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칼럼] 필수 의료 붕괴, 이미 현실이 되었다
[의료칼럼] 필수 의료 붕괴, 이미 현실이 되었다
  • 승인 2023.04.0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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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혁 대구시의사회 공보이사, 곽재혁 신경과 원장
1달 전, 우측 팔다리에 마비 증상이 발생한 환자가 진료실에 찾아왔다. 증상 발현시간이 3시간밖에 되지 않아 급성 뇌경색 가능성이 높았다.

급성 뇌경색의 경우, 정맥으로 혈전 용해제 투여하거나 동맥으로 기구를 삽입하여 뇌혈관을 막고 있는 혈전을 제거하는 시술을 해야 한다. 막힌 혈관을 늦게 재개통할수록 뇌손상이 심해져서 사망이나 후유증이 남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시간을 다투는 응급상황이다.

가까운 대학병원 응급실로 환자를 보낸 후 그 병원 신경과 교수에게 연락을 하였다. 그런데, 혈관내 신경 중재술을 할 의사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 교수는 1달 전에 일이 힘들어서 퇴사를 하였고 그나마 남아 있는 교수도 학회로 부재 중이라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 환자는 동맥내 혈전제거술을 하지 않아도 호전이 되어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지만 아찔한 순간이였다. 마침 일년 전 아산병원 간호사가 뇌출혈로 병원내에서 사망한 사건이 떠올랐다. 서울 아산병원 간호사가 뇌출혈이 발병하였으나 뇌혈관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의 부재로 인해 제때 수술을 받지 못해 사망한 사건이였다. 국내에서 가장 큰 병원인 서울 아산 병원조차 뇌혈관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단 2명 뿐이였다. 그마저도 휴가와 학회 참석으로 인해 뇌혈관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병원내에 없었다. 정치권 일부와 언론에서는 의대정원 확충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하였다. 정말 의대 정원을 늘리고 공공의대를 신설해서 의사수를 늘리면 해결이 될 수 있을까? 서울아산 병원에서는 신경외과 전문의를 가진 의사가 25-30명 가까이 근무하고 있다. 신경외과 전공의까지 포함하면 40명이 넘는 숫자이다. 하지만 뇌혈관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는 2명밖에 없는 현실이다. 즉 정확하게 말한다면, 신경외과 전문의가 없어서가 아니고 뇌혈관을 수술 할 수 있는 의사가 없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뇌혈관 수술은 수술의 난이도가 높아서 숙련된 외과의사가 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반면에 수가는 낮고 의료 소송이 많기 때문에 신경외과 전문의가 되고 난 후에도 뇌혈관 수술을 하지 않고 척추 등 다른 분야에서의 신경외과의사로 진로를 변경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결국, 현실적으로 턱 없이 부족한 뇌혈관 수술 의사 수로 이어진다.

지난 29일, 소아청소년과 개원 의사단체가 경영악화의 이유로 폐과를 선언하였다. 앞으로 소아 청소년과를 폐과하고 타 진료과로 전향을 할 수 있는 진로 교육센터를 설립하겠다고 한다.최근 수년간 소아 청소년과는 새로 개원한 곳보다 폐업한 의원이 더 많았다. 지금처럼 왜곡된 의료환경에서 의대 정원 확충은 중증 필수분야 의료진이 늘어나기는커녕 비급여·저위험 분야에서 일하는 의료진만 늘어날 게 뻔하다. 그런 면에서 공공의대 또한 답이 아니다. 사명감으로 일하는 의사와 정부의 강제에 의해 일하는 의사가 만드는 결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숙련된 수술의가 되는 데는 전문의를 취득하고도 수년간의 수련이 필요하다. 현 상황과 같은 의료환경에서는 공공의대를 졸업하고 일정 필수 의무 근무기간만 지나면 필수 의료에 더 이상 종사하지 않고 미용이나 통증등으로 진로를 변경할 가능성이 높다.

더 이상 의대 정원 충원이나 공공의대 같은 전시성 정책이 아닌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정부는 올해 초에 필수 의료 지원대책을 발표하였다. 중증 진료 기능에 집중하도록 상급 종합병원 지정 및 평가 기준을 개선하고 고난도 및 고위험 의료행위에 대해 추가보상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수술의사가 없어 여러 병원 등으로 환자가 이동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병원 간 순환 당직제를 시행하고 지역 전공의 배정을 확대하겠다는 내용이다. 이전에 비해서는 진일보한 정책 접근이지만 아직도 부적한 점이 많다.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 제정이 되어야 한다. 또한, 필수의료 분야의 수가 인상 및 공공정책수가 확대 등에 필요한 구체적인 재원 마련에 대한 방안이 있어야 한다. 추가적인 재원 증원이 없이 다른 과의 수가를 인하하여 필수 의료 분야에 수가를 증가하는 제로섬 게임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본 것을 이야기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들은 것을 이야기 한다는 중국 속담이 있다. 가짜 뉴스, 가짜 정보에 휩쓸려 언 발에 오줌 누는 행동은 이제 더 이상 해서는 안 된다. 현실을, 진실을 보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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