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거꾸로 가고 싶은 버스
[좋은 시를 찾아서] 거꾸로 가고 싶은 버스
  • 승인 2023.05.01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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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만성 시인

해조차 등 구부려 버스를 기다리는 황혼역

며느리, 손주, 할머니의 이야기가

잘못 묶은 봉지 터지듯 구수한 입담이다

흔들리는 관절에도 굴러온 숙성된 버스는

손드는 사람 앞에 멈추어 설 때

덜컹거림 보이지 않는 다소곳이다

김 노인, 이 노인, 장 노인 차례로 오르면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넉넉한 사랑방이 되는 버스

젖은 타이어에도 구르는 달이 떠서

침묵조차 넉넉해질 때쯤이면

서로의 얼굴에는 검버섯 피는 속도로 환해지고

발목 소매 걷어 올린 노인의 지팡이 끝에서

도랑물 타고 온 여름이

달리는 풍경의 뒤를 밀고 있다

◇2004년 대구교육대학교 졸업.

‘형상시학회’회원.

<해설> 버스는 일반적으로 목적지를 두고 앞으로만 달린다. 버스는 문명이고 어쩌면 과거에서 떠나 현재를 거쳐 미래로 가는 하나의 바퀴달린 시간 덩어리일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것도 아직은 젊은 시인은 앞으로만 달리는 버스를 뒤로 돌려놓고 있다. 역행의 시간이다. 이는 다가오는 새로운 세계에는 장담할 수 없는 어떤 불안이 존재하고 있음을 예감한 것일까. 아무런 말도 서로 건네지 않는 현재라는 현실의 버스에서, 입담이 구수하던 지난날의 버스 풍경을 통해 노인의 얼굴에 검버섯도 환해지는 상상을 한다. 그런 버스를 지금 노인의 지팡이 끝에서 도랑물 타고 온, 여름이 밀고 있다는 너스레는, 이 젊은 시인이 일가를 이룰 시의 앞날조차 밝아보이게 한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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