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나라 망치는 필기 시험제도 - 일, 공부(工夫), 학문(學問)
[대구논단] 나라 망치는 필기 시험제도 - 일, 공부(工夫), 학문(學問)
  • 승인 2023.04.25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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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호 대구대학교 교수
누구나 아는 것처럼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공부(工夫)를 열심히 하는 국가이며, 또한 필기시험이 가장 많은 나라이다. 고등학교까지는 힘써 배우는 것, 즉 신체적으로나 지식의 측면에서 공부(工夫)를 열심히 하는 것이 타당할지 모른다. 이 기간의 공부가 평생의 삶을 좌우하며 사회생활에 필요한 신체적, 정신적 기초를 마련해야 하므로 고등학교까지는 의무적으로 공부를 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면 수학능력시험 한번 잘 치면 소위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밝은 미래가 기다린다. 사법고시나 행정고시 등 공무원 시험을 통과하면 그야말로 사회의 기득권층으로 올라서고 안락한 삶이 보장된다. 더구나 이 모든 시험은 대체로 하루에 시행되며, 이 하루를 위해 인생을 걸어야 하고, 그 어떤 시험에도 단계별로 올라가는 사다리는 없다. 다 같은 공무원 시험이고 학력도 비슷하고 통과하기 무척 어렵지만, 시험의 종류에 따라 인생 자체가 달라진다. 수능시험을 잘 치면 좋은 대학이 보장되고, 공무원 시험도 9급부터 4급 혹은 3급(검사, 판사)까지 인생을 좌우한다. 시험의 원래 목적은 일정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수단인데, 우리나라 시험제도는 끌어 내리기 위한 시험이다. 그래서 수준을 높게 잡고 그사이 사다리는 없고 전 과목에 대해 한 번에 합격선을 넘어야 한다. 힘써 배우지만 시험 한번 잘 치면 인생이 열리고 잘못 치면 인생이 고달픈 너무나 위험부담이 큰 나라이며, 인생 자체가 그야말로 시험 도박장이 되어 버렸다.

사회는 이미 제4차 산업혁명을 넘어 제5차 정신혁명으로 변해가고 있는데 시험제도는 아직 농경사회의 과거시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만약 시험제도가 자신이 준비된 것부터 한두 과목씩 단계별로 실시하면, 사다리를 타고 높은 곳까지 도달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시험제도는 높이뛰기선수처럼 중간에 사다리는 없고, 단번에 모든 과목의 높은 벽을 넘어야 한다. 그래서 시험의 턱을 넘기가 매우 어렵지만 일단 넘기만 하면 멋진 세상이 펼쳐져 이들이 사회의 지도층으로 변해가지만, 단번에 넘지 못하면 패배의 쓰라림을 맛보며 고단한 삶을 살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일과 공부(工夫), 학문(學問)의 차이점을 잘 모른다는 점이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하며, OECD 국가 중에서 평균 노동시간이 가장 긴 나라가 대한민국인데 그것도 모자라 정부가 나서서 주 69시간이 가능하도록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구나 대학에서는 공부(工夫) 대신 묻는 것을 배우는 학문(學問)을 해야 하는데 대학 1학년 때부터 각종 취직시험 공부(工夫)에 매달리고 있고 학문을 하는 대학은 거의 없고, 시험공부에 매달리는 이른바 고등학교 4, 5, 6, 7학년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제 단순 반복적인 육체노동은 로봇(Robot)이 대신하고, 복잡하고 어렵고 반복적인 일은 생성형 인공지능 챗GPT가 대신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따라서 이제 사람들의 노동시간은 줄이고, 인공지능이 하기 어려운 창의적인 일을 하거나, 아니면 인공지능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제공하는 보조 노동에 집중해야 함에도 이와 같은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교육정책을 포함한 사회정책이 거꾸로 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일과 공부(工夫)는 줄이고 상대적으로 모르는 것을 끊임없이 묻은 것을 배우는 학문(學問)에 집중해야 한 한다.

이와 같은 문제점은 취업 시장에 그대로 반영되어 수요과 공급이 잘 맞지 않고 있다. 인공지능 관련 창의적인 인재는 턱없이 부족하고, 일손이 부족한 농업이나 중소기업에는 외국인 노동자로 채워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교육도 사회구조가 피라미드형인 산업사회에 맞추어져 있지만, 취업 시장은 최초생산자와 최종소비자 그리고 가운데 플랫폼 기업으로 목욕탕에 있는 모래시계(sand glass) 구조로 바뀌고 있어 노동시장의 수요와 공급의 부조화가 심화하고 있다.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지만 이미 챗GPT가 다 할 수 있는 지식을 머릿속으로 옮기는 것에 밤낮으로 시간을 쓰는 젊은이를 보면 너무나 안타깝고 답답하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창의적인 인재가 더욱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노인들은 이미 창의적인 인재로 발전하기 어렵고, 젊은이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어 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가 소멸할 지경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도 젊은이들은 챗GPT와 결합하여 학문(學問)은 열심히 하지 않고, 인공지능으로 점차 대체되고 있는 의사, 변호사, 공무원 시험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어 세계에서 가장 공부를 열심히 하지만 학문(學問)을 거의 하지 않아 세계 선도국가로 발전하기는커녕 창의성이 부족하여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정부를 포함한 모든 국민이 깊이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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