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칼럼] 21세기 대한민국의 미래, 탕탕평평(蕩蕩平平)을 기원하다
[의료칼럼] 21세기 대한민국의 미래, 탕탕평평(蕩蕩平平)을 기원하다
  • 승인 2023.05.21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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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법을 통한 보건의료계 갈라치기를 멈추라-
김경호대구시 의사회 부회장, 대경영상의학과 원장
성균관 대학의 입구에는 1742년 영조대왕이 세운 탕평비(蕩平碑)가 서 있다. 탕평비에는 대왕이 직접 글을 써 새긴 "周而弗比 乃君子之公心 比而弗周 寔小人之私意(두루 원만하고 편향되지 않음이 군자의 마음이고, 편향되고 원만하지 못함은 소인의 사사로운 마음이다)"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논어(論語)』 위정편 14장의 한 구절(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을 활용하여 영조대왕이 직접 재구성 한 것으로 한편에 치우치지 않고 공평무사하고 온건한 이들을 중용했던 영조대왕의 정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조선의 큰 위기였다. 사력을 다하여 겨우 국난을 극복한 뒤에는 붕당정치라는 새로운 형태의 분열의 위기가 찾아왔다. 국가의 지도층인 선비들은 지연과 학연, 사상을 중심으로 결집하고 서로 대립하기 시작했다. 서로 내가 옳다는 독선으로 뭉쳐 상대방을 소인배로 치부하며 배척했다. 당쟁이 일상사가 되었고 국정이 문란해지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왕과 양식있는 지도층의 노력이 이어졌다. 왕세제 시절 그 폐해를 직접 겪은 영조대왕은 집권 초기부터 당쟁을 완화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즉위 후 탕평 교서를 발표하고 탕평비를 건립하며 탕평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탕평은 『서경(書經)』 홍범편에 나오는 "치우침이 없고 무리지음이 없으면 왕도가 탕탕하고 무리지음이 없고 치우침이 없으면 왕도가 평평하다(無偏無黨 王道蕩蕩 無黨無偏 王道平平)"에서 나온 말이다. 정치는 특정한 사람에게만 호의를 보이지 않고 불공정이 없고 공적이고 바른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탕평은 공평한 정치를 하려는 영조대왕의 마음 그 자체였다.

영조대왕이 탕평을 얼마나 중요시 여겼는지는 전통요리인 탕평채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탕평채는 녹두묵에 고기볶음과 미나리, 김 등을 얹어 만드는 묵무침 음식으로 '탕탕평평'에서 따왔다. 흰색의 녹두묵과 붉은색의 고기, 푸른 미나리와 검은 김은 번갈아가면서 권력을 잡은 서인, 남인, 동인, 북인을 상징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공정한 정치와 각 세력 간의 화합의 상징으로 왕이 신하들에게 하사한 음식이었다.

화합의 상징인 탕평채가 300년의 세월을 건너 2023년 5월, 대구시의 중심 동성로에 등장했다. 민주당이 단독으로 입법한 간호법에 반대하는 대구경북 보건복지의료연대의 범시민 규탄대회 도중 13개 보건의료단체의 대구경북 대표자들이 탕평채를 만들고 이를 함께 나눠 먹으며 보건의료계의 화합을 기원하며 보건의료계는 한 팀이라는 의미를 다졌다. 이날 만든 탕평채의 첫번째 그릇은 의료계를 갈라치기를 그만두고 탕평의 정치를 해 달라는 뜻으로 가두 행진 후 민주당 대구시당에 전달하였다. 두 번째 그릇은 간호사협회의 몫으로 남겨 간호법으로 발생된 갈등을 넘어 다시 함께 하자는 메시지를 던졌다.

사실 이번 간호법 제정을 둘러싼 대립으로 보건의료계 내부에 패인 감정의 골은 심각한 수준으로 깊다. 13개 보건복지의료연대와 간호사협회는 연일 상대를 비판하는 보도를 내고 시위와 단식투쟁, 집회를 이어갔다. 같은 직장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등을 돌리고 날세워 목소리를 높여야 했다. 5월 16일 국무회의에서 간호법 제정안 재심의 요구안이 의결되어 간호법 제정이 무산되며 다음날로 예정되어 있던 보건의료계의 총파업 등 파국은 면했다. 그러나 간호사협회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어 또 다른 후폭풍이 우려되고 있다.

간호사의 처우 개선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간호사만 고군분투한 것은 아니다. 간호조무사, 응급구조사,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요양병리사 등 보건의료계 모두가 전력을 다했다. 그들의 처우 개선 또한 간호사와 같은 선상에서 이루어 져야 한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평시에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돌보고 있는 모든 보건의료인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는 것은 의료계가 간절히 바라는 희망사항이다. 간호사만 특혜를 주도록 법안이 개정되는 점이 잘못 되었다는 것이고, 같이 협업해야할 보건의료의 동료의 권리를 침해하는 독소조항이 부당하다고 한 것이지 간호사의 처우 개선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간호조무사의 학력 상한은 폐지되어야 하고, 응급구조사,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요양보호사, 의료정보관리사 등의 전문영역은 지켜져야 한다. 보건의료 직군 모두가 존중받고 합당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 간호사만이 아니고 보건의료계 모두가 말이다.

조선후기의 당쟁은 국가의 안위나 민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왕실의 복상제(服喪制)와 같은 지엽적인 예법 문제나 세자책봉, 왕비책립 등을 통해 타 정파(政派)를 배척하고 정권을 장악하려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지금의 간호법도 보건의료계를 자기편과 남으로 갈라치고 자신의 지지 세력을 챙겨주는 편협한 당리당략일 뿐 국익에 도움되는 민생법안은 결코 아니다. 자당의 이익을 위해 국론을 분열시키고 인기에 영합하는 붕당정치는 사라져야 한다. 치우침이 없고 무리지음이 없으면 국가의 앞날이 탕탕하고 평평할 것이다. 부디 한편에 치우침 없는 탕평(蕩平)의 정치를 펼쳐주기를 정치권에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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