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열 작가 개인전…미국 뉴욕서 5월 7일까지
김상열 작가 개인전…미국 뉴욕서 5월 7일까지
  • 황인옥
  • 승인 2023.04.0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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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단한 독창적 형식 추구 또 다른 ‘예술세계’ 확인
반복 칠하기·겹침에 ‘환상’ 획득
자연물 통해 형상 아닌 기운 표현
관념적인 공통 분모는 ‘동양성’
김상열작Wind-garden
김상열 작 ‘Wind garden’

내용이 형식을 결정하고, 형식이 내용을 주도하는 것이 예술의 속성이다. 내용은 물성과 형식으로 구체화되고, 물성과 형식은 내용을 전제로 하며 서로 불가분의 관계로 나아간다. 김상열 작가의 작업은 내용과 형식이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특히 독자적인 형식을 통해 주제의 설득력을 강화해 간다. 6일에 미국 뉴욕에 소재하는 갤러리 Aught New York에서 개막하는 김상열 작가의 개인전엔 형식에서 독창성을 부단하게 탐구해 가는 그의 예술세계를 확인할 수 있다. 전시에는 ‘바람의 정원(Wind garden)’연작 10여점을 소개한다.

형식적인 독창성의 서막은 ‘비밀의 정원(Secret garden)’ 연작이 열었다. 10여 년 전에 출발한 그의 작업으로, 일명 ‘그림자 회화’로 불린다. 작업은 자연에서 채취한 나무줄기나 잎을 채취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후 캔버스 표면을 반복적인 검정색의 중첩으로 단단하게 도포하고, 그 위에 채취한 자연물을 올리고 에어브리시로 수차례 분무하며 자연의 이미지들을 캐스팅해간다. 자연물을 놓고 분무한 후 자연물을 걷어내면 자연물의 형태만 남게 되는데, 그가 “그림자를 뜨 내는 방식”이라고 언급했다. 붓으로 그리는 방식에서 분무해서 뜨 내는 방식으로의 변화이니 전통회화의 시각에서 보면 형식 파괴다.

형식이 도드라지지만 그의 회화가 추구하는 바는 ‘사유’다. 그림의 기능을 ‘사유’에 두었을 때, 단순하게 자연을 재현하는 그림은 ‘사유의 촉발’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김상열은 누구보다 사유적인 그림을 추구한다. 자연의 이미지를 구상적인 화면으로 재현하더라도 안개에 휩싸이거나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며 지극한 사유의 세계로 침잠해간다. “제가 자연물을 통해 표현하는 세계는 형상이 아니라 그 속에 내재된 기운입니다.”

이번 뉴욕 전시에 소개하는 ‘Wind garden’ 연작은 ‘Secret garden’ 연작에 비하면 더 추상적이다. 나무가 타고 남은 재와 검정물감을 섞은 색으로 수차례 도포해 표면을 견고하게 다듬고, 그 위에 수십 번의 반복적인 칠하기와 겹침으로 일루젼(환상)을 획득한 그림이다. 형식적인 변화를 통해 새롭게 획득한 ‘Wind garden’ 연작을 그가 “구상적인 색면추상”이라고 명명했다. 조형원리의 최소단위인 선과 면, 그리고 색으로만 화면을 구성한 결과다.

‘Wind garden’ 연작이 새롭게 출발하는데 화목난로의 재가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 코로나 19로 집과 작업실을 오가는 생활을 반복하다 문득 화목난로 속 재를 보고 새로운 재료와 형식을 떠올렸다. 때마침 당시에 그는 ‘Secret garden’ 작업을 10여년간 진행하며 형상과 형식에 갇혀있다는 고민을 하고 있던 터였다. “당시 좀 더 자유로운 작업의 확장성을 시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Wind garden’이 추상적이라곤 하지만 완전한 추상과는 거리가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형상들이 스쳐가기 때문이다. 그가 이에 대해 “추상적 구상성을 띤 결과”라고 했다. 색은 단색을 선호하지만 어둡게 출발해 점차 밝음으로 나아가며 색면에 구상적인 요소가 가미된다. 이때 색의 명암을 조절하는 그라데이션이 역할을 수행한다. 그 결과 색이 굽이굽이 일렁이는 파도나 산새처럼 형상화된다. 추상적이지만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바다 풍경도 되고, 산속 풍경도 되고, 현실 너머의 이상향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Wind garden’의 경우도 개념적인 작업이다. ‘Secret garden’ 연작이 자연의 내재된 기운을 포착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Wind garden’은 존재나 우주의 파동이나 시간의 파동을 표현하는데 의식을 집중한다. “색의 겹침과 색의 명암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파동을 포착하며 좀 더 근원적인 주제들로 확장해 갑니다.”

그의 작업이 구상적이든 추상적이든, 출발은 자연이다. “저의 작업은 계속해서 자연을 관조하고 있어요. 자연을 매개로 사유와 깨달음으로 나아가죠.” 자연에 대한 남다른 동경은 고향인 경주에서의 경험들로부터 왔다. “어린시절 명절 때 사촌들과 함께 방안에 나란히 누워 보았던 창호지로 비치는 달빛과 대나무 그림자를 보았던 기억이 너무 강렬했습니다. 그 기억은 고향을 떠나서도 저의 의식에 잔상처럼 늘 남아 있었어요.” 그는 기억 속 자연을 몽환적이며 비밀스러운 기운으로 치환하며 사유의 대상으로 삼아왔다.

“예술의 본질적인 기능인 사유의 촉발에 다가가기 위한 대상으로 자연에 주목했고, 자연을 매개로 자연의 본성이 작동하는 이상향을 표현하려 했어요.”

이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형상이 없는 추상은 어렵고, 형상이 존재하는 구상은 훨씬 편안하다. 구체적인 형상이 인지 기능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상이 작가의 가치관이나 신념을 표출하는 매개임을 상기하면, 작품을 감상하는 감상자는 작가의 의도에 휘말릴 공산이 높다. 구상은 ‘지시적’이라는 측면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형상을 열어놓은 ‘Wind garden’은 지시적이라는 오명을 벗기에 충분하다. 형상에서 느슨해졌고, 그에 따라 상상이나 해석의 여지 또한 넓어졌다.

“구상에서 추상적 구상성으로 이동하며 작가인 저와 감상자 모두에게 더 많은 자유를 허용하게 됐습니다.”

자연에서 시작해 본질의 세계로 나아가는 그의 관념적인 태도는 ‘바람의 정원’이나 ‘비밀의 정원’ 연작 모두 동일하다. 하지만 두 작품 사이에는 또 다른 공통분모도 존재한다. 바로 동양성에 기댄다는 것이다. 캔버스 표면에 중첩하는 검정색에서 먹색을 떠올리고,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에선 우주의 기운을 발견한다. 산이나 나무줄기의 형상으로 출발했지만 궁극적인 염원은 시간과 공간의 파동이라는 추상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가 “파동이나 흐름을 찾아간다는 것은 결국 깨달음과 관련 된다”고 했다. 전시는 5월 7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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