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줌인아웃] 까치발에 축복을
[백정우의 줌인아웃] 까치발에 축복을
  • 백정우
  • 승인 2023.03.3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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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우의줌인아웃-당통1
영화 '당통' 스틸컷

프랑스 혁명 당시의 시대적 공기를 잘 잡아냄과 동시에 혁명법정과 국민공회의 딜레마까지 세밀하게 그려낸 안제이 바이다 감독의‘당통’. 영화의 중심인물은 당통이 아닌 로베스피에르이다. 자신의 선택에 불안해하면서도, 그러니까 당통의 처형이 불러올 사회적 파장과 혁명정부의 필연적 실패를 예견하고도 전체주의를 혁명정신(시민 역시 뜻을 같이 할 것이라 믿은)으로 호도하는데 힘을 실어준 장본인이 로베스피에르였고, 결국 당통의 처형은 그의 고뇌에 찬 선택의 결과로 묘사된다는 것.

역사에 기술되어있듯이 일단의 결과는 로베스피에르의 자코뱅파의 승리로 끝을 맺지만,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보여준 두 혁명동지의 태도이다. 즉 당통이 낙관적 선동가 기질대로 허술하게 대응하다가 불의의 일격을 맞는 반면, 신경질적인 염세주의자 로베스피에르는 끊임없이 회의를 품으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며 상대를 제압한다.

안제이 바이다는 미장센이 도드라지는 쇼트마다 로베스피에르를 내세운다. 예컨대 당통 일파의 처형을 시민의 묵인 하에 관철시키려는 국민공회 장면. 단상에 선 단신의 로베스피에르가 발뒤꿈치를 들고는 안간힘 쓰는 그 순간! 흔들림 없는 눈과 입술 위에 의지와 위엄을 더하는 그의 몸짓은 연단에 가려져있지만, 카메라는 이 남자의 발뒤꿈치를 거듭해 보여주면서 로베스피에르의 절박한 심정을 전달한다. 장엄한 역사의 순간에 동참한 관객에게 고작 발뒤꿈치나 보여주었다고? 그렇지 않다. 당대 프랑스 남자 평균 신장에 훨씬 못 미치는 작은 키의 소유자였음에도 시종 보무당당하게 의원들을 리드했던 그조차, 역사의 현장에서 자신의 주장을 전달하기 위해 까치발을 딛는 우스꽝스런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는 점은 어딘가 시사적이지 않나.

(적어도 영화 속) 당통은 지나치게 시민을 믿었고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는 순진한 이상주의자에 불과했던 것일까. 국민공회파의 실패는 예견된 것이었고, 그것은 당통의 지나친 이상주의로부터 연유했는지도 모른다.

한편, 발뒤꿈치를 들며 사자후를 토했으나 당통이 처형되던 날 ‘프랑스 인권선언’을 암송하는 어린 처남을 창백하고 겁에 질린 얼굴로 응시하던 로베스피에르. 일찌감치 시대와 시민의 요구를 조절하며 균형에 애썼음에도 잔혹한 패자로 기록된 로베스피에르지만, 여전히 당통의 짝패로 호명되는 것은 발뒤꿈치를 들만큼의 열정이 만들어낸 결과였으리라.

학창시절 앞자리에 앉지 않으려고 까치발을 들어가며 키를 높이려 안간힘쓰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물며 학생들의 자리다툼도 이러할 진대 근대사를 뒤흔든 역사의 현장에서 시종 멋쩍은 웃음이나 날리면서 시민의 동참을 확신하던 당통의 안일함이라니. 비록 ‘옛날 옛적 프랑스에서’ 벌어진 일이고 근대 프랑스의 시민정신을 구축한 위대한 혁명의 총아였다고는 해도 나는 당통의 처신이 못내 마뜩치 않다. 혁명은 결코 낭만이 아님을, “남자가 권리를 가지는 건 그걸 장악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역사가 알려주고 있던가. 그러므로 까치발로 서는 정성과 필사의 노력을 보태는 모든 이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이왕이면 발뒤꿈치를 들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기를. 이도저도 귀찮으면 키 높이 구두라도 신기를.

백정우ㆍ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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