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규 작가 개인전…학고재 내달 29일까지
박종규 작가 개인전…학고재 내달 29일까지
  • 황인옥
  • 승인 2023.03.2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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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노이즈 선택, 새 추상회화 개척”
제거 대상 노이즈가 희망 아이콘
휴머니즘의 잔존으로 받아들여
회화·조각·영상 등 통해 시각화
심청가 파장 시각 이미지로 변환
CCTV에 찍힌 관객 20초후 발견
판소리 구음 예술작품으로 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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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규 작 ‘수직적 시간’ 연작. 학고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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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규 작 ‘수직적 시간’ 연작.

예술가들은 동시대의 현상이나 대상들을 새로운 미학적인 규범으로 제시하는 사람들이다. 서양미술사는 미술가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기록이다. 미술사 속의 혁신적인 미술가들은 특유의 혁신성으로 중무장하며 정형화된 틀에 거부감을 표하고는, 자신만의 미학적인 감수성으로 새로운 미술 사조를 제안해왔다.

박종규 작가는 ‘작가 자신을 서양미술사의 일원으로 위치’시키는데 작업의 목표를 두고 있다. “미래의 예술은 어디에 기반하고 있어야 하는지?”를 질문하며, 미술의 혁신적인 변혁을 실천해간다. 그는 ‘새로운 미술적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작가에게 요구되는 책무라고 믿으며, 미술사 속에서 자기 작품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견지해왔다.

“미술작가라면 선행된 미술사조나 동시대의 주된 미술사조 이후에 어떤 미술이 나와야 하는지를 늘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가적인 상상력을 총동원해 그것을 유추할 수 있어야 하죠.”

그가 새로운 미술의 단초로 주목한 것은 노이즈(noise)다. 노이즈의 사전적 정의는 필요한 신호에 섞여 신호를 바꾸어 버리는 전기적인 장애 또는 잘못된 부호다. 노이즈는 그가 “우리시대를 특징짓는 핵심 키워드”로 컴퓨터, 네트워크, AI 등의 테크놀로지를 떠올렸을 때 포착한 개념이다. 그의 눈에 비친 현대사회는 인간과 컴퓨터가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밀착된 시대고, 그는 그런 현상을 우리시대의 초상으로 받아들였다.

“지금은 과학 없는 예술, 예술 없는 과학은 존재할 수 없는 시대이고, 제가 컴퓨터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이 시대의 분위기를 예술로 표명해야 하는 책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테크놀로지가 제 예술의 핵심이 된 이유죠.”

그가 테크놀로지가 제공하는 수많은 긍정의 아이콘은 외면하면서 부정적인 노이즈에 시선을 두었던 이유로 바둑기사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을 언급했다. 이 둘의 대결에 세계의 이목이 쏠린 것은 우리시대의 가장 혁신적인 기술 중 하나가 AI이기 때문이다. 자율주행 자동차에서 음성 인식 비서에 이르기까지, AI는 이미 우리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AI의 진화 속도가 빨라질수록 잠재력은 실현가능성이 높아지기 마련인데, 사람들은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을 그것을 점검하는 전환기적인 이벤트로 인식했다.

알파고의 진전에 모두가 환호했을 때 박종규는 좀 다른 이유로 안도의 호흡을 내뱉었다. 이세돌의 승리를 목도하며 아직은 컴퓨터가 완전무결하지 않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 불완전성의 결과인 노이즈를 지목했다. “노이즈의 방해가 컴퓨터의 완전무결해지는 것을 방해하고 있죠.”

19세기말 모스부호가 생겼을 때나, 컴퓨터의 발전이 비약적인 현재에도 노이즈는 제거해야 할 대상이다. 컴퓨터의 연산 처리 결과가 장치의 잘못된 동작이나 소프트웨어의 잘못에 의해 기대한 것과 달리 나온 결과이고, 컴퓨터의 입장에선 결코 달갑지 않은 불청객이다.

하지만 그는 노이즈를 희망의 아이콘으로 해석한다. 그에게 노이즈는 ‘휴머니즘의 잔존’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노이즈 없이 완벽하게 컴퓨터가 작동하는 시대는 인간 역시 로봇화되는 시대입니다. 컴퓨터가 도통 실수를 하지 않을 때 인간은 숨 쉴 공간을 잃게 되니까요. 저는 노이즈야말로 인간성이 보장되는 증거라고 생각해요.”

노이즈를 개념적으로 풀어내기 시작한 것은 10여년 전.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던 대구에서 미니멀리즘의 막내 세대로 활동하던 그는 당시 가장 미니멀적인 것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제거당하던 당시의 미술 사조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어쩌면 제거하고 배제된 것들에 더 예술적 가치가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이었다.

결정타는 정권교체로 인해 겪어야 했던 이념적 혼란 상황이었다. 정권이 바뀌면서 흑과 백, 옳음과 그름이 순식간에 뒤바뀌는 것을 보고 정상적인 현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권교체로 주류와 비주류, 중심과 주변, 쏠림과 배제가 뒤흔들리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소외현상’이 그에게는 혼돈 자체였다. 이 ‘소외’가 디지털의 노이즈와 정확하게 겹쳐졌다. “제게 노이즈는 주류사회나 예술에서 배제 또는 제외되는 현상을 대변했어요.”

컴퓨터의 노이즈가 그에게 미술적인 혁신을 제공하고, 그를 서양미술사의 한 획을 긋는 새로운 일원으로 위치시킬 가능성을 높여주는 배경은 무엇일까? 그것은 부정의 영역인 노이즈를 긍정의 영역으로 격상하고, 미학과 동떨어진 노이즈를 지극한 미학적인 규범으로 치환한 데 있다. 인식의 전환이었고, 새로운 미학의 제시였다.

그가 “세상은 어떤 현상에 대해 ‘맞다’, ‘틀리다’라는 이분법적인 잣대로 접근해 왔다. 그런 점에서 노이즈는 틀린 것이었다”며 “나는 그 틀렸다고 버려진 노이즈에 가치가 없을까 생각해서 노이즈를 선택했다”고 했다. 그것은 곧 새로운 추상회화의 개척과 관련됐다. “저는 인간과 테크놀로지의 관계에 관한 철학적 사유로써 추상회화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왔습니다.”

미술의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는 경우 형식의 혁신 아니면 내용의 심오함 둘 중 하나가 채택된다. 박종규 작가는 전자의 경향을 따른다. 부정적인 개념인 노이즈에서 리듬, 운율, 가지런함, 질서 등의 미학적인 규범을 발견하고 컴퓨터가 발생시킨 노이즈를 확대해 질서정연한 아름다움으로 재생산한다.

미술비평가인 이진명은 노이즈로 구현한 박종규의 작업을 “0차원 테코놀로지 이미지로써 2차원의 모더지즘 회화 양식을 침범했다”고 언급하며 “이것은 더 이상 그가 모더니즘이 강요해왔던 기호로부터 지배받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다”고 했다. 그 선언으로부터 박종규의 새로운 회화는 시작됐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의 노이즈는 회화, 조각, 영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시각화된다. 회화는 컴퓨터의 오류로 생긴 노이즈 이미지를 크게 확대한 뒤 시트지로 인쇄해 캔버스에 붙이고는, 그 위에 아크릴 물감을 덧칠한 뒤 시트지를 떼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영상은 노이즈의 군집들이 폭포수처럼 떨어져 내리도록 구현했으며, 조각은 회화의 평면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나왔다. 목재를 CNC커팅으로 잘라 그 위에 캔버스를 덧입혔다. 비뚤어진 캔버스는 입체도 평면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에 위치한다. “매체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노이즈’라는 일관성을 유지됩니다.”

최근에 학고재 갤러리 전관에서 개막한 박종규 개인전 ‘시대의 유령과 유령의 시대’에 노이즈를 수직으로 확대한 회화 연작 ‘수직적 시간(2022)’과 꽃잎이 흩날리는 듯한 형상을 한 ‘수직적 시간’(2023)이 각각 걸렸다. 2023년작은 대구 동성로의 한 빌딩 전광판에 설치했던 영상 작품 ‘수직적 시간’에 노이즈로 발생해 모래폭풍 장면이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분홍색으로 바뀐 것을 보고 화폭에 옮겼다.

이번 전시에 새롭게 시도한 또 다른 작품은 소리꾼 민정민이 부른 ‘심청가’와 구음 절창 장면이 담긴 영상 ‘시대의 유령과 유령의 시대’(2023)이다. 전시장 후면엔 ‘심청가’의 파장을 시각 이미지로 변환한 회화가 걸려 있고, 바닥에는 ‘나를 찾아서’라는 영상 작품을 투사했다. 두 대의 CCTV에 찍힌 관객은 작게 축소되어 20초 지연되어 움직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진리는 역사의 축적을 통해서 드러나며 나 자신은 미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우치기 위해 이 작품을 제작했다고 한다.

‘심청가’의 시각 작품화는 자신의 미술에 한국적인 정체성을 모색하기 위한 대안으로 시도됐다. 그는 동성애, 마약, 전쟁 등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영역과 관련된 한 시대의 이념을 다뤘던 포스트모더니즘은 서양에서 이식된 것이었고, 진정한 우리의 정체성으로부터 출발한 주제들은 고작 민중미술 정도에 불과하다고 인식한다. “이제는 서양 중심의 현대미술이 아닌 한국적인 이야기로부터 출발하는 한국 중심의 현대미술이 시작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문제의식이었고, 그것이 ‘심청가’의 차용으로 실천됐다. “판소리에서 노이즈로 인식되는 구음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했어요.”

그의 화면에는 그가 예술적인 행위를 통해 시간의 개념을 어떻게 전복시키는가도 드러난다. 작품명 ‘수직적 시간’에서다. 이 단어는 가스통 바슐라르(1844-1962)의 시적 상상력에 감탄해 사용했다. 시간은 수직적 시간과 수평적 시간으로 나뉜다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의 일상이 수평적 시간에 해당된다면, 시나 예술, 종교는 수평이고 초월적인 시간에 해당된다.

그는 수평적 시간인 일상에서 발견한 포착한 노이즈를 화면에 정지시키며 영원성을 부여한다. 일상이 그의 예술적인 행위로 초월의 영역인 수직적 시간으로 치환되는 것이다. “저의 화면을 수평적인 일상이 저의 예술적인 경험으로 바뀌는 순간이라고 보고 ‘수직적 시간’이라고 명명했어요.” 학고재에 전속되고 처음으로 학고재 전관에서 열리는 그의 개인전 ‘시대의 유령과 유령의 시대‘는 4월 29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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