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신라천년서고에 앉아
[문화칼럼] 신라천년서고에 앉아
  • 승인 2023.04.12 21:4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형국 칼럼니스트
지난 12월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오랫동안 수장고로 사용하던 곳을 도서관으로 새로 단장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는 도서, 도록 등 여러 자료들을 일반에 공개하기 위한 공간이다. 나는 이런 기능적 소중함보다도 전통건물의 목구조 형식을 현대적으로 아름답게 재해석하여 국내 최고권위의 실내디자인상 ‘골든스케일베스트어워드’를 수상하였다는 소식에 그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이름 하여 ‘신라천년서고’ 이곳에서 책을 읽다 피곤하면 눈을 감고 졸기도 하고, 아니면 박물관의 유물도 감상하고 그러다 반월성으로 산책도 다녀오며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차일피일 미루다 일전에 유난히 일찍 핀 벚꽃도 곧 질 것 같고, 특히나 비 소식에 그나마 남아있던 꽃들도 다 져버릴까 싶어 서둘러 길을 나섰다.

경주박물관의 월지관 뒤편, 경내 가장 구석진 곳에 신라천년서고는 자리하고 있었다. 그동안 가끔씩 찾던 곳이지만 이쪽으로는 처음 걸음 하였다. 서고의 겉모습은 음∼하는 가벼운 실망감? 70년대에 만들어진 외관은 시멘트로 신라의 전통성을 표현한 것이 왠지 어색하게 보였다. 그러나 과연 서고의 내부는 달랐다. 일단은 친근하다.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가방은 보관함에 맡기고 노트북 등 내용물은 꺼내서 들고 가야하는, 약간은 성가신 절차가 따르는데 여기는 그냥 쓱 들어가면 된다. 그리고 정면에 신라시대 석등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다. 작은 도서관 실내에 서있는 그 모습이 여기가 어딘지 말해주는 듯하다. 그리고 과연 소문대로 천장의 목구조는 기하학적 단정함과 다양한 표현 그리고 섬세한 처리가 아름다웠다.

서고라는 이름에 걸맞게 정말 소중한 자료들이 잘 보이게 펼쳐져 있다. 이 북큐레이션 공간이 가장 큰 매력이란 말이 허언이 아니었다. 이런 분야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는 매우 재미나는 공간이 되리라 생각한다. 내부 공간이 그리 넓지는 않다. 그래서 많은 인원을 수용하기는 어렵겠지만 책을 읽을 수 있는 책상과 의자들이 다양한 형태로 갖춰져 있다. 알려지기로는 ‘눕독’도 가능하다고 했는데 우리가 국립중앙박물관의 괘불영상을 보는 공간이나 일부 전시장에서 영상을 누워서보는 것과 같은 정도는 아니다. 다만 보통의 도서관과 달리 모던한 디자인의 소파도 있어 자신의 선택에 따라 매우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눕독’은 사실 책 읽기에 그리 편한 자세도 아니다.

월정교가 멀리 보이는 자리에 앉아 책을 읽었다. 몇 채의 주택과 들판 건너 나지막하게 펼쳐진 야산들이 정겹게 비치는 공간이다. 박물관 몇 곳의 분위기를 굳이 비교하자면 이렇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언제나 사람이 붐빈다. 그러나 그곳이 관광지라는 느낌은 크게 들지 않는다. 다들 감탄의 마음으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우러러 본다. 그리고 국립대구박물관 역시 복식전문박물관답게 특유의 컬러를 가지고 아카데믹하게 다가온다. 우리나라에 6개의 신라시대 금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중앙박물관에 2개 그리고 경주에 4개가 있다고 한다. 이처럼 국립경주박물관은 바로 그 신라천년 문화의 현장에 자리하고 있어서 매우 특별한 무게감이 있다. 하지만 관광지 특유의 약간의 들뜸 같은 것도 그 공간에는 자리하고 있다고 나는 느낀다. 그래서 신라천년서고는 더욱더 소중한 공간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든다. 서고가 비록 큰 규모는 아니지만 국립경주박물관의 균형을 잡아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수 관광코스에 자리한 도서관, 약간의 들뜸을 잡아주는 차분함, 빨리 박물관의 유물을 보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한다는 분주함을 제어하는 기능이 이곳에 있지 않은가. 즉 어떻게 보면 서로 상반된 기운이 한 공간에 함께 자리 함으로써 오히려 아름다운 합이 이루어 졌다는 생각이다. 신라천년의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경주의 찬란한 유산을 감상하고 또한 아름다운 경주 구석구석을 걸으며 즐긴 후 마침내 이곳 천년서고에서 차분한 마음으로 오늘을 돌아보며 읽는 한권의 책을 통하여 여행은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이곳에서 월정교 방면으로 길을 나서 설렁설렁 걸어도 20분이면 교촌마을에 도착한다. 이곳을 둘러보고 첨성대, 대릉원 등을 거쳐 다시 박물관으로 향한다. 두어 시간 정도면 충분히 쉬어가며 산책과 함께 신라문화의 현장을 탐방할 수 있다. 서고에서 책을 읽다 길을 나서서 둘러보든 아니면 그 반대로 주변을 둘러보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즐기고 서고에 오든, 어떻게 해도 매우 만족스러우리라 생각한다. 참고로 천년서고 가까이에도 커피하우스가 있다. 친절하고 내용도 좋다. 그리고 해가 지고 난 후 동궁과 월지의 야경까지 즐긴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아무튼 신라천년서고를 보기위해 오랜만에 경주를 찾았고 더 좋은 공간이 되기 위한 개선점도 보이지만 이곳으로 인해 경주여행이 더 풍성해 진 것은 틀림없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