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썽꾸러기 이웃 때문에 죽을 수가 없잖아…영화 '오토라는 남자'
말썽꾸러기 이웃 때문에 죽을 수가 없잖아…영화 '오토라는 남자'
  • 김민주
  • 승인 2023.03.3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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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곁으로 갈 준비할 때마다
도움 청하는 이웃 때문에 골치
심지어 ‘애 봐달라’ 요구까지…
결국 죽음 포기하게 만든 오지랖
현대사회 속 情 중요성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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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라는 남자’ 스틸컷.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나를 이해해주던 단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삶의 의미를 잃게 된 남겨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건 무엇일까.

매일 같은 시간에 눈을 뜨는 오토(톰 행크스). 눈이 오는 날이면 자기 집 앞 인도까지 눈을 치운다. 눈이 오지 않으면 아침을 먹고 바로 동네 순찰에 나선다. 주차장에 주차증이 없는 차가 있는지, 쓰레기장 분리수거는 잘 되어 있는지, 자전거 보관대가 아닌 곳에 자전거를 두고 가지는 않았는지, 신문이나 광고가 동네 미관을 해친 건 아닌지. 일일이 확인한다. 오토의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하면 누구도 독설을 피할 수 없다. 새로 이사 온 이웃도,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낸 친구도, 갈 곳 없는 길고양이도.

하지만 그날따라 동네 순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오토가 이상했다. 출근 준비를 마치는 것까지가 그의 오전 루틴이지만, 더 이상 그의 집 문은 열리지 않았다. 사실 오토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아내 소냐(레이첼 켈러)를 따라가기 위해 신변 정리를 하고 있었다. ‘흑백’이었던 인생에서 유일한 ‘색깔’이었던 아내 소냐가 떠나고 마음의 문을 굳게 잠근 그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있고 싶지 않다고 판단했다.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전기 요금을 해지하며 죽을 준비를 다 마쳤지만, 세상은 그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죽을 수 있겠다 싶은 타이밍마다 이웃들이 그를 방해한다. 앞 집에 새로 이사 온 마리솔(마리아나 트레비노)과 토미(마누엘 가르시아룰포) 부부는 주차도 제대로 못해서 오토의 속을 뒤집어 놓고, 아무 때나 먹을 걸 가져다준 뒤 오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오토는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소냐의 묘비 앞에 앉아 이웃들 때문에 죽고 싶어도 죽지를 못한다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최악의 순간, 원치 않았던 이웃들의 관심 덕분에 그의 삶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오토라는 남자’ 스틸컷.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오토라는 남자’ 스틸컷.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영화 ‘오토라는 남자’는 스웨덴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 ‘오베라는 남자’를 영상화한 코미디 영화다. 소설 ‘오베라는 남자’는 전 세계 1,300만 독자의 선택을 받은 베스트셀러로 독일, 영국, 노르웨이, 덴마크 등 유럽 전역은 물론 미국 ‘뉴욕타임스’ 93주 베스트셀러에 등극하며 2015년 미국 ‘올해의 책’ 1위로 선정된 명작이다.

배경이 스웨덴에서 미국으로 바뀌면서 등장인물의 이름과 주요 사건 등이 각색됐지만 원작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그대로 옮겨졌다. 일명 요즘 말로 ‘꼰대’라고 불릴 만한 오토는 잔소리가 심하지만, 이웃에게 피해를 줄 만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에게 단지 이웃은 불청객과도 같았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이웃을 피하려고 했고, 선을 그었다. 오토는 쌀쌀맞진 않다. 다만 친절하게 말하지 않을 뿐.

오히려 오토는 이웃들에게는 해결사로 통한다. 이웃이 도움을 요청하면 오토는 지나치지 못하고 결국 도와준다. 혼잣말로 ‘머저리(idiot)’라고 내뱉곤 하지만. 그는 마지못해 평행 주차와 운전도 대신해주고, 사다리도 빌려주고, 라디에이터 증기까지도 빼준다. 급기야 그는 부모를 대신해 아이들을 돌봐주고 그림책까지 읽어주니. 깐깐하고 괴팍하나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인 것이다.

과거 동네에서 가장 친한 이웃이었던 루벤(피터 로슨 존스)의 집 라디에이터를 고치면서 오토는 이렇게 한탄한다. ‘세상이 예전 같지 않다’고. 더 이상 사람들이 이웃들의 일에, 공동체를 관리하는 일에 관심을 갖지 않고 각자 살기 바쁘다고. 실제로 오토가 순찰할 때 다른 이웃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웬 오지랖이냐는 식이다.

파편화된 시민의 모습은 다른 장면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자살하기 위해 전철역을 찾은 오토가 선로에 몸을 던지려는 순간, 다른 남성이 먼저 선로에 떨어져 버린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지만 주위 승객들의 반응에 더 놀란다. 그들은 하나같이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만 찍을 뿐 아무도 도우려 나서지 않는다.

공동체의 안전망이 사라지고, 개인들만이 파편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만 같은 오늘날, 이웃의 관심받지 못한 소외된 사람들은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이웃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확인시켜 준다.

‘오토라는 남자’ 스틸컷.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오토라는 남자’ 스틸컷.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스스로를 고립하며 세상을 떠나려던 오토를 붙드는 데는 마리솔 가족의 ‘오지랖’이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그것을 과연 오지랖으로만 볼 수 있을까? 이웃과의 교류가 현저히 줄어든 현대사회에서는 이질적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돕고 도움을 받은 이웃이 다시 감사의 표시로 음식을 나누는 행위는 예전의 평범한 일상이었다.

세상에서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모든 것을 나 혼자의 힘으로 이룰 순 없다. 그 당연한 사실을 마리솔은 오토에게 절절히 알려주며 그를 삶으로 붙들고 그의 삶에 서서히 색깔을 입혀준다. 삶의 공허함을 채워줄 수 있는 건 공동체의 힘이다.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톰 행크스’의 연기가 영화 내내 잘 녹아들어 관객들에게 공감의 요소를 가져다준다. 톰 행크스는 연기뿐 아니라 제작에도 참여해 이 영화가 지금 시대에 필요한 미덕을 심어주는 영화임을 강조했다.

또한 영화에는 오토의 젊은 시절이 등장하는데 이를 연기한 배우가 톰 행크스를 쏙 빼닮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배우가 톰 행크스의 ‘트루먼 행크스’이기 때문이다. 원래 촬영감독 일을 하는 그는 이 영화에서 처음 연기에 도전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주인공 오토라는 인물의 싱크로율까지 높아지며 세상을 등지려던 ‘프로 불편러’ 사연에 따스한 울림까지 더해졌다.

어쩌면 따뜻한 심술이 그리운 지금, 누구와 함께 극장을 찾아 ‘오토라는 남자’를 보고 나면 옆 사람에게 감사를 전할 일이 생길 것이다. 삭막한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영화는 손난로처럼 작지만, 몸을 데울 수 있는 온기를 전한다. 우리가 잊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리워했던 ‘정’을 말이다.

김민주기자 kmj@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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