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 경영칼럼] 지켜져야 할 약속
[박명호 경영칼럼] 지켜져야 할 약속
  • 승인 2023.05.21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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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호 계명대학교 석좌교수, 전 계명문화대학교 총장
지난 달 아프리카 수단에서 발생한 내전 상황에서 우리 교민을 구출한 작전명은 약속이란 뜻의 영단어 ‘프라미스’(Promise)였다. 총알이 날아올 정도로 위험한 상황에서 우리 교민들은 안전하게 탈출하도록 해주겠다는 정부의 약속을 굳게 믿었다. 정부는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서 구출 작전을 성공시켰다. 대원 중 한 사람은 성공적인 작전으로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약속을 지키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구출된 수단 교민들은 안전하게 구출되리란 믿음이 있었다고 했다. 약속을 지킨 정부와 그 약속을 믿은 교민 모두가 협력으로 이루어 낸 쾌거다.

‘프라미스’가 아니더라도 요즘 언론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아마도 ‘약속’이란 말일 것이다. 지난 주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둘러싸고 대한간호협회와 야당은 대통령이 간호법 제정 약속을 파기했다고 반발했다. 대선공약 파기라는 야당의 주장에 여당은 정식으로 공약한 바가 없다고 항변한다. 의료법 문제로 우리 의료계는 찬·반 둘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고, 여야 갈등도 최고조에 달했다. 정부와 여당은 ‘의료계 갈라치기’를 목적으로 한 ‘날림입법’이라며 타협안 마련에 야당이 동참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런 가운데 ‘병든 약속’이란 희한한 ‘약속’이 나왔다. 누가 누구에게 어떤 말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약속했는지를 당사자들도 모르는 그야말로 황당무계한 ‘약속 아닌 약속’을 말한단다. 우리 사회에는 이처럼 여러 모양의 약속이란 단어가 난무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구체성과 명확성이 결여된 약속은 본질상 약속이 아니라는 점이다. 약속이 아닌 것은 당연히 누구라도 지킬 도리도 의무도 없다. ‘병든 약속’은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를 병들게 하고 혼란만 가중시키는 선동이며 해악에 불과하다.

기업 경영도 약속의 현장이고, 그 약속이 명확하고 실천 가능할 때 성취된다. 고객에 대한 약속, 투자자와 종업원에 대한 약속은 물론이고, 사회와 국가에 대한 약속도 그 내용과 실천방도가 분명해야만 당위성과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래야 기업이 사회공동체와 조화롭게 생존하며 성장하게 된다. 기업들이 ESG경영에 집중하는 이유다.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 등 사회적 가치까지 보다 능동적이고 전향적으로 고려해야 지속적 성장이 가능하다. 이렇듯 ESG를 구체적으로 약속하고 실천해서 사회적 책임과 사회적 가치를 높여나가야 기업이 발전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기업의 마케팅 활동도 따지고 보면 고객과 분명한 약속을 하는 것이다. 고객에게 구체적이며 실천 가능한 가치를 약속하고, 그 약속을 실천하겠다는 다짐이다. 마케팅의 목표는 차별적 고객 가치를 고객이 쉽게 이해하고 편리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하여 고객 만족을 달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내부고객인 종업원들은 고객에게 약속한 가치를 고객이 원하는 방식으로 정확히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마케팅의 경쟁력은 결국 누가 더 새롭고, 보다 유익한 가치를 고객들에게 제대로 약속하고 진정성 있게 실천하느냐에 달려있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약속이 있다. 법적 구속력을 지닌 계약에서부터, 예약, 선약, 협약, 공약 등이 말이나 문서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각서 또는 양해각서라는 것도 있고, 밀실에서 비정상적으로 이뤄지는 밀약도 있다. 정당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지만 약속이 깨어질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약속 당사자 간의 신뢰가 결여되거나 약속이 실행되어야 할 시점에 큰 변화가 발생한 경우에는 약속이 지켜지기 어렵다. 따라서 당사자 간에 신뢰가 있어야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는 믿음도 생겨난다. 마케팅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약속을 한다. 광고, 홍보 등을 통해서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약속을 천명한다. 제품의 브랜드 자체가 약속이 되기도 한다. 약속이 지켜지면 고객의 신뢰가 생기고 우호적 고객관계가 형성된다. 이러한 고객관계는 경쟁력의 기반이 되는 충성고객으로 이어진다.

신용사회에서는 약속을 지키는 것을 매우 중요하고 높게 평가한다. 비록 하잘것없어 보이는 약속도 예외가 아니다. 상대방이 감탄할 정도로 약속을 정확하게 지키면 상대방은 그 사람을 신뢰하고 존경한다. 미국의 미래 정치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저서 ‘트러스트’에서 밝혔듯이 선진국은 신뢰수준이 높은 사회다. 누구라도 질서와 법규를 잘 지킨다는 믿음이 강한 사회가 고신뢰사회다. 법규는 구속력을 지닌 약속이다. 기초질서에 관한 법규를 잘 지키는 것이 가장 절실하다. 교통법규 준수 위반, 쓰레기 불법 투기, 함부로 침 뱉기 같은 것들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이들은 신뢰사회의 근본을 위협하는 심각한 약속 위반 행위다. 모두의 안녕을 위해 가장 먼저, 그리고 반드시 지켜져야 할 중요한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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