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적막
[좋은 시를 찾아서] 적막
  • 승인 2023.05.17 21:4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주영 시인

수성도서관 뒷길 모퉁이에 자그마한 좌판

깔아놓은 할머니

상추 대여섯 바구니, 풋고추 두어 됫박이 전부다

오가는 사람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한나절

난전 차려놓고 꼬박꼬박 졸고 있는 할머니 앞으로

난데없이 스타렉스 한 대 밀고 들어온다

자라처럼 움츠려 온몸으로 좌판 끌어안는 할머니

기습받고 몸이 기울어지면서도 필사적으로 놓지 않는 좌판위로

미끄러지듯 쏟아지는 고추알들

뭉개지지 않은 고것들 쓰다듬으며 중얼거린다

몹쓸 것들,

바람소리 같은 말이 지나간다

다시 몸 마는 할머니

욱신거리는 적막이다

◇박미란= 95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문득, 그가 없다’ 외 공저 다수. 한국시인협회 및 심상시인회 회원.

<해설> 스타렉스? 그러니까 차의 이름이긴 한데 묘하게도 이 시에 긴장감을 더해 준다. 왠지 덩치가 클 것 같은 차 이름이면서 스타를 태운 듯, 노전에 좌판을 편 할머니와 대조적인 느낌을 준다. 일종의 사고인지? 차가 진입하는 통로에 할머니가 모르고 좌판을 펼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경고도 없이 밀고 올라오는 저 힘은 자본의 힘이자 권력의 힘일 것이다. 하루에 몇 푼 일당을 벌기 위해 노구에도 길가에 나와 쪼그려 앉은 할머니는 우리의 친숙한 어머니 이거나, 할머니이기 때문이다. 어처구니없는 이런 상황이 오늘의 적막을 더욱 욱신거리게 한다.

-박윤배(시인)-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