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는 길
학교 가는 길
  • 여인호
  • 승인 2023.05.0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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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서북쪽 차(cha) 마을의 아이들과 아버지들, 일흔이 넘은 할아버지가 학교 가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눈길과 얼음길입니다. 얼음이 녹은 곳은 물살이 거센 강물입니다. 얼음이 깨지는 곳에서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업고 걷습니다. 눈길에 넘어지기도 하고, 차디찬 얼음물에 허연 허벅지까지 잠기는 길을 걷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잠자리는 별이 총총한 야영입니다. 가장 좋은 잠자리는 차다의 곳곳에 숨어 있는 동굴입니다. 그렇게 영하 20도에서 30도를 오가는 맹추위와 싸우며 일주일을 걸어서 학교에 도착합니다. 다음 겨울방학이 되면 다시 집으로 오고 학교로 갑니다. 내레이션을 하는 김갑수의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학교 가는 길'이란 말에 공감이 갑니다.

2014년 4월 17일 목요일 KBS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 차다'의 내용입니다. 히말라야 산맥 사이를 흐르는 잔스카 강, 겨울에 얼어붙은 잔스카 강을 두고 차다(chaooer 얼음길, 얼음담요)라고 합니다. 히말라야 아이들의 학교 가는 길입니다. 학교가 없는 차(cha) 마을의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독지가의 후원을 받은 몇몇 아이들만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영호는 학교 일이 조금 힘들 때면 '학교 가는 길, 차다'의 영상을 봅니다. 아버지들의 위대한 여정에 코끝이 찡해지며 마음 어딘가가 짠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힘을 얻기도 합니다.

'학교 가는 길, 차다'의 영상을 보면서 영호의 학교 가는 길을 생각해 봅니다. 솔직히 대신초등학교 1, 2, 3학년 때는 학교를 어떻게 갔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1학년 때 선생님은 아주 무서웠고, 2학년 때 고영희 선생님은 천사 같았다는 기억만 뚜렷합니다. 이름만 겨우 쓰고 입학을 해서 글자를 깨우치는 데 아주 힘이 들었을 테지만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그저 지금도 보관하고 있는 통지표를 보며 반추해 볼 따름입니다. 6학년 때는 우리 동네 남자아이 일곱 명 모두가 같은 반이었습니다. 아침마다 동네 어귀에서 만나서 함께 비포장 길을 걷는 게 학교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런 길이 지금은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었고 수없이 많은 차들이 다니지만, 더 이상 학교 가는 길의 아이들을 볼 수는 없습니다.

아포중학교를 다닐 때는 주로 자전거를 타고 왕복 8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다녔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버스를 탔는데, 그날의 버스는 서울의 지하철보다 더 복잡했습니다. 버스 안내양의 "오라이~"라는 출발음이 아직도 귀에 선합니다. 시험이 끝난 직후나 방학을 앞두고 제법 여유를 부려도 좋은 날에는 자전거도 버스도 타지 않고 걸어서 학교를 가기도 했습니다. 어쩌다 지나가는 버스가 흙먼지를 날릴 때면 도로의 가장자리로 피하는 번거로움도 있었지만, 이내 사라지는 버스 꽁무니를 보고 손을 흔드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교대부초에 다니는 아이들은 학교 가는 길이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80퍼센트 정도의 아이들은 승용차나 승합차가 학교 가는 길의 교통수단입니다. 부모님의 승용차로 등교를 하는 아이들은 차 안에서 미처 먹지 못한 아침을 해결하기도 합니다. 왕복 40킬로미터가 넘는 곳에서 다니는 5학년 ○○○은 모자란 잠을 보충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학교 부근의 약속된 장소에서 하차한 아이들은 걸어서 교문을 들어섭니다. 최근에 교대부초 부근의 학교 가는 길인 도로와 인도는 잘 정비가 되어 쾌적합니다.

학교 가는 길과 학교 오는 길은 목적지가 같은 학교이지만 느낌이 다릅니다. '가다'는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장소를 이동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 가는 길은 집에서 학교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오다'는 어떤 사람이 말하는 사람 혹은 기준이 되는 사람이 있는 쪽으로 움직여 위치를 옮기는 것과 어떤 사람이 직업이나 학업 따위를 위하여 말하는 사람이 있는 쪽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 오는 길은 학교가 기준이 됩니다. 학교 가는 길이 학교와 집이 동등한 관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학교 가는 길, 차다'를 보면서 갑자기 궁금한 것이 생겼습니다. 영상에서 보는 아이들과 아버지들과 할아버지는 힘든 길이지만 학교라는 목적지와 공부라는 희망이 있어서 그런지 행복해 보였습니다. 방송이 된 지 10여 년이 지났습니다. 그때 10살 전후의 아이들이 지금은 어떻게 성장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차다' 대신에 새로운 길은 생긴 것은 아닌지도 기회가 되면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습니다.

'학교 가는 길, 차다'가 학교 가는 희망의 길이라는 것을 보면서 우리 교대부초 아이들의 학교가는 길이 늘 행복한 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의 학교 가는 길도 항상 행복한 길이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김영호 <대구교육대학교대구부설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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