 요리와 만나기 직전. 식당으로부터 선택받은 12명은 1인당 1,250달러짜리 요리를 맛보기 위해 호화 요트를 타고 호손 섬으로 들어간다. 이들 중에는 설렘을 주체 못하는 타일러와 그의 여자 친구 마고도 있다. 이제부터 그들은 4시간 30분 동안 최고의 요리사들이 만드는 과학적이고 윤리적이며 자연친화적인 코스를 만나게 될 것이다. 영화 ‘더 메뉴’의 시작이다. 좋은 요리는 눈으로 먼저 먹는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곳에선 귀로 먼저 먹어야 한다. 셰프의 장황한 설명이 이어진 후에야 요리가 제공되기 때문이다. ‘딸기가 딱 맞게 설익은 순간’ ‘최후의 근육 수축중인 생 조개로 플레이팅’ ‘단일 포도밭이 아닌 단일 이랑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든 페어링 와인’ 등등.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게 빠졌다. 먹는 즐거움이 실종되었다. 모든 과정이 두뇌 훈련 같아 편히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생물학적으로 생태학적으로 윤리적인 식재료 앞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땅에 곤두박질친다. 손님은 이 거대한 요리 퍼포먼스를 완성시키기 위한 엑스트라에 불과하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식당을 찾는 건 음식을 먹고 허기를 달래기 위해서다. 어느 쪽이든 식당 음식의 주체는 요리사가 아니고 손님이다. 그러나‘더 메뉴’는 이를 뒤집는다. 레스토랑을 방문한 손님은 요리사와 음식평론가와 투자자와 부호와 음식TV 진행자 등. 즉 이미지와 허상에 집착하는 군상들이다. 그들은 매스미디어가 만든 요리의 신 앞에서 기꺼이 추앙하고 복종한다. 기분 좋은 포만감은 실종된 지 오래다. 끔찍한 사건과 이벤트가 연이어 벌어지고, 살육의 카니발이 더 진행되고서야 자신의 위치를 되돌아보기 시작한다. 즉 비용을 지불한 손님의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에 나선다.

영화의 백미는 마고가 “아메리칸 치즈 버거(감자튀김 곁들인)”를 요구하는 장면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슬로윅의 요리는 애정이 아닌 집착의 산물이라서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니까! 이처럼 영화는 식사의 본질이 실종되고 주객이 전도된 음식문화와 세태를 질타한다.

유명 셰프의 레스토랑에 어렵게 자리했을 때 감지덕지한 마음으로 음식을 받는 손님과, 위장과 두뇌를 마비시키는 일방적 세뇌로 맹목적 추앙을 요구하는 권위적 요리사들에게, 마고의 급진적 행동은 시사적이다. 이를테면 손님이 먹는 즐거움을 누리며 포만감을 느끼게 해달라는 요청,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1,250달러짜리 정찬코스에 대한 바람치고는 너무 소박한 거 아닌가. 그게 힘들면 햄버거라도 주든지.

백정우ㆍ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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