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석의 통상이야기] 미국 ‘반도체·과학법(CHIPS Act)’의 영향과 대응 방안
[손수석의 통상이야기] 미국 ‘반도체·과학법(CHIPS Act)’의 영향과 대응 방안
  • 승인 2023.05.10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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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석 경일대학교 국제통상학전공 교수
미국은 자국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고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등의 목적을 위해 2022년 8월 9일 ‘반도체·과학법(The Chips and Science Act, 이하 칩스법)’을 공표했다. 이 법안의 핵심 내용을 보면 미국내 반도체 시설 건립 지원(390억 달러)과 첨단 반도체 R&D 지원(110억 달러) 등 반도체 산업에만 총 527억 달러(약 70조)를 지원한다. 그리고 미국에서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25% 세액공제(10년간 약 240억 달러)를 지원한다.

그러나 관련 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향후 10년간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되는 중국, 북한, 러시아, 이란 등 우려국에서 특정 첨단 반도체에 대한 새로운 용량을 확장·구축하는 것을 금지하는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을 두고 있다. 사실상 미국이 투자 보조금을 통해 글로벌 반도체 회사들이 반드시 중국과 미국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한다. 그래서 중국은 이 칩스법이 중국 반도체 산업 발전을 억제하려는 의도를 감추고 있으며 사실상 반도체 선전포고라고 본다. 이미 중국에 천문학적인 투자(약 68조 원)를 하여 메모리 반도체의 약 40%를 생산하는 공장을 가진 삼성과 SK하이닉스도 향후 대중국 추가 투자 기회가 억제되는 등 어느 정도 손실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월 28일 공개된 미국의 ‘반도체 보조금 지급기준’을 살펴보면 보조금 신청 절차가 매우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기업 기밀 유출 가능성이 매우 높다. 첫째, 보조금수혜 기업이 보조금 신청 당시 제출한 전망치보다 과도하게 높은 이익을 실현하면, 이익금을 보조금의 최대 75%까지 환수당하게 되어 투자의 경제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수익 심사과정에 기업의 기밀이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 둘째, 미국 국방부에 실험·생산시설 접근권 제공기업 우대에 따른 보조금 수혜 기업의 기술관련 기밀 유출 가능성이 크다. 셋째, 보조금 신청 기업에 ‘인력 육성 계획’과 공장직원 및 건설 현장 노동자를 위한 어린이집 설치 등 ‘보육 지원 계획’ 제출을 요구하고 있어 투자 기업에게 미국 내 인력 부족 해법을 전가하고 있다. 넷째, 보조금 신청 기업에 반도체 공급 과잉 해소 전략 제출과 주요 동맹국과 보조금 정책 투명성 개선 및 조정을 요구하고 있어 한국, 대만 등 주요 반도체 생산국 정부에 보조금 제한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미국이 지난 3월 21일 공개한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의 ‘세부 규정안’에 따르면, 미국 정부로부터 반도체 관련 투자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10년간 중국 등 우려 국가에서 ‘첨단 반도체’ 생산 능력을 5% 이상 늘릴 수 없으며, 10만 달러(약 1억 3천만 원) 이상의 거래도 불가능하다. ‘범용(구형) 반도체’는 10% 미만까지 생산 능력을 늘릴 수 있다. 이러한 설비확장 의무를 위반한 기업은 미국 정부에서 받은 인센티브 전액을 환급해야 한다.

다만 여기서 ‘5% 확장 기준’은 반도체 생산에 투입되는 웨이퍼(반도체 원판)의 양을 기준으로 하며, 기술 수준에는 별도 제한을 두지 않았다. 반도체 집적도가 높아질수록 웨이퍼 1장당 생산이 가능한 반도체 칩의 수가 늘어나게 된다. 따라서 중국에서 운영 중인 생산 설비의 유지 및 부분적 확장은 물론 계속 기술 업그레이드도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게다가 미국 정부가 최근 한국 반도체 제조사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내 공장에 대한 ‘장비 수출 규제 유예’를 내년 10월까지 1년 더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되면 두 회사는 최소 내년 하반기까지 중국에서 반도체 제품 생산에는 문제가 없게 된다.

문제는 초과 이익 환수, 군사용 반도체 우선 공급 등과 관련된 기밀 유출 및 경영 개입 우려가 있는 까다로운 ‘보조금 수혜 조건’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규모가 더 확대될 가능성도 크다. 그래서 미국의 보조금이 단기적으로는 분명 이익이 되겠지만, 경영 기밀 및 기술 유출 등이 현실화될 경우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보조금이 오히려 독이 될 가능성도 크다.

현재 삼성전자는 170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어 미국 정부의 보조금이 꼭 필요한 상황이다. SK하이닉스 역시 첨단 패키징 공장과 연구개발(R&D)센터 건설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미 금년 3월 31일부터 반도체 보조금 신청이 시작되었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미국 정부의 보조금 이행 요건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장·단기적 관점에서 판단하여 보조금 신청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국내 업체들이 이미 중국 공장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했고 중국 반도체 시장의 성장 잠재력도 큰 만큼 정부와 관련 기업은 미국과의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협상력을 발휘하여 최대한 실익을 얻어낼 필요가 있다. 물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국 내 공장에 대한 미국의 장비 수출 규제의 ‘다년간 유예’를 관철시킬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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