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숲 속에 둥근 달이 부풀고 있어
불쑥 불쑥 잎을 뒤집고 나와
나를 즐거움에 젖어들게 하는 풍경.
아무에게나 발목 잡고 노랗게 웃음 흘려도
볼 때마다 정신을 둥글게 만들어주지
사람들 사이도 둥글게, 굴려가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는 것 같아
날 선 칼끝 같이 살아가지 말자.
곁에 있는 사람에게도, 낯선 그 누군가에게도
모나지 않게 살아가자. 다짐하는
◇정이랑= 경북 의성 출생. 1997년 ‘문학사상’ 신인발굴로 등단. 1998년 ‘대산문화재단 문학인창작지원금’수혜시인 선정. 2022년 제3회 ‘이윤수문학상’ 수상. 시집으로는 ‘떡갈나무 잎들이 길을 흔들고’와 ‘버스정류소 앉아 기다리고 있는’,‘청어’가 있음.
<해설> 꾸밈없는 진솔함 속에 번뜩이는 메시지를 담은 시이다. 호박을 달로 환치하면서 시인은 “아무에게나 발목 잡고 노랗게 웃음 흘려도 / 볼 때마다 정신을 둥글게 만들어주지” 호박을 슬쩍 의미로 바꿔치기하고 있다. 둥글음의 미학을 이야기 하면서 밭둑이라는 경계 위에 호박 하나를 덩그러니 올려두는 풍경을 빚고 있다. 아무렇지 않게 흔한 풍경을 데려와서 자신의 반성과 다짐으로 옮겨가는 동양정신의 멋진 한 면을 시로 보여주는 능청스러움에 감동의 박수를 보낸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