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 가는 세 사내와 낡은 배를 탄다
흔들리는 바람과 흔들리는 깃발이 있어
뱃전엔 의뭉스런 공상空想들로 가득했다
흔들리는 뭍의 갈대숲에 닿기까지
깃발은 깃발로 돌아가고, 바람은 바람으로 돌아가고
남은 살얼음에 명치끝이 쓰리다
시시때때 변심하는 강바닥 돌들 때문에
물살인 나 흔들리지 않으려 해도
구름의 욕지거리에 흔들리는 삿대질
귀 틀어막는 오밤중에 밥그릇 챙겨들고
구멍 난 배 밑바닥 차오르는
구설수 퍼내기에 몸이 바쁘다
◇홍준표= 계간 ‘문장’ 등단. 형상시학회, 대구문인협회, 대구시인협회 회원. 시집 ‘커튼 콜’, ‘구조적 못질’, ‘오래 머물고 싶은 그늘’이 있음.
<해설> 제목이 풍번문답?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닌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라는 육조 혜능 선사의 이야기를 어떻게 시로 풀어나갈지, 궁금함을 자아내게 한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대승교 진리 제목을 두고 길 위에서 자신과의 선시 풍의 문답을 시의 말로 진술하고 있다. 이때 길은 강물 만나게 되고 결국엔 귀 틀어막는 오밤중에 그것도 밥그릇을 챙겨들고 배 바닥에 고이는 구설수의 물을 퍼내는 시인의 행위는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또 하나의 지혜의 길을 제공하고 있다. 약력에서는 밝히지는 않았지만 시인은 매우 학구적이다. 철학, 비교종교학, 문학 등 박사학위를 3개씩이나 취득한 걸로 보아 앞으로 그러한 지식들을 어떻게 녹여 신선하고 독특한 자신만의 상상력을 이끌어낼지는 내내 궁금하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