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강 르네상스 시원을 찾아서] 원숭이·학도 친구…뱃노래 한 가락에 근심 사라져
[금호강 르네상스 시원을 찾아서] 원숭이·학도 친구…뱃노래 한 가락에 근심 사라져
  • 김종현
  • 승인 2023.04.25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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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거대한 금호 거문고 속에서 선유(船遊)를
1601년 금호강 인근 선비 23인 참여
달성 다사 선사서 뱃놀이 기록 시문화
정선의 진경산수화법으로 세밀히 그려
선비들 한 자리 모여 시문 따라 시 지어
1833년 조형규 화백 금호선사선유도
달성서씨 문중서 간직하다 책자 발간
지역 향교·서원·농협 등서 복사본 전시
금호강 서쪽에 와룡산·마천산 등 절경
금호거문고
달구벌 선비들의 풍류를 담은 금호 거문고. 그림 이대영

◇선유시회기획(船遊詩會企劃)은 선산(善山)에 살았던 여헌(旅軒) 장현광의 작품

금호강의 풍류를 뱃놀이로 즐겼던 영남 선비의 멋을 시문과 진경산수화 한 폭에 그렸던 금호선사선유도(琴湖仙査船遊圖)를 소개하면, 임진왜란도 3년이나 지난 1601(辛丑)년 3월 21일 인근 선비 23인이 금호강물에다가 전화에 찌들린 마음을 씻고자(琴湖風流, 洗戰殃心) 오늘날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 선사(신라고찰)에서 뱃놀이를 기록한 시문화(詩文畵)이다. 여기서 금호란 당시 하빈현의 별호였고, 선사사는 고운 최치원이 머물렀다는 전설이 있는 신라고찰이었다. 그들은 유서 깊은 그곳에서 출발했다. 그들이 지났던 세연지(洗硯池), 무릉교(武陵橋), 난가대(爛伽臺), 마천산(馬川山), 부강정(浮江亭) 등의 옛 풍광을 정선(鄭敾, 1676~ 1759)의 진경산수화법(眞景山水畵法)으로 세밀하게 그려 넣었다.

이런 선유시회기획은 선산(善山)에 살았던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1554~ 1637) 선비가 낙제(樂齋) 서사원(徐思遠, 1550~ 1615) 선생을 찾아가 제안한 것이다. 이렇게 방문한 사연은 서낙재와 임하(林下) 정사철(鄭思哲)이 임란 당시 의병창의로 영남유림의 양거목이었기 때문이다. 그림의 우측에 위에서 아래로 ‘황명만력이십구년신축모춘지념삼일달성금호선유록(皇名萬曆二十九年辛丑暮春之念三日達城琴湖船遊錄)’이란 제목을 썼는데 ‘황명만력’이란 중국 명나라 신종의 연호, 황명만력 29년은 선조 34년에 해당했다. 모춘지념삼일은 오늘날 용어로는 3월 23일이다. 이런 일상적인 시화문 하나에서도 ‘대명사대(大明事大)’가 조선 선비답게도 참으로 깍듯했다.

좀 더 시문을 살펴보면, 송나라 주자의 ‘무이어정(武夷漁艇)’ 구절 즉 “나갈 땐 무거운 안개를 오래 실었는데. 들어올 때는 가볍게도 조각달만 싣고 왔네. 수천 개의 바위도 원숭이도 그리고 학마저 친구이고 보니. 뱃노래 한 가락에 근심마저 사라졌다네(出載長烟重, 歸裝片月輕, 千巖猿鶴友, 愁絶棹歌聲).”를 적어놓고, 시문 20운자에 따라 시를 지어갔다. 참여했던 23인의 선비 가운데 마지막까지 7인(선유도에선 8인)이 빠져있다. 아래쪽엔 여대로(呂大老, 1552~ 1619)의 서문(序文), 서사원(徐思遠)의 배경기술이 있다. “1601년 음력 3월 23일, 가랑비 뒤 갬. 봄날 신라고찰 선사사 앞 금호 섶 서낙재, 장여헌, 여감호 정자들을 지나... 23인이 모두 모여, 배엔 문방사우와 술통을 가득히 싣고, 금호강변 풍광을 감상하다. 시풍월과 풍류를 만끽했다. 1박2일 동안 23명 가운데 20명은 부강정(浮江亭)에서 풍찬노숙(風餐露宿)했다. 3명은 인근 이 진사 댁에 신세를 졌다.”로 요약했다.

참여했던 선비들이 시문운자를 뽑았는데, 장유유서의 원칙에 따라 서사원은 ‘날 출(出)자’, 여대로는 ‘실을 재(載)자’, 장현광은 ‘긴 장(長)자’, 이천배는 ‘연기 연(烟)자’를 운자로 받았다. 이분들의 시는 많이 인용하고 있어서 여기서는 도성유(都聖兪)와 도여유(都汝兪) 선생을 언급하고자 한다. 도성유는 ‘원숭이 원(猿)자’, 도여유는 ‘벗 우(友)자’를 뽑았다. 성유 선비는 “해는 져가는데 잡은 고기 없어 배가 가벼우니 노 젓기는 빨라지네...바위 위의 꽃들은 붉은 비단을 둘러 친 듯하다네. 강둑의 버들 나무들은 청록색 도포라도 일제히 입은 듯이 짙푸르구먼. 한가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백구들이 우릴 희롱하는 듯하다네. 마음만은 외로워서 구름을 바쁘게 쫓아가는 꼴이라네.”

도여유는 일필휘지로 “햇살이고 봄바람도 늦봄에 제격이네. 동남쪽에서 해어졌던 벗을 만남이구먼. 작은 조각배라 몸 하나가 가득히 실리니. 강 건너 바위 섶 버들에 말을 매어놓았네.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술이) 한 동이나 밑바닥이 드러났네.”

한편 1833(순조33)년에 조형규(趙衡逵)라는 화백은 금호선사선유시회라는 기록을 기반으로 ‘금호선사선유도(琴湖仙査船遊圖)’라는 그림을 그렸다. 왼쪽 여백에 “계사(1833)년 2월 어느 날 후생 난파 조형규(趙衡逵)는 삼가 손을 씻고 그림을 그립니다.”라고 마음가짐을 밝혔다. 이 그림을 달성서씨 문중에서 간직해오고 있었는데 1933년 구암서원에서 그림과 해설을 곁들인 책자를 발간함으로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특히 지역의 향교, 서원, 농협 등 여러 곳에 복사본이 소장 혹은 전시되었다.

오늘날 산수회화기법과 판이한 진경산수화법(眞景山水畵法)이다. 자세히 보면, 선사사를 품고 있는 산은 금호강 섶에 풀을 뜯고 있는 형상인 마천산(馬川山)이다. 우측에 보이는 마을이 이천(伊川) 동네다. 옛길에 당나귀를 타고 가는 선비가 그려져 있어 그가 마치 신선처럼 보인다. 선유의 뱃길은 부강정을 향해 나가는 모습이다. 아름다운 선사 난가대(爛枷臺)도 정겹게 묘사되어 있다. 금호강 서쪽 와룡산, 마천산, 궁산 등의 절경은 마치 동양화 절경을 둘러 친 병풍과 같아서 서금호 병풍(西琴湖屛) 혹은 서호병(西湖屛)이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달구벌 선비들의 요산요수풍류(樂山樂水風流)

한편 서재(鋤齋)에 살았던 서호(西湖) 도석규(都錫珪, 1773 ~ 1837) 선비께서는 ‘서호병십곡(西湖屛十曲)’을 읊었다. 서호병십곡을 보면 제1곡 부강정(浮江停), 제2곡 이락서당(伊洛書堂, 달서구), 제3곡 선사, 제4곡 이강서원(伊江書院), 제5곡 가지암(可止巖), 제6곡 동산(東山), 제7곡 와룡산(臥龍山), 제8곡 은행정(銀杏亭), 제9곡 관어대(觀魚臺, 북구 금호동) 그리고 제10곡 사수빈(泗水濱, 사수동과 하빈)이다. 오늘날 행정구역으로 다사지역은 7곳이나 속한다. 우리나라 서호10경은 몰라도 중국 항주 ‘서호십경(西湖十景)’을 모른다면 조선선비가 아니었다. 항주의 서호십경은 : 1) 소제춘효(蘇堤春曉), 2) 곡원풍하(曲院風荷), 3) 평호추월(平湖秋月), 4) 단교잔설(斷橋殘雪), 5) 유랑문앵(柳浪聞鶯), 6) 화항관어(花港觀魚), 7) 뇌봉석조(雷峰夕照), 8) 쌍봉삽운(雙峰揷雲), 9) 남병만종(南屛晩鐘), 10) 삼담인월(三潭印月)이다. 할아버지 휘자는 몰라도 중국 상황오제 족보에는 막힘이 전혀 없는 사대유생(事大儒生)이었기 때문이다.

영남유림이라면 요산요수풍류 가운데 도산구곡(陶山九曲)을 빼놓을 수 없다. 도산구곡의 명칭이라도 알아보면, 1) 운암(雲巖), 2) 월천(月川), 3) 별담(鱉潭), 4) 분천(汾川), 5) 탁영(濯纓), 6) 천사(川沙), 7) 단사(丹沙), 8) 고산(孤山), 9) 청량(淸凉)이다.

이 가운데 선유로는 운암곡 풍월담(風月潭)과 1728(영조4)년 순흥부사 신필하(申弼夏)가 ‘갓끈을 씻은 못(濯纓潭)’이라고 칭한 이후에 탁영담(濯纓潭)이 되었다는 그곳도 선유로 유명하다.

그러나 달구벌 선비들은 도산구곡만을 노래하지 않았고, 한강 정구 선생의 제자라면 대자연의 거문고 금호강을 중심으로 요산요수를 노래했다. 바로 거연칠곡(居然七曲, 嘉昌新川 寒泉~ 東山, 3.8km), 낙강탁가경차무이구곡(洛江棹歌敬次武夷九曲,洛江邊 浮來~ 商山, 13.2km), 농연구곡(聾淵九曲, 琴湖邊 白石~ 龍門, 2.2km), 문암구곡(門巖九曲, 公山댐 4.4km), 서호병구곡(西湖屛九曲, 琴湖邊 浮江亭~泗洙濱, 10.3km), 수남구곡(守南九曲, 嘉昌川 寒泉~白鹿, 11.5km), 와룡산구곡(臥龍山九曲, 琴湖邊 泗水~ 晴川, 5.8km) 등이 있다. 농연구곡은 옻골(오늘날 동구 둔산동)에 사셨던 최동집(1586~1664) 선비가 금호강변을 노래한 것이다. 운림구곡(雲林九曲)과 와룡산구곡(臥龍山九曲)은 한강 선생의 강학처였던 사양정사(泗陽精舍, 오늘날 사수동)를 감싸고 있는 산수를 읊은 것이다.
 

 
글 = 권택성 코리아미래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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