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내로남불’ 이 난무하는 정치
[데스크 칼럼] ‘내로남불’ 이 난무하는 정치
  • 승인 2023.04.25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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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오 사회부장
‘내로남불’. 워낙 많이 쓰는 말이기에 사자성어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필자도 ‘내로남불’이 사자성어라고 착각을 했다. 정치권에서도 ‘내로남불’이라는 단어를 사자성어 처럼 사용하고 있다. ‘내로남불’에서 한자는 불(不) 한 글자 뿐이다. 실제 이와 비슷한 사자성어는 ‘나는 옳고 남은 틀렸다’의 뜻의 ‘아시타비(我是他比)’가 있다. ‘아시타비’는 같은 사안도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내로남불’의 뜻을 한자로 번역해 새로 만든 신조어다. 교수신문이 2020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아시타비(我是他非)’를 선정했다. 원전(原典)이 없는 신조어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된 것은 이 때가 처음이다.

‘내로남불’이란 단어는 1990년대 초 ‘남이 하면 스캔들,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의미로 주로 정치권에서 자주 사용됐다. 이런 형태는 1990년대 중·후반 상대편 언행을 비판하는 의미로 ‘내가 하면 예술, 남이 하면 외설’, ‘내가 하면 오락, 남이 하면 도박’ 등의 패러디로 등장했다.

정치권에서 다양한 형태로 쓰이던 ‘내로남불’을 공식 석상에서 처음 사용한 인물은 신한국당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다. 1996년 대한민국 15대 총선 직후 여소야대가 된 정국 당시 신한국당이 무소속 의원 등 11명을 영입하자, 야당인 새정치국민회의에서 신한국당의 ‘의원 빼가기’를 비판했다. 이에 박 전 의장은 “야당의 주장은 내가 바람을 피우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부동산을 하면 투자, 남이 사면 투기라는 식”이라 반박했다. 박 전 의장은 “내가 창작한 말”이라고 했다. 이 발언 이후 ‘내로남불’은 사자성어처럼 사용됐다.

2015년 7월 ‘내로남불’은 공식석상에서 사자성어로 처음 등장한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던 전병헌 전 의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국회 내 여야 갈등의 원인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박 전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을 두고) 누리꾼들이 ‘내로남불’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유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들어 그 어느 때보다도 정치권에서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민주당의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사건 때문이다. 김민석 정책위 의장 등 야권 일각에서 송영길 전 대표를 감싸는 분위기가 제기되자 민주당 게시판에는 “586은 내로남불에 가장 취약한 민주당의 시한폭탄”, 이라는 비판과 함께, “당을 떠나라”는 글들이 쏟아졌다. 586 정치인들의 도덕적 불감증이 한계를 넘어섰다는 비판과 함께 586 퇴장론도 다시 점화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은 25일 페이스북을 통해 “내로남불로 지금의 늪에 빠진 민주당”이라며 “제발 내로남불하지 맙시다”라고 호소했다. 송 전 대표는 2021년 6월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은 민주당 의원 12명에게 선당후사(先黨後私)를 강조하며 탈당 권고를 했던 사실도 회자되고 있다. 송 전 대표는 당시 라디오 인터뷰에서 “공천을 탈락시킨 것도, 국회의원직을 박탈한 것도 아니다”며 “절차적 하자도 있고 과도한 것도 안다. 하지만 우리 당에 내로남불 프레임이 씌어져 있고, 사건을 자체 처리하는 것에 대해 불신도 크다”며 동료 의원들의 자진 탈당을 촉구한바 있다. 송 전 대표가 던진 말이 2년도 안 돼 부메랑처럼 그에게 돌아오고 있다.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이 더불어민주당을 덮치면서 의혹의 중심에 선 송영길 전 대표도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한때 ‘86세대 선두주자’로 꼽혔고, 야권의 차기 잠룡군에도 속한 그가 폭풍우를 만나면서 정치적 미래에 암운이 드리운 상황이다.

여권에서도 ‘내로남불’이란 용어가 쏟아지고 있다. 지난 4월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다음 달 개봉하는 자신의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5년간 이룬 성취가 순식간에 무너져 허망하다”고 발언한 데 대해 국민의힘 유상범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가장 허망한 생각이 드는 건 바로 국민”이라며 “지난 5년은 불공정과 ‘내로남불’로 점철돼있다”고 말했다. 이철규 국민의힘 사무총장도 윤석열 대통령의 외신 인터뷰에서 비롯된 ‘외교참사’ 논란을 반박했다. 이 사무총장은 지난 24일 “국제사회 중추 국가의 대통령이 (외교 현안에) 말 한 마디 못 하나”라고 반문한 뒤 “(야권의 비판은) 문재인 정부는 괜찮고 우리 정부는 아니라는 ‘내로남불’”이라고 비판했다. 사자성어처럼 쓰이는 ‘내로남불’이 결코 바람직한 의미는 아니다. 여·야 할 것없이 입장에 따라 ‘말 바꾸기’가 성행한다. 더 이상 말바꾸기가 용납되지 않는 책임있는 정치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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