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떠나기에 바빴던 핏줄이
길 떠날 핏줄을 배웅하고 있다
둥근 알몸 드러낸 고구마 그 중 한 뿌리를 붙잡은 나
사슬에 얽혀 흙덩이를 파헤치고 있다
삼신할미의 빈틈없는 복제가
손짓 발짓 영락없이 닮게 한 조카의 결혼식에
모여드는 피붙이들 모두 한 줄기에서 둥지를 넓힌
닮은꼴 고구마 같다
손자 손녀 낳았다고는 하나
줄줄이 대롱대롱 달려있는 우리는
알고 보면 그렇게 대 이은 한 뿌리
오늘도 줄을 잇기 위해
오늘을 떠나보내고 있다
◇권보옥= 형상시학회회원.
<해설> 혼인식의 의미는, 성인이 된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 이제부터 함께 살겠다는 선언을 하는 것이며, 동시에 둘의 몸을 합쳐 또 다른 DNA를 만드는 거룩한 행사일 것이다. 이렇듯 인류의 번창 또한 줄이 줄을 떠나고 배웅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한 줄기 넝쿨아래 매달린 고구마를 연상하면서, 한 고구마의 혼인식 축하를 위해 모여든 한 가족들의 얼굴에서 시인은 닮음 꼴 들을 발견한다. 한줄기의 가족 중 하나를 떠나보내는 것도 줄이 줄을 잇게 함 이라는 시인의 생각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또한 어떤 시간의 줄. 이라는 깨달음 하나를 얻고 있다. 일상의 체험을 엉뚱한 상상력으로 빚어내는 시인의 시는 앞으로의 또 다른 신작을 기다리게 한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