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를 찾아서] 냉장고가 요즘 이상하다
[좋은시를 찾아서] 냉장고가 요즘 이상하다
  • 승인 2023.03.2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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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희

불덩이처럼 뜨거운 몸으로

알아듣지 못할 신음이다

환기구에 붙어있는 먼지를 털어내자

시끄럽던 숨통 이제야 트이는지

가쁜 숨 몰아쉰다

냉기를 만들기 위해 열기 뿜어내느라 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칸칸 나누어진 몸 안

골고루 나누어주는 사랑 그 뭉클함은

여러 자식을 둔 어미 같다

한자리에 서 있어, 덜거덕거리는 무릎

그런 노동의 긴 시간이

혀 뜨거워질 때까지 성애를 닦고 있다

더는 물러설 수 없을 때

최후의 꽃은

무욕의 숨꽃인 것처럼

◇정연희=《서정문학 》등단. 형상시학회 회원. 시집: ‘달빛 조각이 심장을 두드릴 때’가 있음.

<해설> 진솔한 시다. 냉장고가 요즘 이상하다를 엄마가 요즘 이상하다는 뜻으로 읽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시인은 지금 오래되고 낡아서 크르릉 거리는 냉장고를 살피고 있다. 환기구의 막힌 먼지를 털어내고 조금은 잦아든 냉장고의 숨소리에 안도하지만 곧이어 여러 자식을 둔 엄마의 고단함에 시인은 뭉클 한다. 긴 노동의 시간이 그러하고 상한 무릎이며 혀까지 뜨거워진 엄마는 더는 물러 설 수 없을 때, 무욕의 숨길 내려놓고 가신 그런 엄마를…오래된 냉장고를 통해 떠올리고 있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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