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예천군 지보면 신풍미술관 이성은 관장
경북 예천군 지보면 신풍미술관 이성은 관장
  • 황인옥
  • 승인 2023.04.1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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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한 시골 어르신들 삶에 ‘신세계’ 선물
교사·큐레이터 출신이 시골로
남편에 ‘미술관 지어달라’ 조건
할머니들 초대 그림 그리기 제안
그림 속에 ‘마음의 상처’ 쏟아내
13년 경험에 어르신들도 전문가
키즈 교실·주부 대상 프로그램도
독일 지인 초청받고 ‘독일 전시’
농림부·문체부 장관상 ‘큰 힘’
 

 

신풍미술관전경
신풍미술관 전경. 신풍미술관 제공

평생 농사를 지었던 농촌의 노인들은 허리가 굽고, 관절이 시큰거려도 논과 밭을 떠나지 못한다. 자식들이 제아무리 간절하게 말려도 발걸음을 옮길 힘만 있으면 논밭을 놀릴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항변이다. 농사로 자식들 키우고 삶을 꾸렸으니, 그들에게 농사는 숙명인 것이다. 하지만 생기는 잃어가고 무기력함이 일상으로 찾아오는 80대를 넘긴 초고령자가 논밭을 누비는 모습은 연민을 자아낸다. 이제는 쉴 법도 한데, 여전히 논밭을 지키는 모습은 애잔함 그 자체다.

돌이켜보면 한국사회가 선진국으로 진입하기까지 그들의 지분은 적지 않다. 농사로 공부시켜 도시로 내보 낸 그들의 자식들도 지금의 국가 시스템과 부를 일구는 역군으로 활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생 일만한 그들은 정작 지금의 부와 시스템으로부터 소외되어 왔다.
 

이성은-신풍미술관장
이성은 신풍미술관장

신풍미술관 이성은 관장은 농촌 노인들의 삶에 신세계를 열어준 인물이다. 고령화된 전형적인 농촌마을에 미술관을 짓고, 동네 어르신들에게 그림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선물했다. 그는 13년째 일주일에 하루 미술관에서 어르신들에게 그림 그리기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그림이나 미술관을 평생 접하지 못한 노인들에게 그림은 새로운 재미와 상처 치유라는 두 가지 가치로 다가왔다.

사실 신풍미술관의 입지조건을 따지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경북도청에서 차로 15분 거리라고는 하지만, 지리적인 측면에선 전형적으로 외진 농촌마을이다. 신풍마을은 파평 윤씨 집성촌이자 이 관장 남편의 본가라는 이유로 미술관의 터를 잡았다. 중학교 교사를 거쳐 도립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한 그가 농촌의 시댁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남편의 효심 때문이었다. “2007년에 병원에서 시어머니가 몇 년 못 버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남편이 ‘’어머니를 모시겠다‘며 갑자기 귀향을 선언한 것”이다.

남편의 폭탄선언에 그의 마음은 복잡해졌다. 시어머니 모시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무엇보다 익숙하던 도시를 떠나 시골에 정착한다는 것에 걱정이 밀려왔다. “친구들이 시골로 간다니까 ‘호랑이 굴에 왜 들어가냐? 남편만 보내라’고 조언했어요. 하지만 저는 결국 남편의 뜻을 받아들였어요.” 불효로 평생 마음의 짐을 질 수는 없다는 생각에 조용하게 남편의 뒤를 따랐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수락은 하지 않았다. 미술관을 지어주는 조건을 내 걸었다. 결국 2009년에 귀향하고, 2010년에 미술관 건립을 위한 첫 삽을 떴다. 그렇게 아내는 미술관을, 남편은 체험농장을 운영하며 고향에 정착했다. 그들이 정착한 후 병원으로부터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시어머니는 그로부터 10년을 더 살다 4년 전 세상을 떠났으니 시어머니에 대한 도리는 다한 셈이다.

할머니그림학교개강
할머니 그림학교 개강모습.

동네 어르신들과의 인연도 그때부터 시작됐다. 미술관을 지으면서 인부들의 밥을 직접 챙기는 과정에서 친분이 시작됐다. 식사 시간에 어르신들이 공사 현장을 지나면 준비한 샌드위치나 주먹밥을 건네곤 했다. 그때부터 공교롭게도 식사 때가 되면 이상하게 우연히 할머니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들이 잦아졌다. 우연이 우연이 아니었음은 한참 후에 깨달았다.

“새로울 것 없는 시골마을에 미술관을 짓는 것도 호기심이셨지만 혼자 식사 하시는 것이 내키지 않으셨을텐데 제가 특별한 간식을 드리니까 일부러 공사현장으로 오셨던 것이죠.”

그렇게 평균 연령 80대인 어르신들이 조금씩 마음의 빗장을 열고 그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오자 보이지 않던 노인들의 속사정이 조금씩 드러났다. 동네 주민이 모두 혈연관계로 맺어진 특수성으로 인해 평생 조심스럽게 살아온 여정이 얼굴에 노인들의 그늘로 드리워져 있었다.

“집성촌이 되다보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거나 감정을 내비쳤을 때 그게 화살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을 아시게 되면서 평생 입을 닫고 사셨어요. 그 상처들이 적지 않았던 것 같아요. ”

마을 어르신들에게 그림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농한기인 겨울철 어르신들의 화투 놀이를 지켜보면서다. 경로당에서 화투를 즐기며 치매를 예방하고 놀이도 겸하는 것은 좋은데, 승부욕이 넘치는 바람에 갈등이 더러 생겼다. 그래서 할머니들을 미술관으로 초대해 화투를 그림으로 그려보라는 제안을 하게 됐다. 그것이 할머니들과 그림을 그리게 된 시초였다.

“화투를 그리시라고 한 뒤로 할머니들의 승부욕이 사라졌어요. 그림이 노인들의 놀이문화의 부작용을 없앤 것이죠.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그림의 효과에 새삼 놀랐어요.”

생전 그림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던 노인들이기에 처음에는 낯설어하고 의기소침해했다. 하지만 막상 그림을 시작하자 그림이 블랙홀처럼 어르신들을 빨아들였다. 이후 9첩 반상을 주제로 던져주고, 반상에 올라갈 음식을 할머니들이 직접 하나씩 장만해 와서 상을 차리게 하고는 그림을 그리게 하는 등 다양한 주제로 할머니들의 그림 본능을 일깨웠다.

할머니들의 그림 공부는 미술치료가 병행됐고, 시간이 흐르면서 어두웠던 어르신들의 얼굴에도 조금씩 미소가 번졌다. 할머니들의 밝아진 마음은 동네 벽화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할머니들이 직접 그린 벽화다.

“대학에서 미술교육을 공부한 것을 할머니들에게 적용했어요. 막상 할머니들과 부대껴 보니 제가 공부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임상들이 드러났어요.”

미술관 수업이 있는 날이면 이 관장은 일일 요리사를 자처한다. 카레나 짜장밥 등의 요리를 직접 만들어 어르신들에게 대접한다. 평생 정직하게 농사지으며 살아온 그들에게 건네는 이 관장의 고마움의 표현이자 위로의 식사다. “그림도 생전 처음 접하셨지만 카레나 짜장밥도 해 드리면 평생 처음 드셔보신다고 좋아하세요. 그런 모습 보면 보람이 큽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할머니들의 그림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주제만 던져주면 척척 그려냈다. 우직하게 살아온 내공이 그림으로 표출되는 듯 했다. 무엇보다 할머니들의 그림에선 인생이 묻어나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솥을 그리든, 수박을 그리든 그 속에는 여지없이 할머니들의 사연들이 함께 녹아들었다. “그림 설명을 해 달라고 말씀드리면 젊은 시절 할아버지 때문에 마음 고생한 이야기나 힘들게 자식들 키우며 가슴 아팠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쌓여있던 상처를 푸시는 거였고, 그림 치유의 힘이었어요.” 무형의 상처가 유형의 그림으로 끄집어내 보듬는 과정이었다.

할머니들은 신풍미술관 전속작가들이다. 당연히 1년에 한 차례 전시를 연다. 전시 개막일이 되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당신들 가진 옷 중 가장 좋은 것을 차려입고 미술관으로 향한다. 일 년에 한 번 대형 버스를 빌려 국내 미술관 탐방도 다니며 미술에 대한 시야도 넓힌다. 13년간 그런 경험을 통해 이제 어르신들은 누구보다 미술 전문가가 됐다.

“다른 작가들의 전시가 열릴 때도 격식을 갖춰 차려입으시고 전시를 축하해 주시는 모습을 뵈면 뿌듯해요. 시골 어르신들의 모습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미술을 향유하고 계시니까요.”

신풍미술관은 유럽풍으로 지어진 본관 전시장과 회의와 체험학습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신관인 신풍아트팜, 그리고 스위스풍의 알록달록 예쁜 펜션 3채 등으로 구성된다. ‘치유와 예술의 뿌리’를 주제로 한 전시를 1년에 4~5번 열고, 할머니들의 전시도 진행한다.

시작은 이 관장이 했지만 지금은 이 관장이 어르신들로부터 받는 위안이 더 많다고 한다. “시어머니가 좀 무서우셨는데 동네 어르신들이 ‘힘들제?’ 하시면서 다독여 주시고, 농사지은 것도 갖다 주시고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는지 모릅니다. 너무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죠.”

노인들로 시작한 미술을 매개로 지역주민과 만나는 일은 계속 확장하고 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키즈 교실과 농촌의 젊은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도 운영중이다. 지자체 지원 사업을 통해 약간의 경비를 지원받기도 하지만 운영 경비로는 턱없이 모자란다. 하지만 보람은 크다. 할머니들의 미술 여정이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들의 노년의 삶에 새로운 확력을 불어넣은 것이 가장 큰 보람이지만 대내외적인 인정도 뿌듯하게 다가온다.

가장 큰 소득은 할머니들의 작품이 독일로 건너간 것이다. 독일 지인의 초청으로 전시를 열었고, 그 전시를 계기로 독일 할머니들도 신풍미술관을 다녀갔다. “평생 독일이 어디 생겼는지도 모르는 할머니들이 독일을 방문하시고 작가로 전시까지 하셨으니 얼마나 큰 자부심이셨겠습니까? 저 역시 너무 뿌듯했습니다.”

상복도 터졌다. 의외의 상복은 대가 없는 일에 열정을 바쳐 온 그를 응원하는 것 같아 큰 힘이 됐다. ‘농업경영인 전국대회 농림부 장관상’에 이어 ‘2022 박물관·미술관 발전 유공 정부포상 시상식’에서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수상했다. TV에도 더러 신품미술관 할머니 화가들의 사연이 소개되기도 한다. “경북 예천군 지보면의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이룬 성과여서 더 크게 다가왔어요.”

농촌의 어르신들에게 그림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선물한 장본인이 이 관장이다. 혹자는 ‘시골에 살면 외롭지 않냐’고 말하지만, 그는 그때마다 “할머니들 때문에 웃을 일이 많다”며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이제는 할머니들뿐만 아니라 초등학생들까지 그를 웃게 한다. 그는 그림을 매개로 조용하고 외진 시골에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웃음꽃을 피워내는 미다스의 손이다.

“신풍미술관은 저와 마을 할머니들, 그리고 인근의 아이들과 주부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선물같은 공간으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신풍미술관의 미술과 함께 하는 세상 만들기는 계속 될 것입니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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