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그믐
[좋은 시를 찾아서] 그믐
  • 승인 2023.04.20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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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조 시인

밤이 말없이 다가오는 여인처럼 거룩한 순간

멀고 먼 세상에서 온 난파선이 기울어져 있다

문명 이전부터 진행된 희디흰 고독의 침몰

어디로 비출지 모르는 희미한 전조등

옆에 있어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 자정처럼

옆구리에 비수 한 자루 품고 있는 저 고요

답답할 때마다 자신의 살을 깎아 먹는 저 허기

눈물을 조각하여 허공에 걸어둔다

반복되는 장면으로 영역을 확보하는 삶과 죽음의 국경선

살아가면서 죽어가는 저 적막한 몸부림

◇신영조= 대구 출생.‘현대시학’ 2005년 등단 . 한국시인협회 회원, 대구문인협회 회원, 대구시인협회 회원, 시가마동인. 2016년 대구문협 올해의 작품상 수상. 시집 ‘눈물을 조각하여 허공에 걸어두다’ (서정시학, 2021년)가 이 있음.

<해설> 그믐은 절벽이다. 음력의 달, 마지막 날인 것처럼 캄캄하다. 밤낚시를 좋아하는 나는 그믐밤을 좋아한다. 캄캄한 어둠을 뚫고 올라오는 찌불이 황홀하기 때문이다. 신영조 시인에겐 희디흰 고독의 침묵이며 “옆에 있어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 자정처럼/ 옆구리에 비수 한 자루 품고 있는 저 고요”가 그믐인 것인데, 눈물조차 조각하여 허공에 걸어 두겠다는 의지로 보아 적막한 몸부림 뒤에 찾아올 거룩한 순간을 향한 어떤 기원이다. 캄캄한 절벽에 꽃 한 송이를 피우려는 시인의 정신이 당차보이는 것은 이미 절기가 그러하듯 달도 차면 기울고, 기울어 바닥을 치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삶의 이치를 간파하고 있기 때문일 터, 살아가면서 죽어가는 저 적막한 몸부림에게 시인은 어둡지만 따듯한 말 걸기를 시작하고 있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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