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도쿄여행 단상
[문화칼럼] 도쿄여행 단상
  • 승인 2023.04.26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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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칼럼니스트
오 년 만에 도쿄를 찾았다. 열흘간의 제법 긴 여정이라 준비를 잘 해야 했다. 기간 중 며칠정도는 일본문화를 깊이 있게 설명해 줄 수 있는 가이드를 찾았으나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직접 공부하며 여행 계획을 짜려고 하니 쉽지가 않았다.

지난번은 딸이 이끄는 대로 생각 없이 따라 다닌 탓에 한번 와 봤음에도 불구하고 동서남북도 몰라 너무 답답했다.

결국 가이드북을 시작으로 책을 9권이나 구해 읽으며, 궁여지책으로 스케치 북에 도쿄 시내 주요 철도 노선을 그리고, 내가 가고자 하는 곳들을 하나씩 찍어나가니 전체 그림이 그려졌고 효과적 동선 짜기가 수월했다. 머릿속에 입력된 그림을 바탕으로 현지에서는 구글 지도의 도움을 받으니 꽤 효과적이고 알찬 여행이 이루어진다.

일정 중 하루는 우에노 공원에 자리 잡은 도쿄문화회관을 찾아 도쿄도교향악단의 음악회를 감상했다. 전반부는 영국작곡가 ‘마크 앤서니 터니지’의 ‘Time Flies’라는 곡과 폴란드 작곡가 ‘비톨트 루토스와프스키’의 첼로 협주곡이 연주되었다. ‘카츠시 오노’라는 일본인 지휘자의 확실한 음악해석과 장악력 그리고 그의 요구에 분명하게 반응하며 정확한 소리를 낼 줄 아는 단원들. 현대음악을 이렇게 재미있게 감상하기는 처음이었다. 후반부의 15번이나 템포가 바뀌는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역시 멋진 연주였다.

한마디로 기본기가 매우 탄탄한 오케스트라에 의한 깔끔한 음악회였다. 하지만 관객들의 반응이 좀 의외였다. 후반부 연주가 끝나자마자 동시에 일어나 퇴장하는 관객이 꽤 많았다. 이런 반응이 나올 정도의 음악회가 아닌데? 라는 생각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7시 시작하여 9시 종료라고 안내되었으나 5분정도 지나서 끝났으니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인가?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지다가 약속된 시간이 되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등을 돌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면 너무 비약인가?

나는 이번 도쿄 체류 기간 동안 몇몇 이름난 공원을 찾게 되었는데 그 정갈한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과 함께, 한편은 적응되지 않는 점도 있었다. 우리는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과 공원 사이에 대체로 약간의 여백이 있다. 즉 뭔가 이제 공원이 있다는 전조 현상(?) 같다고나 할까 그런 완충지대(덜 다듬어진 공간) 같은 것이 있는데 도쿄의 공원 중 내가 가본 곳들은, 고층빌딩이나 주택가에서 한 뼘만 벗어나면 바로 공원이다. 공원 내부는 물론이고 그 주변도 철저히 다듬어지고 건물들이 꽉꽉 들어차 있어서 공원이 저 멀리 보이는 것이 아니라 길 모퉁이를 돌면 불현 듯 나타난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도심의 빌딩가도 흡사 연필통에 필기구를 빼곡하게 꽂은듯하다. 한 뼘의 허술한 공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그 빈틈없음에 감탄과 함께 갑갑한 느낌도 드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이번 여행 중 명품거리이자 세계적 건축가들의 각축장 같기도 한 ‘오모테산도’와 ‘아오야마’도 둘러보았다. 과연 우리 관광객이 많이 오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들리는 주위 사람들의 말소리 중 한국말이 절반은 넘는 것 같았다. 최근 힙하다는 서울 성수동을 찾았다. 주말을 맞아 많은 젊은이들이 오갔다. 그리고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긴 줄이 서 있는 곳 중 상당수는 일본음식점이거나 일본 스타일의 아기자기한 것들이 가득한 편집샵 이었다.

우리 젊은이들은 일본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 같다. 기성 세대와는 달리 그들은 지금 이 순간의 행복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부단한 자기개발에도 열심이지만 오늘하루 만족한 삶을 추구하는 것에 진심이다. 소확행을 통하여 위로받고 거기서 생활의 기쁨을 얻는 시대 정서와 일본의 소위 ‘스몰재팬’이라고 부르는 문화와 합이 잘 맞아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한다.

흔히들 일본은 우리보다 몇 십 년 앞서 있다고 한다. 나는 이번에 얕게나마 일본을 공부해보니 이 말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게 되었다. 결론은 다르다는 것이다 그것도 많이. 그들에게는 분명히 우리가 존중하고 배워야 할 문화가 많다. 하지만 우리와는 결이 여러모로 다르다. 서로 가지고 있는 것이 다르고 살아가는 모습 역시 그렇다. 한마디로 표현 하자면 일본은 빈틈이 없는 것 같다. 이 말은 빠진 곳 없이 잘 채워 넣었다는 뜻과 동시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에서 운신의 폭이 매우 제한 적이라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상대적으로 굵은 선과 여유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남은 일정동안 대중교통과 하루 약 이 만보의 걸음으로 도쿄 구석구석을 찾아 볼 것이다. 도쿄의 어마어마한 건축물과 문화예술의 현장이 기다리고 있다. 내일은 와세다 대학에 있는 하루키 도서관과 도시재생을 통하여 새롭게 우뚝 선 ‘마루노우치’를 둘러보고 저녁에는 산토리홀 공연을 관람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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