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록 작가 개인전…갤러리 CNK 내달 20일까지
장재록 작가 개인전…갤러리 CNK 내달 20일까지
  • 황인옥
  • 승인 2023.04.26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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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한 풍경을 격자·픽셀로 ‘디지털 세상 풍경’ 구현
한지 가득 1㎝ 간격 격자 구축
가시적 풍경에 중묵·농묵 칠해
동·서양 장점 거부감 없이 수용
관객과 대화 위해 추상화 치환
그림은 생각 꼬리 풀어 주는 것
“무슨 그림일까” 질문 받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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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록 작가가 갤러리 CNK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앞에서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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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록 작 ‘Another Act’ 연작

동시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생존 행위와 직결된다. 사람들은 세상의 흐름을 알고 흡수하는 것을 경쟁력으로 믿고, 세상의 흐름에 순응한다. 장재록 작가의 예술은 동시대에 대한 시선으로부터 출발한다.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풍경’을 발견하고는 자신만의 조형세계로 구축한다. 그의 풍경은 가시적인 풍경과 사회적인 현상 모두를 아우른다. 척박한 사막에서 살아남은 식물을 현 시대의 환경 문제와 결부시키거나 채집한 게임 속 가상의 풍경을 스케치하며 가상 세계를 일상으로 소비하거나 시대의 흐름에 순응하는 동시대 사람들의 트렌드를 반영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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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록 작 ‘Another Act’ 연작 갤러리 CNK 제공

갤러리 CNK에서 진행 중인 그의 개인전 제목인 ‘순응(Adaptaion)’은 시대의 변화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에 주목하고 그런 현상을 하나의 풍경으로 바라본 결과다. 그의 풍경은 그리드(격자)로 표현된다. 한지 가득 1㎝ 간격의 격자(그리드)를 구축하고, 그 위에 풍경을 스케치한다. 작가가 고안한 알고리즘에 따라 격자 속 풍경의 일부는 먹과 아크릴을 섞은 중묵이나 농묵으로 명료한 검은색으로 칠해진다. 말하자면 스케치한 풍경의 일부를 지워내는 행위다. 이로써 애초에 그가 스케치한 가시적인 풍경은 격자무늬와 검은 도포와의 유기적인 관계맺음으로 비가시적인 풍경으로 치환된다.

10여년째 고집스럽게 고수하고 있는 격자에는 나름의 사연이 스며있다. 어린시절 그는 부친이 그린 설계 도면에 그림을 그리거나 낙서를 하며 자랐다. 그 기억이 도화선이 됐다. 박사과정 중에 정체성에 부합하는 작업을 고민하다 어린시절 무시로 경험했던 부친의 설계도면 속 격자가 소환된 것. 격자는 그에게 명확한 경계를 가진 틀이 주는 안정감과 연결됐다.

“격자는 어린 시절부터 제게 너무나 익숙한 표현이었어요.”

그의 대학 전공은 한국화다. 졸업 후 작업을 본격화하며 가슴으로부터 차오르는 장르 확장에 대한 열망을 느꼈고, 미술이라는 큰 틀에서 자유를 추구해갔다. 하지만 원칙은 있었다. 한지와 먹이라는 전통 한국화의 골격은 변함없이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 또한 서예를 했던 모친의 영향과 무관치 않다. 한지와 먹이 물성인 서예가 그의 감각에는 너무 익숙한 재료였다. 먹과 아크릴 물감과 미디엄을 섞은 농묵을 사용해 한지에서 번지는 효과를 차단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강한 농담으로 표현했던 서예의 표현법과 맞닿았다.

전통 한국화를 계승했지만 화면의 형식은 지극히 현대적이며, 내용 또한 자유롭다. 격자나 픽셀이 화면 구성의 근간으로 설정되고, 동서양의 장점들은 거부감 없이 수용했다. 이런 태도의 이면에 경계 허물기를 향한 그의 열망이 자리한다. 그의 경계 허물기는 중의적으로 진행된다. 한지와 먹에 아크릴 물감과 미디엄을 섞고,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를 넘나들며, 아날로그의 격자와 디지털의 픽셀을 동시에 충족시킨다.

정 작가는 격자이자 픽셀로 구현된 자신의 풍경을 “지금 이 시대의 풍경”이라고 설명했다. “정선의 ‘인왕제색도’가 그 시대의 자연스러운 진경산수화였다면 저 역시 현대판 풍경을 그리려 했어요.” 기법이나 정신은 전통 한국화를 계승하지만 픽셀을 통해 디지털 세상의 풍경을 은유하며 현대인의 미적 감수성에 한 발 다가가고 있다는 의미였다.

현실 풍경과 가상의 풍경은 가상풍경이 워낙 정교해 언뜻 구분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출발이 엄연히 다르다는 점에서 동일선상에 놓을 수 없는 대상들이다. 흡사 인간과 인조인간의 차이와 같다. 하지만 격자와 검정묵으로 칠하며 풍경을 지워내는 방식에 의해 두 풍경은 유사성으로 묶인다. 구상에서 출발해 추상성을 획득하는 방식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추상에 대한 그의 견해는 명징했다.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는 형상이 자칫 지시적으로 흐를 수 있고, 그것은 또 다른 폭력성을 띤다는 것”이다. 그는 감상자의 자율적인 감상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 작가의 역량이라고 믿는다. 감상자와의 대화를 원활하게 이끄는 추상으로 치환은 그에게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제가 어떤 것을 명확하게 제시했을 때 좋은 사람한테는 진짜 좋지만 힘든 사람에게는 너무 힘들게 다가올 수 있어요. 그럴 경우 대화가 단절되죠. 추상은 지시적이지 않아서 훨씬 더 자유로운 해석을 열어두게 됩니다. 그것이 감상자로 하여금 활발한 대화를 이끌어 내게 되죠.”

검게 칠한 격자의 지면이 넓어질수록 추상성은 더 짙어진다. 풍경이 더 많이 지워지는 것인데, 이에 대해 그가 “풍경이 적당히 가려지면 그것이 풍경인지 잘 모르다가 내가 어떤 풍경이라고 얘기하면 그때부터 풍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정보를 주지 않음으로써 대화를 시도하고 싶다”고 말했다. 풍경을 검게 칠하며 해석의 여지를 넓힌다는 것은 곧 사유의 공간에 한 층 더 다가감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그의 그림에 대한 철학이 묻어있다. 그는 그림의 기능을 “사람들이 생각의 꼬리를 풀어주는 것”으로 인식했다. “제 욕망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추상화를 통해 은유적으로 드러내며 사유의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바래요. 그것이 곧 관객과의 대화를 여는 방법이죠.”

디지털의 속성으로 새롭게 구현한 그의 새로운 수묵화는 의식과 무의식의 교차로 증식된다. 풍경을 수집하고 구성하는 것은 의식의 영역으로 두고, 픽셀을 채우는 작업은 무의식에 맡기며 중의적인 공간으로 자리매김해 간다. 비록 결과는 비가시적인 풍경이지만 무의식의 개입으로 재미와 해석의 여지는 더 넓어진다.

“의식적인 행위와 무의식적인 픽셀 사이에 중립적인 그리드의 세계가 생깁니다. 공존의 공간이 극적으로 표현되는 것이죠.”

이번 전시에는 3가지 화풍이 소개된다. 먼저 1층에는 현실풍경을, 2층에는 디지털에서 수집한 게임 속 가상의 풍경을 격자에 표현한 작품이 걸렸다. 가상 속 풍경은 코로나 19로 작업 활동이 제한을 받으면서 인터넷 환경에 더 많이 기대게 되면서 찾은 소재다.

“코로나 19 이전엔 풍경 수집을 위해 여러 나라를 다녔는데, 팬데믹 이후 외국에 못 나가게 되면서 구글에서 이미지를 많이 찾게 됐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제가 찾은 상당 부분의 이미지들이 게임 속 디지털 풍경이었고, 가상의 이미지가 현실 이미지와 맞닿아 있었어요.”

3층에는 격자 풍경 이전 작업인 자동차나 도심 풍경을 그린 극사실적인 작품이 존재감을 뽐낸다. 고급 자동차나 도심의 화려한 빌딩숲 등 현대인의 욕망을 대변하는 대상들을 그린 작품이다. 그는 이 시리즈에서 욕망으로 점철된 현대인의 초상을 자동차나 빌딩에 비유했다. 이 시리즈에도 강렬하진 않지만 격자가 적은 지분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3층의 극사실적인 작품들은 개념적이나 형식적에서 초기작입니다.” 자동차나 도시 풍경을 그린 작업은 이후 추상화된 자연 풍경으로 태세 전환이 진행됐다. 여기에도 물질적인 풍요 이후에 자연 회귀를 꿈꾸는 우리 시대의 흐름이 반영되어 있다.

추상이 가미된 그의 풍경은 감정을 고조시키고 상상력에 한껏 물을 올린다. 백조의 우아함이 치밀한 물 속 발길질의 결과이듯 격정적인 그의 화면 역시 다분히 시스템적이고 계획적으로 구축된 결과다. 한국화의 찰나적인 기운생동과 일필휘지와는 분명 다른 결말인데, 그가 뉴욕과 독일에서의 경험을 떠올렸다.

“한국화의 일필휘지를 아무리 설명해도 서양인들은 이해하지 못했어요. DNA가 달랐어요. 그들과 더 흥미롭게 소통하기 위해선 더 계획적이고 이성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현대성에 맞춘 거죠.”

우리시대의 현실이나 가상의 가시적인 풍경을 픽셀을 통해 비가시적으로 가림으로써 감상자로 하여금 “이게 무슨 그림일까?”라는 대화를 이끌어 내고 싶은 장재록. 사유와 대화를 이끄는 공간을 추구하는 그의 전시는 갤러리 CNK에서 5월 20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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