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 경영칼럼] 일방적 소통은 정말 곤란하다
[박명호 경영칼럼] 일방적 소통은 정말 곤란하다
  • 승인 2023.03.26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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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호 계명대학교 석좌교수 전 계명문화대학교 총장
공원 산책길에 벚꽃이 만발했다. 아파트 앞뜰도 온통 하얀 꽃 숲으로 변했다. 우리 고장 곳곳에 핀 벚꽃은 1924년 기상 관측 이래 두 번째로 빨리 개화했다고 한다. 마치 코로나로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라도 하려는 듯 여러 봄꽃들도 앞 다투어 꽃망울을 터뜨린다. 꽃을 감상하면 마음이 즐겁고 뇌도 활기차고 젊어진다. 두뇌심미학에서는 아름다움을 즐기면 정신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수년 전 영국의 BBC TV에서 행복 십계명을 방영했는데, 식물을 가꾸며 생활하는 것이 네 번째 계명이었다. 음악이나 미술을 통한 예술치료와 마찬가지로 식물을 키우고 꽃을 가까이하면 치매가 예방되고 알츠하이머병의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 아래를 거닐며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과 기쁨이 가득하다.

그런데 우리 눈앞에 만발한 것은 예쁜 봄꽃만이 아니다. 길거리를 온통 뒤덮은 여러 종류의 현수막들이 우리의 마음을 짓누른다. 가히 현수막 천지다. 네거리 횡단보도 옆, 어린이 보호구역, 남의 가게 앞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정치 현수막이 우후죽순으로 걸렸다. 현수막에는 원색적 비난과 자극적인 표현이 즐비하다. 상대 정당을 깎아내리고 무시무시한 정치적 공격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비난의 욕설과 선정적이고 저질스러운 표현들을 어린 아이들이 보고 배울까봐 걱정스럽다. 여기다가 지역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의정 활동을 마치 커다란 치적인양 과장한 현수막도 자주 보인다.

정치 현수막이 과도하게 등장한 것은 지난해 연말 개정된 옥외광고물법 때문이다. 정당 현수막을 언제 어디서나 지자체의 허가 없이 개수도 제한 없이 15일간 게시할 수 있도록 법을 바꾸었다. 거의 무제한으로 내걸린 정치 현수막의 내용은 대다수가 국민들의 감정에 어설프게 호소하는 선전과 선동에 가깝다. 효과도 의심스럽고 국민들의 호응을 얻어내기도 어렵다. 오히려 정치의 양극화를 부추겨 정치 혐오감만 높이는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도시 미관을 해치고 운전자의 교통과 보행자의 통행을 방해한다. 주민들의 평안한 삶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당들은 현수막 게시가 통상적인 정치활동이라며 오늘도 곳곳에 앞 다투어 내걸고 있다. 정당의 홍보와 선전에 큰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지난주 부산에서는 거리를 뒤덮었던 정당 현수막이 사라졌다고 한다. 다음 달 초, 2030 부산 엑스포 실사단 방문을 앞두고 여야 합의로 철거했다는 것이다. 현장 실사 차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정치 현수막 때문에 부산시를 부정적으로 평가하지는 않을까를 염려한 결과다. 대신 부산엑스포 유치를 기원하는 현수막을 곳곳에 내걸었다.

기업에서도 소비자와 이해관계자들과의 소통은 매우 중요하다. 경쟁 기업보다 더 빨리, 더 자주 메시지를 반복해서 내보내어 소통하면 시장이라는 전장에서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기업이 일방적으로 걸어오는 소통 채널에 대한 소비자들의 피로감이 높아졌다. 나아가 소통을 통제하거나 주도하려는 소비자들이 많아졌고, 실제로 초연결사회에서는 이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제 대중 매체로 소비자를 설득하는 것은 한계에 다다랐다. 일방적인 대중 광고로는 사람을 끌기 어려워졌고 메시지로 설득하는 것은 더 힘들어졌다. 광고와 PR 방식에서 개별적이고 양방향의 즉시적 소통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종래의 일방적이고 대중적인 소통 방식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정당 현수막을 비롯한 각종 현수막 홍보나 선전도 그 효과가 매우 의심스럽다. 자극적인 정치 구호와 분란을 일으킬 법한 문구에 사람들이 식상하고 스트레스만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수막에 일방적인 주장을 여과 없이 내보내는 일은 어떤 이득이나 효과도 생산하기 어렵게 한다. “선전이 효과를 보려면 반드시 믿음을 얻어야 한다. 믿음을 얻기 위해서는 믿을 만해야 하고, 믿을 만한 것이 되려면 반드시 진실이어야 한다.” ‘흑인민권향상의 투사’란 말을 들었던 전 미국 부통령 허버트 험프리의 말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엘륄도 “현대적 선전의 목표는 여론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이고 절대적인 믿음을 만들어 내는 데 있다”라고 했다. 선전하는 내용이 믿음을 주거나 믿음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금 걸려있는 각종 현수막이 믿음을 주거나 믿을 만한가. 정답은 ‘아니오’가 분명할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식의 현수막은 게시자의 일방적인 소통 창구에 불과하다. 정치적 선전 행위나 기업의 마케팅 활동도 쌍방 소통이 되어야 유효하다. 이제 뻥튀기 식의 무분별한 현수막 문화를 끝내야 한다. “우리 정치는 4류, 관료는 3류, 기업은 2류”라고 했던 고 이건희 회장의 말이 마음에 크게 와닿는 요즘이다. 그래도 봄은 또 왔다. 봄꽃들이 아름답게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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