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은 숨을 쉰다
손끝에 닿는 쌀은 숨을 쉰다
밥이 되어 입으로 삼켜진
뱃속의 쌀도 숨을 쉰다
한 숟갈 따뜻한 밥을 먹은 그대
햇빛과 하늬바람
무논의 개구리울음을 먹은 것이다
아니다, 저 들판의 생기와 숨결
늙은 농부의 어깨에 내린 저녁놀을 삼킨 것이다
쌀 한 톨에도 이렇게
자연과 사람의 숨소리가 묻어 있으니
너도, 나도 매일 밥상에서 숨을 마신다
숟가락 위에서 팔딱이는
우주의 깊고 푸른 가슴을 먹는다
◇이진엽= 1992년 시와시학 신인상(시)과 199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평론)로 등단. 시집 겨울 카프카, 그 강변의 발자국 등 다수. 평론집 존재의 놀라움. 금복문화상, 대구문협 올해의 작품상,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현 시마루 동인과 대구가톨릭문인회 회장으로 활동 중.
<해설> 쌀이 숨을 쉰다는 첫 행이 이미 이 시를 완성시켜 놓은 것이다, 쌀이 손끝을 타고 밥이 되어 뱃속으로 들어가서도 숨을 쉰다고 시인은 생각을 보탠다. 결국 시인의 눈에 비친 모든 사물들은 생명 있는 대상인 것이며, 모든 죽어있는 사물에 생명을 부여하는 것 또한 시인인 것이다. 쌀을 먹은 것은, 햇살과 하늬바람을 먹은 것이고, 무논개구리 울음도 먹은 것이라고 한다. 한층 더 시인은 직관을 끌고 가서, 저녁노을까지 삼켰다고 진술하고 있다. 밥상 위에서 마신 숨, 수저위에서 팔딱이는 우주의 푸른 가슴도 먹었다고 하니, 결국 쌀은 삼라만상의 응축된 산물인 것. 그런 쌀로 빚은, 쌀의 흔적을 말끔히 지운 술을 벌컥벌컥 마셔보면 발효를 거친 쌀의 숨은, 식은 핏줄 속 뜨거운 봇도랑으로 흐르기도 한다는.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