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엉덩이를 흔들어 봐
[달구벌아침] 엉덩이를 흔들어 봐
  • 승인 2023.05.0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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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진입 금지 구역에선 초록 불이 켜져도 갈 수가 없다, 차는.

먼 길을 돌아 에둘러 간다. 이팝꽃 고봉으로 흐드러진 무태교를 지나 딸네 집으로 가는 길이다.

일주일에 한 번 가는 수업을 건너뛰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께.

“새벽 댓바람부터 엄마가 전화를 걸어왔어요. 꽃구경 가고 싶다고…. 공부야 평생 하는 것이고 언제든 다시 하면 되지만 엄만 달라요. 꽃 시절도 한 소절이듯 지금이 아니면 이팝꽃, 다신 볼 수 없을지도 몰라요.”

얼마 남지 않은 엄마의 생은 다음 생을 향해 비상등의 켜든 채, 질주하고 있다. 보고 싶다고 말하면 그것이 뭐든 간에 무조건 보여드리는 거로 미루지 않기로 했다. 보고 싶어도 못 볼 날이 곧 올 테니. 꽂은 피고 지고 다시 또 지고 피지만 엄마꽃은 한 번 지고 말면 그만인 일방통행이다.

뽕짝을 틀었다. 최대한 신나는 곡을 골라 볼륨을 한껏 높였다. 엉덩이가 흥에 겨워 절로 들썩거린다. 엄마는 창밖 풍경에 꽃시절을 묻고 있는 듯 말이 없다. 먼저 보낸 아버지를 떠올리고 있는 건 아닌지 나와는 눈을 맞추지 않는다.

“엄마, 풍경 그만 보고 나처럼 엉덩이를 흔들어 봐봐, 으으응.”

내내 침묵하던 엄마가 입을 열어 말길을 튼다.

“어려서부터 넌 그랬지. 길을 가다가 어떤 음악이라도 흘러나올라치면 실룩샐룩 엉덩이를 흔들 곤 했지. 리듬에 맞춰 멈춰 선 채 손뼉까지 치면서…. 다섯 남매를 키웠지만 너만이 유독 그랬지.”

흥이 많았던 맏딸이었다는 것이다. 그랬던 내가 그 많았던 흥, 모두 다 어디에다 감춰두고 엄마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 되었을까. 순간 헛헛함을 감추기 위해, 속울음이 들키기라도 할까 봐 더 큰 소리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아이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 가슴 시린 보릿 고갯길. 주린 배 잡고 물 한 바가지 배 채우시던 그 세월을 어찌 사셨소. 초근목피에 그 시절 바람결에 지워져 갈 때, 어머님 설움 잊고 살았던 한 많은 보릿고개여(중략)”

진성의 ‘보릿고개’를 무태교 아래로 흘려보내며 흐르는 강물처럼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흐르고 흘렀다.

강줄기를 따라 흐르던 이팝나무에서 꽃들이 일제히 뛰어내린다. 차도나 인도로 떨어진 꽃잎은 바퀴에 치이거나 뭉개져 형체도 없이 사라진다. 시선을 돌려본다. 같은 바닥이라 할지라도 고여 있지 않고 흐를 수 있는 강물과 대조된다.

‘꽃이 피거나 꽃이 지거나 나무는 항상 한가롭더라.’라던 말을 빌려 마음의 번잡함을 덜어낸다는 어느 작가의 말이 떠오르는 봄날이 가고 있다. 나무에서 뛰어내린 이팝나무 꽃들이 강줄기를 베고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며 구름 따라 흐른다. 세상 시름과 걱정, 모두 내려놓은 듯 바람이 이끄는 데로 강물이 흐르는 데로 온몸을 내어 맡긴 채, 유. 유. 자. 적.

사람의 성격이나 습관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면 나는, 목적지 없이 차를 타고 한 바퀴 휭 돌아다니거나 종영된 드라마나 영화를 즐겨본다. 예전 같으면 시간과 장소를 지키고 앉아 본방송을 고수하지만 이젠 연연하지 않는다. 넷플릭스나 웨이브를 바탕화면에 깔아놓았기 때문이다. 편한 마음으로 안정된 장소에서 얼마든 재방송을 입맛대로 골라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좋다.

얼마 전 새로 시작한 낭만닥터 시즌3의 ‘수술대에서 낭만을 찾아?’라는 소제목이 붙는 3회분에선 병원으로 실려 온 국가대표 스키선수 이야기가 펼쳐졌다. 꾀병이란 진단을 받은 선수를 향해 화가 난 감독이 걱정과 연민을 담아 그제야 한숨을 내려놓으며 퍼부었던 대사가 특히 감동으로 다가왔다.

“시합이 코앞인데 머하는 짓이고. 너 하나 때문에 아침 댓바람부터 생난리고. 금메달 하나 딴 게 머 큰 벼슬인 줄 아나. 착각하지 마! 매달은 네 인생의 아주 작은 점에 불과한 거야. 고작 그 작은 점 하나 찍어놓고 무슨 대단한 성공이라고 목에 힘 빡 주고 연습도 안 하고 꾀병을 부리쌌노. 너, 사람 몸에 그리 힘이 들어가면 어찌 되는 줄 알아. 쪼끔만 삐끗해도 크게 다치는 거야 알겠어. 사람 인생도 똑같아!”

그가 가리킨 두 개의 손가락이 나를 향한 듯 보였다. 딸내미 집 앞, 주차하고 시동의 끄려는 순간, 조수석에 앉아있던 엄마가 바통을 주고받듯 운전석에 앉은 내게로 바짝 다가와 앉으며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엄마가 다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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