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온의 민화이야기] 청록산수도...이상 세계 향한 염원, 화려한 푸른빛 절경을 낳다
[박승온의 민화이야기] 청록산수도...이상 세계 향한 염원, 화려한 푸른빛 절경을 낳다
  • 윤덕우
  • 승인 2023.04.1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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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綠 안료 바탕 산수화 ‘청록산수’
산·수목에 이어 언덕·돌까지 채색
역사화 다루거나 탈속 공간 상징
산봉우리로 ‘최고 통치자’ 표현
조선화가 안중식 작품
산맥이 열리고 닫히는 모습 반복
융기는 점 찍는 듯한 태점법 활용
나무는 가는 붓으로 꼼꼼히 묘사
그 어느 해보다 이른 봄의 도착에 산과 들의 색이 파릇파릇, 이제 곧 화왕지절(火旺之節)의 세상으로 변한다는 것을 미리 알려 주는 듯하다.

오늘은 몇 해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조선 근대 서화, 봄 새벽을 깨우다.> 라는 전시를 통해 소개 되었던, 조선시대 근대화가 안중식의 산수화 한 점을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의 계절에 딱 어울리는 그림이 될 듯싶다. 또한, 전시의 주제처럼 이 봄을 깨우는 청량한 그림 한 점이 되리라 생각한다.
 

도원행주도-안중식-01
<그림1> 안중식(安中植), 도원행주도(桃源行舟圖) 1915년 제작, 견본 채색, 65.5×238.6cm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안중식은 다양한 분야의 그림과 글씨에 뛰어난 선비 출신의 화가로 호는 심전(心田), 경묵도인(耕墨道人), 불불옹(不不翁)이다. 조석진(趙錫晉)과 함께 장승업(張承業) 밑에서 그림을 배웠다. 또한, 조석진과 함께 왕의 초상화 제작에 참여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아, 조선 말기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화단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한국 최초의 근대미술학교 서화미술회(書畵美術會)에서도 함께 제자들을 길러냈는데, 그들 문하에서 중세로부터 근대로 넘어가는 대표적 화가들이 배출되었다. 이 그림의 화면 상단에 적힌 ″을묘년 늦은 봄 심전 안중식(時乙卯暮春心田安中植)″라는 글을 통해 1915년, 즉 안중식의 만년기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중국 진대(晋代)의 도연명(陶淵明)이 지은 <도화원기(桃花源記)>를 바탕으로 한 ′무릉도원(武陵桃源)′을 그린 것으로, 무릉(武陵)에 사는 한 어부가 배를 타고 가다가 길을 잃어 복숭아꽃이 만발한 별천지에 이르렀다는 이야기이다. 고사의 내용에 걸맞게 높은 산세와 기이하고 복잡한 산수의 모습을 녹색과 분홍색을 사용하여 환상적인 이상향을 만들어냈다.

이 그림에서 별천지의 환상적인 분위기를 광물성의 안료인 녹색(석록)을 화면 전반적으로 사용하고 곳곳에 분홍색을 사용하여 효과적으로 연출했고, 섬세한 필치로 경물을 묘사하여 수준 높은 청록 산수화를 완성했다. 피마준과 태점으로 산맥 융기를 꼼꼼히 표현하고 다양한 형상의 나무들은 가는 붓으로 상세하게 표현했다. 이 그림과 같이 화면 가득히 경물을 복잡하게 배치하고, 산맥이 열리고 닫힘의 반복을 보이는 방식의 산맥 표현인 용맥(龍脈) 방식으로 산을 표현하였으며, 감각적이고 화려하게 채색하였는데, 이는 이 시기 장승업을 중심으로 한 화가들이 제작한 사왕화풍(四王畵風)의 산수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특히 산수화는 중국과 한국의 회화예술에서 중요한 부분이고, 그 역사 또한 매우 길다. 이는 서양의 풍경화(風景畵,landscapepainting)와 비교해 볼 때 명확히 드러난다. 서양에서는 근대기에 들어서 풍경화가 본격적으로 성장했다고 하여 ‘풍경의 발견’은 곧 근대적 시각의 핵심 중 하나로 논의되기도 할 만큼, 서양 미술사에서 풍경화의 비중은 미약한 편이다. 반면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중세기에서 근대기에 이르도록 산수화가 회화예술의 중심부를 차지해왔다. 중국 회화사 혹은 한국 회화사의 서적을 펼쳐보면 서술의 중심에 산수화가 놓여 있음을 쉽게 볼 수 있다.

자연을 그린 산수화(山水畵)는 조선시대 회화를 대표하는 분야이다. 동양화(東洋畵)라는 단어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림 또한 산수화이다. 우리나라 산수화는 삼국시대의 무덤 벽화나 백제의 산수 무늬가 그려진 벽돌 등에서도 나타나듯이 아주 오래전부터 그려졌다. 통일신라나 고려시대에도 산수화가 많이 그려졌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현재 남아 있는 작품은 거의 없다. 오늘날 볼 수 있는 산수화는 조선시대에 그려진 작품들이 대다수이다. 산수화는 문인화로서 전문화가인 도화서 화원뿐만 아니라 사대부계층에서도 많이 그렸다. 이는 자연의 이치를 담은 마음속의 산수를 그리는 중국 남종화(南宗畵)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서도 청록산수란 여러 종류의 화려한 물감, 즉, 당채, 진채, 석채 등 안료로 채색한 산수화로서 산과 수목 뿐 아니라 언덕과 돌에도 사용되며 그 영롱한 빛이 시각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특히 두 색조(청색과 녹색)를 부각시켜 ‘청록산수화’라 칭해졌다. 청록산수화는 중국 당대(唐代)에 원형(prototype)이 이루어진 이래 그 양식이 비교적 보수적으로 전승되어 왔다. 당대(唐代)의 이사훈(李思訓), 이소도(李昭道), 북송(北宋)의 조영량(趙令穰), 남송(南宋)의 조백구(趙伯駒), 조백숙(趙伯肅)을 잇는 양식 계보가 형성되었고, 원대(遠代)에는 전선(錢選), 조맹부 등이 고의(古意)를 되살리는 매체로 사용하며 청록산수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청록산수화는 의식적으로 먼 과거로의 회귀를 추구하여 고사(故事)·역사화를 다루거나, 은자(隱者)의 탈속한 공간 혹은 현실을 넘어선 선계(仙界)를 추구하고 상징하였다.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된 작품의 주제,제재,양식은 청록산수화의 원형(prototype)을 형성하였다.
 

청록산수도-안중식
<그림2> 안중식(安中植), 청록산수도(靑綠山水圖), 1900년대,견본 채색, 57.6×197.0cm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안중식의 <청록산수도>에서 보듯이 조선시대의 청록산수화는 이상향을 꿈꾸는 산수화와 고사 인물화, 왕실의 위엄과 권계적인 의미를 지닌 궁중장식화와 기록화, 부귀와 장수를 기원하는 민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속세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선비를 어부와 나무꾼에 비유하여 초자연적인 세계로의 이상향을 나타내는가 하면, 장생불사(長生不死)의 실현을 십장생에 실어 신선 세계의 낙원으로 표현하였다. 또 천명(天命)을 받아 삼라만상을 조화롭게 다스리는 통치자로서의 이상 정치를 푸른 산봉우리에 담아 묘사하였다.

청록산수화에 사용된 광물성 안료인 남동광(남색)과 공작석(녹색)이 고대에서부터의료용 약재이기도 하고 도가의 단약에 쓰이는 선약(仙藥)이기도 했던 점이 지금의 청록산수화의 근원이 아닌가 싶다.

도교의 선약에 대한 지식이 있는 관람자라면 청록산수화에 표현된 청록의 산과 바위는 공청, 증청 등의 선약과 불로장생과 우화승선의 약효를 연상시켰을 것이다.

이들 안료를 이루는 원석에 대한 기록은 의약서인 본초강목(本草書類)에서 찾을 수 있는데, 공청(空靑), 증청(曾靑), 편청(扁靑), 백청(白靑) 등의 석류(石類) 약재가 그것이다. 선계를 노래한 수많은 문학세계를 공유한 문사들에게 청록산수화는 선계의 시각적 재현으로 이해되었을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하루도 사건사고가 없는 날이 없다. 그렇지만 고요한 그림 속 청록이 주는 고요하고 평온한 느낌을 감상하시고, 봄 새벽을 깨우는 선계의 그림으로 하루를 맞이해 보시라… 어제보다 나은 활기찬 하루를 맞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박승온ㆍ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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