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 경영칼럼] 서문시장이 진짜 ‘큰장’이 되려면
[박명호 경영칼럼] 서문시장이 진짜 ‘큰장’이 되려면
  • 승인 2023.04.09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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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호 계명대학교 석좌교수, 전 계명문화대학교 총장

올해, 우리 고장의 큰 자랑인 서문시장이 지금의 자리에 터를 잡은 지 100년을 맞았다. 그리고 이달 초하루, ‘큰장, 또 다른 백년을 열다’를 주제로 서문시장 10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행사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은 “100년 역사의 서문시장은 우리의 문화유산”이라며, “서문시장이 복합문화공간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정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시장 상인은 물론이고 시민들의 기대가 크다.

지금의 장소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서문시장은 무려 400여년 역사를 자랑한다. 1960년대까지 만해도 서문시장은 우리나라 3대 시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1970년대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전국 최대 규모의 섬유 도매시장의 기능이 크게 축소되면서 쇠락의 길을 걸어왔다. 더구나 무려 17차례에 걸친 화마로 시장의 기능이 크게 위축되었다. 특히 세 차례의 대형 화재의 여파는 아직도 그 상흔이 회복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시련 가운데서도 시장 상인들의 불굴의 회생 노력과 중구청을 비롯한 지자체의 적극적인 행·재정 지원으로 서문시장은 대구 최고의 관광명소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2017년 ‘한국관광의 별’에 이름을 올렸고, 2019년부터 올해까지 3번 연속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되었다. 특히 2016년에 ‘서문시장 야시장’이 개장되면서 2020년에는 ‘야간관광 100선’에 소개되기도 했다. 가히 전국적 관광지가 된 셈이다. 이는 서문시장이 명품시장의 반열에 들었다는 착시현상을 불러오는데, 현실의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시장 활성화는 아직도 부진하고, 예전의 명성을 되찾기란 여전히 요원하다.

서문시장의 어려움은 태생적인 문제점들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탓이다. 우선, 고객들의 활발한 쇼핑을 위한 제반 여건이 좋지 않아 상거래의 발목을 잡고 있다. 교통여건, 주차장, 편의 시설 등 각종 인프라가 미흡하여 고객을 끌어들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서문시장상인연합회는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무엇보다 편의시설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객쉼터, 어린이 놀이터, 공연 공간 등 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특히 지하주차장이 확보되어야 고객들의 접근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시장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당연히 시설을 비롯한 눈에 보이는 여러 장치들을 잘 갖추어야 한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대형마트나 다른 유통기관들과 유사한 수준의 시설을 갖추게 되면 전통시장의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는 가정은 매우 잘못된 판단이다. 비단 서문시장 뿐만 아니라 전통시장에서 상품을 구매하는 고객들은 시장 특유의 재미와 즐거움 그리고 쇼핑 문화를 높게 평가한다. 시장 상인들의 친절함, 부지런함, 인간미와 정(情)과 같은 시장 상인의 정성스러운 모습에 매료되어 전통시장을 찾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장 경쟁력의 핵심은 시장 상인들이 추구하는 장사의 가치다. 어떤 가치를 고객들에게 제공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평가를 받는 전통시장이 될 것인가에 대한 시장 상인들의 공감대가 최우선이다. 장사란 고객이라는 사람을 상대로 상인이라는 사람이 한다. 결국 상인들이 고객들에게 어떤 가치를 어떻게 제공하며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가가 장사의 관건이다. 또한 시장의 평가는 시장 상인들이 지키는 상도(商道)로 결정된다. 따라서 시장 상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고객중심철학이고 장사를 소명(召命)으로 여기는 철저한 직업정신이다. 그것이 바로 고객 신뢰와 고객 감동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시장은 상품이 유통되는 장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시장은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오고가는, 생기 넘치는 장소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서 문화가 교류되고 형성되는 역사의 장(場)이다. 우리 고장 사람들은 특히 서문시장을 귀중한 역사·문화자산으로 여긴다. 국채보상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군민대회와 독립만세운동 등 소중한 역사적 사건들이 이곳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4천600여개의 점포가 있는 서문시장은 규모도 크지만, 역사적 의미는 더욱 크다. 그래서 서문시장의 또 다른 이름은 ‘큰장’이다. 이름에 걸 맞는 품격, 그리고 신뢰와 정직을 바탕으로 전통시장의 모본이 되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서문시장이 복합문화공간으로 발전할 것을 주문했다. 서문시장상가연합회장은 쇼핑과 관광이 함께 어우러지는 복합생활문화공간으로 재도약하기를 바라고 있다. 모두가 ‘문화’를 강조한다. 옳은 방향이다. 그런데 서문시장의 문화는 과연 어떤 것이며, 무엇이 되어야 하나. 이에 대한 명확한 답에 ‘큰장’ 서문시장의 재도약과 미래가 있다. 서문시장의 장래는 시설의 현대화보다 서문시장만의 독특한 문화에 달려있다. 새롭고 분명한 문화가 정립될 때 서문시장의 미래는 밝다. 그것은 시장 상인들이 공유하는 장사의 가치다.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큰장’의 새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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