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화양연화
  • 여인호
  • 승인 2023.04.1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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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생, 오셨는가?” “예, 형님. 오늘은 무슨 일 하실라고요.” “포도나무 죽은 게 몇 군데 있어서 묘목을 심을라고.” “예. 차 한 잔 하시고 시작하시지요.” “방금 전에 동회관에서 먹고 나왔어.” “그래도 한 잔 하시고 하시지요.” “됐어요. 그보다 저 문에 찍혀 있는 화양연화가 무슨 뜻인가?” “화양연화는 꽃이 피고 빛난다는 뜻인데, 저는 오늘도 참 좋은 날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랬구나. 연화는 무슨 뜻인지 알겠는데, 화양이라는 글자가 무슨 뜻인지 잘몰라서 물어봤지.”

2023년 3월 11일 김천시 아포읍 대신리 밭에서 고향의 이장님(시골에서는 아직도 동장이라고 많이 부름)이자 5살 위인 형님과 나눈 이야기입니다. 인근에서 샤인머스켓 포도 농사의 최고 권위자이기도 합니다. 이장님의 포도밭과 5미터 정도의 농로와 수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있는 영호의 농막과 포도 농장의 비닐문에 찍혀 있는 화양연화라는 글자를 두고 주고받은 이야기입니다.

화양연화(花樣年華)의 사전적 의미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화양연화는 2000년 부산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된 영화제목으로 널이 알려졌습니다. 왕가위 감독이 연출하고 장만옥과 양조위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드라마 제목, 방탄소년단의 앨범 제목이기도 합니다. 또한 노래 제목, 책 제목, 연주회나 전시회, 빵집이나 음식점 상호 등으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영호는 주중에는 학교일에 진심을 다합니다. 주말에는 농장에 가서 농사일을 즐겁게 합니다. 어려서부터 일하는 게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농사일을 할 때 어렵고 힘들기 보다는 즐겁고 행복한 순간입니다. 그래서 그냥 일하는 것도 좋지만 무엇인가 의미 있는 말을 적어놓고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화양연화 문구를 새겼습니다. 아내는 어려운 말 사용하지 말라며 핀잔을 주기도 합니다.

흔히들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합니다. 그만큼 농부의 사랑과 정성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어떤 농작물이거나 사랑과 정성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농부에게 소중한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농부에게 소중한 존재인 농작물에 사랑과 정성을 쏟는 순간은 참 좋은 시간입니다. 영호는 그런 순간이 바로 화양연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영호가생각하는 화양연화는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학교에서 교장으로 아침에 아이들을 맞이하는 순간은 참 행복합니다. 선생님들의 좋은 수업을 참관하는 것도 참 즐겁습니다. 학부모님들이 선생님들의 수업을 보고 좋아하는 것을 보면 더 없이 행복합니다. 이런 순간은 모두 영호의 화양연화입니다. 물론 민원이 생길 때도 있고, 교직원들의 갈등이 있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민원과 갈등도 어쩌면 참 좋은 화양연화를 위한 조금 힘든 화양연화라고 생각합니다. 교장으로서 영호의 화양연화는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참 좋은 날에서 도는 조사로 이미 어떤 것이 포함되고 그 위에 더함의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입니다. 또한, 둘 이상의 대상이나 사태를 똑같이 아우름을 나타내는 보조사이기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참 좋은 날에서 도는 긍정의 의미입니다. 오늘도 좋다는 것은 어제도 좋다는 뜻입니다. 어제도 어제는 오늘이었습니다. 오늘도 내일이면 어제가 됩니다. 내일도 내일이되면 오늘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도 참 좋은 날은 모든 날이 참 좋다는 긍정의 마음입니다.

“교장 선생님 (잠시 뜸을 들이고는) 이런 말씀 드려도 될 런지 모르겠는데 (처음보다 더 뜸을 들이고는) 참 멋지십니다.”

2023년 3월 16일 목요일 아침에 교문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아이들을 맞이하다가 후문 쪽으로 걸어가는데 교통봉사를 하시던 어르신이 하신 말씀입니다. 어르신 말씀에 웃음으로 화답을 하고 이유는 여쭈어보지 않았습니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그 이유를 알아서 좋은 기분을 흩뜨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르신 말씀을 듣고 영호의 목요일 하루는 화양연화가 되었습니다. 마침 교정의 살구꽃이 활짝 피었고, 벚꽃도 꽃망울이 몽실몽실한 아침이었습니다. 어르신의 참 멋지다는 말 한 마디에 영호의 목요일 하루도 ‘오늘도 참 좋은 날’이었습니다.



김영호 <대구교육대학교대구부설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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