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아버지라는 이름
[특별기고] 아버지라는 이름
  • 승인 2023.05.07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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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하
변호사
아버지가 태어났을 때, 이미 집안은 기울대로 기울었고, 그 많던 재산도 탕진되어 남아 있는 것이라곤 선조들이 묻혀 있는 선산뿐이었다고 한다. 일찍 할아버지를 여윈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홀어머니를 부양해야 하는 가장 노릇을 해야만 했지만, 명망 높은 유림의 후손이라는 멍에가 역설적으로 아버지가 세상에 맞서서 집안의 이름을 지키도록 해 준 버팀목이 되었다고 한다.

돌아보면 아버지는 누구한테도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고, 자신이 손해를 보면서도 주어진 일을 묵묵하게 하셨던 분이었다. 평소 자식에게도 표나게 자정(慈情)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말씀이 많지도 않았다. 다만, 술을 지나치게 좋아하셨고, 술을 드신 날은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 나를 당황하게 했고, 가끔 흐트러진 아버지의 모습은 나를 힘들게 한 적도 있었다.

아버지가 왜 술을 그렇게 자주 드시는지,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시간이 흘러 내가 아버지라는 이름을 얻게 되고 난 뒤에야 당신이 오롯이 홀로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에 쓰러지지 않기 위해 술의 힘을 빌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 늦은 저녁이었다. 예의 술에 흥건히 취한 채 돌아오신 아버지가 나를 찾았다. 평소와는 달리 나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버지.

“오늘도 술 드셨네”

약간 날이 선 내 말에 아버지는 허허로운 웃음을 내뱉었다.

잠시 숨을 고른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야야, 나도 참 공부를 하고 싶었다. 나도 하면 공부를 잘 할 자신이 있었다. 나도 내 같은 아버지만 있었어도 너보다 공부를 더 했을거다.”

그리고 한참 동안 말이 없던 아버지가 지나가는 혼잣말처럼 했다.

“내가 첨으로 니한테 말하는거지만 아무도 모른다, 니는 내가 고등학교 나온 줄 알고 있지만 실은 국민학교만 다녔고, 그 후에 공민학교를 좀 다니다 말았다. 그래도 나는 잘 살아왔다.”

그 말을 끝으로 아버지는 돌아누운 채 더 말이 없었다. 그 후 아버지는 돌아가시는 날까지 다시는 같은 말을 하지 않았고, 나도 아버지에게 묻지 않았다.

그날 이후에도 아버지는 여전히 아들인 나를 어려워하셨고, 나도 아버지를 평소보다 더 살갑게 대하지도 않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도, 그런 아버지를 그냥 바라보는 것으로 아버지의 아픔을 이해하려고 했고, 가끔 귀가가 늦은 아버지를 찾아 술집을 헤맬 때도 부끄럽거나 창피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버지와 나는 서로의 거리를 좁혀가고 있었다

중소기업의 만년 과장으로 정년퇴직한 아버지는 개인사업을 시작하였지만, 소위 말하는 백도 자신을 돌봐줄 인맥도 없이 그저 정직하게 일만 했던 당신에게 세상은 더 버거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검사 아들을 하나 두고 싶다는 아버지의 말에 아들은 검사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아버지는 누구에게도 내 아들이 검사라고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술에 너무 취한 탓이었을까? 불과 집에서 몇 십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파출소를 집으로 착각해서 들어간 아버지는 신분을 확인하는 경찰관에게 자신의 아들이 검사라고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연락을 받고 찾아간 파출소의 나무 의자에서 누운 채 자고 있는 아버지를 봤을 때, 창피함보다는 그래도 아들의 근무처를 기억하고 있는 아버지에게서 위로를 받았다. 푸념처럼 내뱉던 아버지의 말을 기억하고, 국방부 상훈과를 통해 아버지에게 수여된 훈장을 찾아드린 것이 처음으로 아들 노릇을 한 것으로 기억된다.

6.25.전쟁 때 학도의용군으로 입대를 해서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던 아버지.

아버지가 가신 지도 벌써 9년이 지났다.

이듬해 엄마도 아버지 곁으로 가신 후,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겉이 닳아서 해진 인조가죽 지갑을 발견했다. 변호사 아들도 있고, 의사 아들도 있어서 지갑 하나 사지 못할 형편이 아닌 데도 천성이라고 생각했다. 호기심에 열어본 지갑 안에는 천 원 지폐 2장과 몇 번 접은 신문 조각이 들어 있었다. 아들의 사법시험 2차 합격자 명단이 실려 있는 신문 조각이었다.

처음 접힌 그대로 20년 넘게 아버지의 지갑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다시 접어 지갑에 넣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겉으로 무뚝뚝했지만 누구보다도 아들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했던 아버지다. 엄마는 싫어하겠지만 다음에는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빨간 두꺼비가 그려진 소주로 오랜만에 아버지와 대작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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